싱가포르에서 마주한 두 개의 풍경
처음 싱가포르에 왔을 때, 내가 상상한 ‘싱가포르’는 딱 그거였다. 반짝이는 유리 빌딩이 끝없이 늘어선 CBD(Central Business District), 우버 블랙을 타고 출근하는 서양인 슈트남들, 그리고 퇴근 후 클락키에서 칵테일 한 잔 하는 여유. 그 모습은 마치 미래 도시처럼 세련되고 완벽해 보였다.
그런데 어느 날, 같은 길을 지나며 전혀 다른 풍경을 마주하게 됐다. 햇빛에 그을린 얼굴, 땀에 젖은 옷, 먼지가풀풀 날리는 트럭 뒷칸에 빽빽이 앉은 남자들. 공사장에서 일하는 이주 노동자들이었다.
그 순간, 같은 도시 안에 이렇게나 다른 삶이 공존하고 있다는 사실이 나를 멍하게 만들었다.
화려함 이면의 구조
싱가포르의 총인구는 약 590만 명(2023년 기준). 이 중 약 144만 명이 외국인으로, 전체 인구의 약 24%를차지한다. 이 외국인 노동자 중에서도 약 100만 명 이상이 워크 퍼밋(Work Permit) 비자로, 건설업·선박수리업·청소·가사노동 등에 종사하고 있다.
특히 건설업의 경우, 전체 노동력의 약 80% 이상이 외국인 노동자로 구성되어 있으며, 주요 출신국은 방글라데시, 인도, 미얀마, 중국, 말레이시아다.
이들의 평균 임금은 일반적으로 월 S$500~800 수준. 이는 싱가포르의 최저 생계비(2023년 기준 약 S$1,400) 에도 한참 못 미치는 수준이다.
대부분은 고용주가 제공하는 기숙사형 도미토리에 살며, 한 방에 10명 이상이 함께 생활하기도 한다. 코로나19 당시 이 도미토리들이 집단 감염지로 주목받으며 열악한 주거환경이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기도 했다.
왜 트럭에 타고 다닐까?
싱가포르 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람을 실은 트럭’은 이주 노동자들의 일상적인 통근 수단이다. 2023년 기준, 하루 평균 약 15만 명의 이주 노동자가 트럭을 통해 출퇴근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이 방식은 매우 위험하다. 2021년 한 해에만 총4건의 트럭 관련 사고로 2명이 사망하고 다수가 부상을 입었다.
이에 대해 시민단체들과 인권 단체들이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했고, 2021년에는 약 7만 명 이상이 참여한 청원서가 국회에 제출되었다. 하지만 정부는 “공사현장의 현실적 제약”과 “교통 인프라 부족” 등을 이유로 트럭 이동을 단계적으로만 개선하겠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다른 세상을 마주했을 때
CBD에서 일하는 서양인 엘리트들, 스타벅스에서 노트북을 두드리는 디지털 노마드들, 쇼핑몰에서 루이비통 쇼핑백을 든 관광객들.
그리고 트럭 뒷칸에서 서로 기대어 앉아 퇴근하는 노동자들.
이 두 세계는 물리적 거리로는 가까울지 몰라도, 경험하는 현실은 너무나 멀다.
싱가포르에 주재하는 외국인 고소득 근로자(Employment Pass holders)는 약 16만 명, 이들은 주로 금융, IT, 에너지 등의 고소득 산업에 종사하며, 평균 월급은 약 S$10,000 이상. 이는 워크퍼밋 소지자의 월급의 20배 이상 차이가 나는 수치다.
나의 위치, 우리의 시선
나는 그들 중 누구도 아니다. 트럭에 타 본 적도 없고, CBD 빌딩 35층에서 회의한 적도 없다. 하지만 이 두 세계를 오가며, 생각하게 된다. 우리는 어떤 시선을 가져야 할까?
이주 노동자를 불쌍하게 보는 것도, 부러움 섞인 시선으로 서양인을 동경하는 것도, 사실은 다 반쪽짜리 시선일 수 있다. 중요한 건, 이 도시를 구성하는 ‘다양한 현실’에 대해 무지하지 않은 것, 그리고 그 무지에서 오는 무관심을 경계하는 일 아닐까.
“도시의 품격은 그곳에서 가장 약한 존재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를 보면 알 수 있다.”
한 건축가의 말을 떠올리며, 오늘도 이 도시를 다시 한번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