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 흩어 보내버리지 않기 위한, 감추지 않은 익명의 상담 기록
혹여 잊었을까 말씀드리자면, 이건 상담 기록이다. 상담사께서는 애도에는 5개의 특징적 단계를 거치는데, 이 단계는 부정-분노-타협-우울-수용의 단계로 이뤄진다고 설명해주셨다. 이 또한 너무나도 전형적이라 알 수 없는 불편함이 있었지만 더 깊은 내면에서는 안도감이 들었다. 나는 어디쯤일까.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7년의 시간이 흘렀음에도 아직 수용의 단계에 이르지 못한 것은 분명했다.
임용고시를 공부를 위해 노량진에서 살던 때의 일이다. 어느 날의 꿈속에서 어머니와 자유롭게 산책을 했다. 또 어느 날의 꿈속에서는 어머니를 휠체어에 태우고 이곳 저곳을 여행하기도 했다. 또 어느 날의 꿈속에서는 어머니와 다투었고, 또 어느 날의 꿈속에서는 어머니의 장례식이 한창이었다. 그때마다 나는 눈물로 배겟잇을 적시며 일어나 꿈에서 아직 깨어나지 않은 채로 어머니가 아직 살아계신 것은 아닌지, 여기서 이럴게 아니라 어머니의 옆을 지키러 가야하는 것은 아닌지 생각했다.
그 날의 상담은 조금 특별했다. 어머니에 대해서 또 한 차례 이야기를 나누었다. 상담사께서는 나에게 잠깐 눈을 감아보라고 하셨다. 이어서 지금부터는 어머니를 만나러 갈건데, 만나는 장소를 뭐라고 하면 좋을지 이야기해보라고 하셨다. 판타지 소설도 아니고 이 세상에 없는 사람을 만난다고? 아주 잠깐 너무나도 현실적인 생각이 스쳐갔지만, 이성적인 생각들은 좀 내려놓기로 했다. 눈을 감을 상태로 약간은 어리둥절해 하며 답했다.
"글쎄요... 뭐라고 할까요...? 교회를 열심히 다니셨으니까, 천국에 계시긴 할텐데"
상담사께서는 어리둥절해하는 나를 보며 덤덤하게 말했다.
"음, 중간계라고 하면 어떨까요?"
"네, 뭐 그러면 될 것 같아요."
아무렴 어떤가. 그곳을 뭐라고 부르던 그리 중요하진 않았다. 이제 본격적으로 어머니를 만날 차례였다. 무엇인가 받아들여지지 않는 이질적인 느낌은 계속 되었지만 최대한 받아들여보기로 마음먹었다. 상담사께서 다소 긴장해있는 내게 다시 말했다.
"천천히 중간계를 떠올려보세요. 무엇이라 설명하긴 어렵지만, 지금 떠오른 그 모습 그대로를 중간계로 받아들이시면 됩니다. 저기 멀리 여우님의 어머니가 보이네요. 어떤 모습이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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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하게도 눈을 감고 들은 말들은 마치 최면에 걸린듯 사실이 되었다. 어이없게도 우리가 중간계라고 부른 그 어설픈 공간 속에서 어머니가 나를 보고 있었다. 참을 수 없는 고통에 시달렸던 어머니와는 다르게 중간계에서 만난 어머니의 얼굴은 참으로 편안해 보였다. 그래서 마지막 질문을 받았을 때 나는 터져나오는 울음을 꾹꾹 삼키었다. 멈추지 않는 눈물을 닦으며 대답했다.
"...... 편해보이세요."
"여우님의 어머니께서 이제는 좀 편해보이시는군요. 혹시, 어머님께 하실 말씀이 있으신가요?"
떠오르는 말은 있었는데, 오랜만에 마주한 어머니 앞에서 한참 울음을 삼켜야 했기에 답을 하기까지는 제법 오랜 시간이 걸렸다. 하고 싶은 말이 많았는데, 다른 말들은 입에서 잘 떨어지지 않았다.
"그냥... 저 왔다고 말하고 싶어요."
"그렇군요. 어머님은 여우님에게 어떤 말을 하실 것 같으세요?"
아, 이번엔 참을 수 없었다. 나를 지긋이 바라보는 어머니를 보고 결국 나는 아이처럼 엉엉 울었다. 나는 그런 어머니가 내게 무슨 말을 할지 이미 알고 있었다.
"......이제 다 괜찮다고... 지난 일이라고..."
"이제는 편안해 보이는 어머니께서는 여우님에게 다 지난 일들이라고 말씀하시는군요."
"네..."
"여우님은 그런 어머님께 어떤 말씀을 해드리고 싶으세요?"
다음 질문에 답하는 데에는 또 다시 울음을 참아내느라 한참의 시간이 필요했다.
"...저 선생님되서 교사 생활 잘하고 있고, 군대도 잘 다녀왔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어머니께서 잘 알고 있다고 하실 것 같아요. 또 하실 말씀 있으실까요?"
"엄마 아플 때, 같이 있어주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내 말을 들은 어머니는 그저 편안한 얼굴로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어머님을 보내드릴 차례예요. 마지막으로 어머니께 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신가요?"
"고마웠다고, 앞으로도 잘 지내겠다고, 잘 지켜봐 달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어머니께 그 말씀이 잘 전달이 된 것 같아요. 이제 어머님을 보내드리려고 해요. 여우님의 어머니께서 이제 천천히 멀어지고 계세요. 하나, 둘, 셋 하면 심호흡을 하시고 천천히 눈을 뜨시면 됩니다. 하나, 둘, 셋."
어머니와의 짧은 만남이 못내 아쉬웠다. 결국 모든게 상상이지 않냐고 되묻는다면 솔직히 그렇다고 밖에 할 말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확실한 것은 이제는 어머니의 죽음에 대한 애도의 마지막 단계에 이르렀다는 것이었다. 이제서야 은연 중에 늘 나를 끌어당기는 우울감에서 해방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