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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들 Mar 29. 2023

트렌치코트




 가끔 보면 남편은 온도 조절 능력이 고장 난 변온동물 같다. 본인은 여느 포유류와는 달리 외부 온도에 맞춰 스스로 체온을 조절할 수 있는 변온동물인 것처럼 날씨를 고려하지 않은 옷차림으로 외출하는데, 당연히 그럴리는 없으니추워서 벌벌 떨거나 더워서 뻘뻘 땀을 흘리곤 한다.


 갑자기 기온이 대폭 상승해서 봄날씨 같던 요 며칠 전에도 남편은 늘 입던 패딩을 입고 출근했다. 아침엔 그렇다 쳐도 기온이 올라가 더운 오후 퇴근길에도 패딩을 입고 땀을 뻘뻘 흘리며 퇴근하는 남편을 보며, 이 남자는 도대체 왜 이러는 걸까 생각했다. 곰곰이 생각하던 끝에 남편은 봄가을용 외투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무리 봄가을이 짧아도 트렌치코트 하나 정도는 있어야지 싶어 남편을 데리고 쇼핑몰에 갔다. 트렌치코트 같은 건 별로 필요 없다고 하던 남편도 막상 코트를 입어보더니 마음에 든 눈치였다. 이런 것까지 챙겨줘야 된다니, 어쩔 땐 남편인지 아들인지 헷갈린다. 다음 날 아침, 출근 준비를 하던 남편이 아직 비몽사몽 꿈나라에 있는 내 귀에 대고 속삭인다.


나 오늘 패딩 입을까, 트렌치코트 입을까?


나 자고 있는 거 안 보이니…? 니 마음대로 하세요…라고 외치고 싶었지만 그 와중에 어제 봤던 ’내일은 패딩을 꺼내세요‘라는 뉴스 기사가 떠올라 ’패딩 입어…‘라고 답해주고 다시 잠으로 빠져들었다. 그런데 문득 기시감이 들었다. 나 이거 처음이 아닌 것 같은데?


엄마, 나 오늘 코트 입을까 말까?

입어~~



나 또한 학창 시절, 등교하기 전 엄마에게 오늘은 코트를 입을지 말지 목도리를 할지 말지 묻곤 했다. 엄마가 기상청 직원도 아닌데. 사실 등교 준비를 하면서 보는 아침방송을 보면 기온이 다 나오는데 나는 늘 엄마에게 묻곤 했다. 오늘 무엇을 입을까에 대해 누군가에게 묻는다는 건, 어쩌면 본인이 상대방에게 의지하고 있다는 걸 무의식 중에 드러내는 행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이 또 물어보면 짜증내지 말고 잘 대답해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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