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2~3년 사이 집 근처에 새로운 가게가 늘어났다. 그 가게들은 대부분 음식점인데, 베트남, 미얀마, 중국(광둥식, 한국식 등), 미국식 이탈리아, 수제 버거, 피자 등등 아주 다양한 나라의 음식들을 한 동네에서 먹을 수 있게 됐다. 그래서인지 가게가 하나씩 생길 때마다 사람들도 하나둘씩 우리 동네에 오기 시작하더니 작년부터는 식사 시간만 되면 가게 앞에 줄을 선 사람들을 흔히 볼 수 있게 됐다.
언젠가 네이버 지도로 동네를 보는데, 집 근처 새로 들어선 가게들이 모인 골목에 '용리단길'이라는 명칭이 붙은 걸 발견했다. 흔히 '○리단길'이라고 부르는 핫한 가게들이 많은 동네에 붙는 별명이 우리 동네에도 붙고 만 것이다. 망원동이 핫했던 시절 아내와 데이트하던 '망리단길'이 생각났다. 지금은 망원동과 합정동 사이에 있는 회사로 매일 출퇴근을 하다보니 망원동에도 점심 먹으러 자주 가게 된다. 그런데 이제 망원동은 핫했던 시절의 절반도 채 되지 않는 사람만 오가고 있었고 사람들로 붐비던 가게들의 앞 유리에는 '임대 문의'가 붙어있었다.
옛날 옛적 경리단길, 가로수길이 핫했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은 '○리단길'이라는 명칭과, 비싸고 맛은 그저그런 식당만 남기고 한산해져 버린 골목길들이다. 망리단길(망원동), 황리단길(경주 황남동), 이제는 용리단길까지, '○리단길'의 유행은 끝을 모른다(비슷한 예로 '○로수길'이 있지만 서울대입구역 근처의 샤로수길 외엔 아는 곳이 없으니 패스한다).
'젠트리피케이션'이라는 말이 유행하던 때가 있었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우리말샘에 따르면, "중하류층이 생활하는 도심 인근의 낙후 지역에 상류층의 주거 지역이나 고급 상업가가 새롭게 형성되는 현상. 최근에는 외부인이 유입되면서 본래 거주하던 원주민이 밀려나는 부정적인 의미로 많이 쓰이고 있다"고 한다. 대표적인 예로, 이국적인 거리 풍경과 식당, 카페가 많았던 이태원과 경리단길에 사람들이 몰리자 임대료가 올라 가게 주인들이 문을 닫고 동네를 떠났던 사례가 있다. 특색 있는 가게가 사라진 자리에 대형 프랜차이즈 식당과 카페가 들어서면서 거리의 풍경 역시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흔하디 흔한 것으로 변하면서 사람도 떠났다. 남은 건 비싼 임대료와 '○리단길'이라는 이름뿐이다.
우리 동네에 붙은 '용리단길'이라는 명칭에 너무나 선명히 그려지는 미래에 신물이 날 정도다. 가게마다 몰려든 사람들 때문에 동네에서 밥 한번 먹기 힘들어지고, 전세금이 올라 이사를 고민해야 하고, 우리 가족과 단골 가게가 떠난 그 자리에 들어설 고만고만한 프랜차이즈 가게들.
그래서인지 정말 '○리단길'이라는 이름이 싫다. 핫한 동네에 이름을 붙이고 싶다면 그 동네의 특징에 맞는 별명을 붙이든가, 경리단길이 유명하다고 여기저기에 '○리단길'이라고 이름 짓는 거 너무 촌스럽고 한심하다. 유명한 이름 따다 붙이는 건 자연스럽다고도 할 수 있지만 그것도 한두 번이다. 전국 곳곳에 붙은 '○리단길'이라는 작명센스는 젠트리피케이션의 말로처럼 획일화된 한국인의 심성의 반영으로 읽힌다.
덧. '○리단길'이 어울리는 곳은 원조 경리단길 외에는 일산에 핫한 골목에 붙을(?) '일리단길'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왠지 그곳에는 1만 년 동안 솔로인 사람들만 있을 것 같긴 하지만. 무슨 드립인지 알면 와라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