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누구나 다 죽는다
너무 연연하며 살지 않기를
친정어머니나 시어머니와 대화를 하다보면 종종 먼친척이나 지인분들, 친구분들의 남편들이 돌아가셨다는 얘기를 듣게 된다. 매일 하루하루를 비슷하게 살아가며 현재를 살아가는 나로서는 주위 사람들이 변함없이 세상에 존재할 것 같은데...노화와 병으로 인해서든 갑작스러운 사고로든 이 땅의 사람들은 하나둘 사라져간다. 그리고 또 다른 생명이 태어나며 세상은 유지된다.
어른들의 부고 소식을 듣고 나면 나는 참 인생은 허무하다는 생각이 든다. 젊어서는 보란듯이 잘 살고 싶어서 경쟁하듯 살아가고, 나이들어서는 또 여기저기 아프고 쇠약해진 노년의 시기를 잘 견뎌내야한다. 나는 이렇게 애쓰며 잘 살아왔다고 입증하고 뿌듯해 할 겨를도 없이 세상과 이별할 순간은 어느새 훅 다가온다
결국 모든 사람은 죽고, 그 사람에 대한 평가도 관심도 죽음과 함께 사라지는데 왜 우리는 살아가며 다른 사람의 평가나 시선을 그렇게 의식하고 때론 두려워하기까지 할까? 남들 보기에 잘 살려고할까?
살다보면 타인에게 상처를 받기도 하고
스스로도 본의아니게 실수하게되어
어리석게 행동했음을 한탄할 때도 있다.
지나친 오만으로 우쭐대는 순간도 있고
진심으로 평온하고 행복할 때도 있다.
이 모든 순간이 결국 다 지나간다.
세월이 흐름에 따라 우리의 생각과 말과 행동들도 다 잊혀져갈 것이다.
그럼에도 혹여 나의 미성숙함으로 인해 남보기에 더 지혜롭지 않고 신중하지 못했던 나의 행동을 스스로 더 용서하지 못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자기비난은 사실 진정한 반성이라기보다 타인의 시선에 무게를 둔 자기연민으로 빠지기쉽다. 자기징벌은 그나마 남은 좋은 에너지를 빼앗고 더 부정적인 상황으로 빠지게 하는 부질없는 일이 되기도 한다.
내가 어떤 행동을 하게 되었을 때는 혹은 실수였을 지라도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그 이유를 찾고 풀어내고 더 나아지려는 노력을 하는 것이 차라리 낫다. 이미 일어난 어쩔 수 없는 일을 대하면서 그때 이렇게 했어야했어. 나는 너무 미련하다고 후회해봤자 지난 사건이다. 어쩌겠나. 이미 지혜롭지 못했던 일 지금부터라도 잘하자. 나도 죽고, 그도 죽는다. 너무 연연하지말자..라는 생각이 도움이 되기도 한다. 교훈을 얻었으니 앞으로 잘 살면 된다는 태도가 필요하다.
결국 문제를 기억하는 사람들도 지나가고 남는 건 삶의 본질이다. 내가 선을 추구하며 살았는가하는 태도만 남는다. 연약한 인간인지라 흔들리고 실수하고 방황할지라도 결국 바른 방향을 향해 가고 있느냐가 중요하다. 어떤 위치에 있건 정도로 바르게 살아가려는 마음가짐으로 부단히 돌아가자. 완전할 수 없어도 주어진 삶에서 선을 행하고자 노력했음이 보이지않는 인생 기록지에 쓰여질 것이다. 한번에 한가지 면만 볼 수 있는 유한한 사람들의 평가가 아닌 그것이 이 땅을 떠날 때 모든 것을 다 아는 신 앞에 우리가 가져갈 수 있는 유일한 호소문이 될 것이다.
* 글을 쓰고나니 역경을 헤치고 승리로(라틴어 per aspera ad astra)라는 표현의 웅장하고 비장한 차이코프스키 5번 교향곡이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