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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들 Sep 17. 2022

기묘한 하루


참으로 기묘한 하루였다.

원래 오늘 우리의 계획은 한성대 입구에서 열리는 라틴 아메리카 페스티벌에 가서 라틴 푸드도 먹고 공연도 보며 즐거운 하루를 보내는 것이었으나 타는듯한 햇볕과 발디딜  없이 몰려든 사람들 탓에, 라틴푸드는 커녕 15 남짓한 탱고 공연만 겨우 보고 페스티벌 장소를 나왔다. 주린 배를 부여잡고 근처에 있는 평범한 까페에 가서 파니니 샌드위치와 아메리카노로 겨우 허기를 달래고 나니, 이대로 집에 돌아가긴 억울해 어디라도 갔다가 으로 가기로 했다.


걷고는 싶지만 햇볕이 없는 , 어디 있을까 생각해보니 미술관이라는 답이 나왔다. 그래 근처에 국립현대미술관이 있으니 거기나 가보자 하여 버스를 타고 미술관을 가니 현대미술관에는 무료전시가 없단다. 주변에 널린게 무료 갤러리인데 굳이 돈을 기 싫어 미술관을 나와 바로 보이는 학고재에 들어가니 공짜로 보기 미안할 정도로 매력적인 강요배 작가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었다. 평소엔 방명록에 손도 안대는데 괜히 방명록에 이름도 써보고 바로 옆에 있는 국제 갤러리에 이동해 이승조 작가의 전시를 봤다.  닿는 데로 걷다보니 인생네컷 스튜디오가 나와 커다란 리본을 머리에 얹고 사진을 찍었고, 또 걷다보니 분식집이 나와서  원짜리 떡꼬치를 하나 사 나눠 었다. 아무런 목적없이 좁은 골목 골목을 걷다 발견한 심여화랑에 들러 막심 와쿨쉭 전시를 보고나니 불현듯 주변에 현대카드 디자인 갤러리가 있었던게 생각났다. 갤러리에 들러 아무 생각없이 이런 저런 책을 뒤적이다 나와, 또 목적 없이 안국역 주변을 이리저리 배회하다 보니 걸음 수는 1 보를 넘었고 하늘엔 예쁘게 노을이 물들어 있었다.


우리는 저녁을 여기서 먹을지 집에 가서 먹을지 고민하다 집에 어제 해놓은 밥이 있으니 집에 가서 먹자는 결론에 다달았다. 기껏 시내까지 나와서 데이트를 한 후 저녁은 집에 가서 어제 먹다 남은  밥이라니. 우리는 영락없는 부부라는 생각이 들었다. 집 근처 마트 정육 코너에 들러 닭갈비와 간장 돼지갈비를 두 팩에 만원에 파는 상품을 집어들고 땡 잡았다 하며 룰루랄라 집으로 돌아왔다. 어제 먹다 남은 찬 밥과 어제 먹다 남은 와인과 마트에서 집어온 간장 돼지 갈비를 구워 먹고 나니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다. 계획했던 것은 하나도 달성하지 못했으나 어느 때보다도 알찼던 기묘한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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