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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들 Oct 18. 2021

#16 어떡해~~

ㅠㅠ


선선한 가을 밤의 일이었다.


최근 속상한 일이 생겨 남편에게 위로받고 싶은 마음에, 안되는 영어로 구구절절 이야기를 털어놓는 나에게 남편은

 ‘이해했어.’라고 말했다.


남편은 예전부터 “이해했어”라고 대답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자기딴에는 ‘I understand’를 한국어로 말한다고 한건데, 영 부자연스럽기 짝이 없었다. 그래도 뭐 완전히 틀린 표현도 아니고, 한국어로 말하려는 노력이 갸륵해서 지금까지는 그냥 넘어갔었는데 오늘은 한참동안 신세한탄을 한 뒤 “이해했어”라는 답이 돌아오니, 너무너무너무 허탈하고 서운한 감정마저 들었다. 마치 ‘정보를 처리하였습니다’라고 말하는 로보트같기도 하고 ‘알았고 이해했으니까 그만 말해라’ 같이도 들렸다. 그가 외국인인건 알지만 외국인이기 전에 내 남편인데.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 이해했어? 무슨 컴퓨터도 아니고 대답이 이해했어가 뭐야~”


나는 이런 상황에서 ‘이해했어’라는 대답이 얼마나 부적절한지, 내가 지금 얼마나 서운한지, 안되는 영어로 구구절절 설명을 했다. 예상치 못한 반응에 당황한 그는 ‘그럼 내가 뭐라고 대답을 해야 하냐’고 반문했다.

그런데 또 막상 그렇게 질문을 받으니 마땅한 대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뭐라고 하면 좋냐면... 음... 어...그것 참 안됐구나?

아냐, 무슨 소설 속 대사도 아니고.

너의 얘기를 들으니 내 마음이 아프다?”


아니야. 이건 완전 영어 직역투잖아. 영어를 많이 쓰니 머리가 어떻게 됐나.


도무지 마땅한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이럴  어떤 말을 했었지? 개똥도 약에 쓰려면 없다고 아무리 생각을 해보아도 떠오르지 않았다. 만약 친구가 실연을 당했거나 사고를 당했을때 나는 뭐라고 말할까?   떠오른 것이 ‘어떡해…’였다. 하지만 이건 완전한 문장도 아니고 너무 캐주얼하다.  혼자만 적절하다고 느끼는 표현일 수도 있다. 다른 표현은 없을까? 다시 한번 생각해봤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어떡해보다 자연스러운 표현이 떠오르지 않았다.


“Ok. 이런 상황에서는 ‘어떡해~~’라고 말하면 돼”


“What???? 어떡해?
어떻게? How? How what?”


남편은 도무지 이해가 안된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는 ‘어떻게’가 ‘How’라는 것을 안다.


“어떻게가 아니라 ‘어떡해’라고. ‘어떻게 해~’의 줄임말이야. 너에게 어떤 말을 해줘야될지 모르겠다.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모르겠을 정도로 마음이 아프다. 이런 뜻이라고. 암튼 요는, 이럴 때는 그냥 상대방한테 공감해줘야 된다는거야. 자, 따라해봐. 어떡해~~ㅠㅠ”


“Weird.”


남편은 입술을 삐죽거렸다.


“‘이해했어’가 더 이상하거든?

자, 얼른 따라해봐. 어떡해~~”


“어떡해~~”


“더 감정을 넣어서. 어떡해~~ ㅠㅠㅠㅠ”


“어떡해~~~ ㅠㅠㅠㅠ”



덕분에 요즘은 내가 조금이라도 우울해하면 남편은 옆에서 ‘어떡해~ ㅠㅠ라고 찰떡같이 말하며 위로해준다. 살짝 여성스러운거 같긴 하지만 , 난 위로받는 기분이 들어서 좋다. 외국인 남편과 결혼하면 이렇게 튜닝(?)해나가는 (?) 있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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