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보들 Dec 15. 2022

상관없는 거 아닌가?


 나는 책 읽기를 좋아한다. 책을 빨리 읽지도 많이 읽지도 자주 읽지도 않지만 책 읽기를 좋아한다. 적어도 이제부터는 책 읽기를 좋아한다고 말하기로 했다. 이렇게 말하기로 결심한 것은 장기하의 에세이를 읽고 나서부터이다. 놀랍게도 장기하 또한 나처럼 ‘책 읽기를 좋아한다’의 정의에 대해 오랫동안 고민했다고 한다. 이것이 내가 그의 책을 사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왠지 책을 집중해서 죽 읽어나간 후에 누가 물어도 책의 내용을 간단명료하게 설명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비로소 "그래! 나는 책을 좋아해!"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어느 때부터인가 이런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상관없는 거 아닌가?

'읽는 도중에 딴생각이 좀 어떤가? 어찌 됐건 그 딴생각이라는 것도 책의 내용으로부터 연상된 것일 텐데, 그렇다면 그게 꼭 독서와 무관한 '딴'생각이라고 할 수 있나? 그리고 읽은 부분을 다시 읽게 되는 게 꼭 문제인가? 같은 책 안에서라도 구절마다 중요도가 다르기도 하고 어떤 때는 반복해서 음미하고 싶기도 하니 어떤 문장들은 여러 번 읽게 되는 게 당연한 일 아닌가?

장기하 산문 ’상관없는 거 아닌가?‘ 중에서



이 남자 노래만 잘 만드는 줄 알았는데 책도 잘 쓴다(당연한 일인가?).


 남편과 ‘오늘부터 1일‘을 선언한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무렵 장기하와 얼굴들은 해체를 했고(우리는 2018년 12월 무렵부터 사귀기 시작했다)연남동에서 열린 해체 기념(?)전시회가 우리가 처음으로 같이 간 전시회였는데, 그 전시회에서 장기하와 얼굴들을 처음 알게 된 남편은 그들의 매력에 푹 빠져버리고 말았다. 연남장 지하에 있는 전시회장의 검은 소파에 앉아 ‘그렇고 그런 사이’의 뮤직비디오를 보며 충격을 받은 듯 했던 남편의 얼굴이 아직도 선하다. 해체하는 날 팬이 되는 것도 참 재밌는 일이다. 남편은 지금도 여전히 장기하의 팬으로 그들의 음악을 즐겨 듣는다. 가장 좋아하는 노래는 ‘빠지기는 빠지더라’. 장기하는 평소 국어와 맞춤법에 집착한다는데 문장도 잘 정리된 방처럼 간결하게 참 잘 쓴다. 남편에게 장기하의 책을 교재로 다시 한국어를 열심히 공부해보라고 할 참인데 팬심을 살려 공부하면 참 좋겠다.


 나는 사실 에세이를 좋아한다. 소설은 허구여서 싫고 자기 계발서는 강요하는 것 같아서 싫다. 하지만 예전에는 에세이를 좋아한다고 말하는 것이 왠지 쑥스러웠었다. 총 균 쇠, 사피엔스 같은 책을 읽어야만 멋있는 줄 알았다. 그런데 이제부터는 에세이를 좋아한다고 당당히 말하려고 한다. 내가 에세이를 좋아하는 이유가 뭔지 확실히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내가 에세이를 읽는 이유는 다른 어떤 장르보다도 필자와 대화하는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내가 일방적으로 듣는 입장이긴 하지만). 내 생각을 이야기하는 것도 가능은 하다. 필자에게 들리지 않을 뿐이지.


나는 대화하는 것을 좋아한다. 하지만 일대일로 누군가와 대화하는 것이 가끔 귀찮을(?) 버거울 때가 있다. 일대일 대화의 가장 어려운 미션은 상대방의 이야기에 맞추어 나 또한 적절히 맞장구쳐주고 나의 이야기를 적절히 내놓아야 된다는 거다. 너무 많아도 안 좋고 너무 적어도 안 좋다.적당한 긴장과 재미를 서로가 균등하게 느낄 수 있도록 미묘한 줄다리기를 하는 것이 대화의 묘미이자 고통이다.


상대가 100만큼의 마음을 내놓았는데 나는 아무것도 내놓지 않으면 상대방은 혼자만 발가벗겨진 느낌이 든다. 목욕탕에 가면 모두가 다 벗고 목욕을 해야 하는데 혼자만 위아래 옷 다 입고 목욕하면 비겁하지 않은가. 하지만 가끔은 내 속내를 내보이고 싶지 않을 때가 왕왕 있다. 그런 의미에서 독서를 통한 일방적인 대화는 편하다.


장기하는 오히려 현실 대화에서는 본인의 생각만 주구장창 말할 수 없어서 글로 쓰기로 했다고 한다. 내가 맞장구 쳐주지 않아도 장기하는 계속해서 본인의 이야기를 이어간다(라면을 맛있게 끓이는 방법이라던지…). 읽다 피곤해서 중간에 책을 덮고 자버려도 삐지지 않는다. 최소한의 체력으로 원하는 만큼만 대화할 수 있는 최고의 대화 상대다. 가끔 혼술을 마시며 재밌는 에세이를 읽으면 저자와 술 먹는 기분이 들어 외롭지 않다.


 장기하의 에세이에는 술에 대한 챕터도 있다. 장기하의 술을 마시는 가장 큰 이유는 페어링이라는데, 맛있는 음식과 함께 페어링 해서 먹는 것 말고도 공연과의 페어링이 그렇게 좋다고 한다. 공연을 끝 마치고 나서 마시는 맥주가 그렇게 시원하다는데, 직장인들이 하루 업무를 마치고 저녁에 들이키는 맥주가 맛있는 것과 같은 이치겠지. 알지 알지. 이렇게 혼자 또 속으로 공감하며 페이지를 넘겼다.


 다 쓰고 나니 또 별 영양가 없는 글을 찌끄려놓은 것 같다. 하지만 뭐, 상관없는 거 아닌가?











매거진의 이전글 인간들은 맨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