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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원 Aug 15. 2024

최단코스에 낚인 장구목이 코스

산따라 길따라 3- 정선 가리왕산

가리왕산이 힘든 산이라는 얘기를 몇 번 들어 최단코스라는 장구목이 입구를 선택했다. 한여름에 무리하지 말고 조금은 쉬운 산행을 하고 싶은 생각이었다. 이끼 계곡 따라 올라가는 길에 아기자기한 폭포가 있어 여름 산행으로 적합한 코스라는 소개도 솔깃했다. 대낮은 피해야겠다는 생각에 아침 6시에 집을 나섰다.  

    

1시간 30분 정도 걸려 도착한 장구목이 입구 갓길에 차 몇 대만 서 있었다. 주차하고 배낭 메고 들머리로 들어섰다. 바람 한 점 없는 맑은 여름날 울창한 숲 여기저기에서 매미 울음소리가 요란하다. 일주일 남짓 사는 동안 짝짓기를 위해 고래고래 암컷을 부르고 있다. 짧은 생애 소원성취 하시라.  

     

20여 분 올라가니 세 갈래로 흘러내리는 폭포가 보였다. 선객들의 정보대로면 1폭인 거 같은데 1폭을 안내하는 표시는 보이지 않았다. 아내에게 보내줄 사진을 찍기 위해 비탈을 따라 폭포로 내려가니 서늘한 기운이 온몸을 휘감는다. 사진과 동영상 찍어 톡으로 아내에게 보내고 등산로로 올라왔다. 울창한 숲 사이로 난 길은 돌투성이에 물기를 머금고 있었다. 직사광선은 숲이 차단해 주었지만 고온 다습한 날씨 탓에 땀이 비 오듯 흐르고 발걸음이 무거웠다. 이제 시작일 뿐인데 지쳐서는 안 되지 싶어 발걸음 재촉했다. 경사가 심하지는 않았지만 계속 오르막길이어서 힘들었다. 등산로가 계곡을 끼고 있어 잠시 쉬며 서늘한 계곡물로 땀을 씻을 수 있어 그나마 다행이었다.  


장구목이 코스를 따라 이어지는 계곡

  

9폭을 지나니 계곡에서 멀어지고 가파른 돌계단 길이 기다리고 있다. 원시림 사이로 뚫린 비탈길을 걷다 멈춰 되돌아보면 힘들게 올라온 길이 굽이쳐 내리다 자취를 감춘다. 오르다 쉬다 반복하며 많이도 올라왔다는 생각이지만 얼마를 더 올라가야 하는지 가늠하기 어렵다. 내려오는 사람 있으면 얼마나 남았는지 물어보고 싶었지만 만나질 못했다. 임도라도 빨리 나왔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했다. 간절한 만큼 쉽게 다가오지는 않았다.

     

드디어 임도에 도착했다. 2.6㎞ 올라왔고 정상까지 1.6㎞ 남았다. 임도 지나면 힘든 깔딱고개가 있다는 정보를 확인했던 터라 고생할 준비는 되어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심할 줄은 몰랐다. 쉼 없이 이어지는 돌투성이 된비알에 주눅이 들어 십여 미터 올라가다 한 번씩 주저앉아 쉬어야 했다. 앉아 쉴 때마다 체력 고갈을 막기 위해 물 마시고 간식 챙겨 먹었다.  

    

그러다 문득 맥국의 갈왕이 피신해 성을 쌓고 머물렀다는 가리왕산의 전설이 떠올랐다. 쫓기는 자가 추격자의 공격을 막아내며 세력을 유지하기 적합한 곳이 험준한 산악지형이었을 터. 설악산 공룡능선이나 치악산 사다리병창과 견주어도 밀릴 것 같지 않은 가리왕산의 험한 지형은 쫒기던 맥국의 갈왕이 피신해 살기에 적합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왕의 자취가 남은 강원도의 산이 몇 군데 더 있다. 태기왕의 전설을 품고 있는 태기산과 어답산, 왕건과 견훤의 자취가 남은 건등산과 견훤산성, 왕의 기운을 담고 있다는 발왕산 …. 산 첩첩 험한 지형 탓에 역사의 변방이었지만, 험준한 산악지형이 절실했던 시기 강원도 곳곳에 쫓고 쫓기던 세력의 자취가 전설로 남아 전해지고 있다.


가리왕산 주목


고산지대 서식하는 주목이 여기저기서 눈에 띄는 걸 보니 정상이 멀지 않았다. 텅 빈 줄기 위에도, 왼새끼 꼰 모습으로 뒤엉켜 자란 줄기 위에도 잎이 무성한 상록 침엽수 주목, 죽어서조차 흐트러진 모습 보이지 않고 꼿꼿하게 서 있다. 살아서 천년 죽어서 천년을 보낸다는 주목 앞에서 채 백년도 살기 힘든 인간이 무슨 말을 하겠는가. 고산지대 주목 군락지 앞에 서면 신비로운 경외감이 느껴진다.

 

가리왕산 정상

  

2시간 50분 걸려 가리왕산 정상에 도착했다. 정상석과 돌탑을 중심으로 넓게 펼쳐진 공간은 생각보다 넓은데 햇볕을 막아줄 그늘이 없어 뜨거웠다. 정상석과 돌탑, 저 멀리 바라보이는 구름 덮인 산줄기를 카메라에 담고 오래 머물지 않고 내려왔다. 산에 오르다 보면 올라갈 때 마음과 내려갈 때 마음이 다르다. 힘든 산일수록 더 그렇다. 올라갈 때 놓친 풍경 사진도 찍고 어쩌다 올라가는 산객을 만나면 힘내시고 안전 산행하시라 인사를 건넬 여유도 생겼다,   

  

가리왕산 1폭에 발 담그고


임도를 전후로 펼쳐지는 급경사 코스를 지나 몇 명 둘러앉아 쉴만한 곳에 자리잡고 배낭을 풀어 김밥을 꺼내 먹었다. 아침 일찍 동동대며 아내가 싸준 김밥은 꿀맛이었다. 계곡이 멀지 않았는지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린다. 김밥으로 점심 해결하고 든든한 마음으로 하산하다 계곡물 쪽으로 내려가니 시서늘한 기운이 확 밀려왔다. 등산화를 벗고 계곡물에 발을 담그니 온몸에 흘렀던 땀이 순식간에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발 담근 계곡물 사진을 찍어 아내에게 보냈더니 아내는 금방 답장을 보냈다.      


“호강하시네. 오래오래 놀다 와. 좋은 공기 많이 마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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