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늘, 아이의 초등학교 입학을 맞아 가졌던 1년간의 육아휴직을 마치고 복직했다.
아침에 버스를 타고 가는데 서강대교의 익숙한 주황색 구조물이 눈에 들어오는 순간 '아아...여길 진짜 다시 와버렸네...' 라는 회한어린 감회가 튀어나왔다. 출근길 내내 마음이 어지러웠는데, 여의도로 향하는 최후의 관문처럼 자리한 서강대교가 보이자 기어이 올 것이 왔다는 아쉬움과 약간의 두려움이 정점을 찍었다.
고작 1년의 휴직이건만 내 마음이 회사와 너무나 멀어졌고, 처음 해보는 복직이 아닌데도 정말 어렵고 큰 벽을 마주한 기분이었다. 회사에 대한 당연한 소속감이나 애착은 거의 없어졌고, 자연인인 내가 소중해졌다. 그런데 복직은 밀어 닥쳤고, 업무는 처음 해보는 분야이고, 가자마자 다들 '우리팀 너무 바빠' 라고 입을 모아 말한다. 아이고 심란하다. 물론 경험상 그 어떤 팀에 가도 '우리팀 널럴해. 이곳에 온 걸 축하한다!' 라고 하는 경우는 없긴 하다.
지금은 일교차가 10도 이상 벌어지면서 낮에는 바람에서도 포근한 기운이 느껴지고 밤에는 찬 기운이 느껴지는, 그야말로 봄으로 들어서려는 시점이다. 작년 이맘때는 놀이터에서 아이들 노는 걸 지켜보며 시시각각 계절을 온몸으로 맞고 있었건만... 삶이 너무 다면적이라 피곤하다.
용어도 모르고 프로세스도 모르는 업무의 '현황' 설명을 듣고 있노라니 자기효능감이 바닥으로 떨어지고 앞날이 깜깜하지만, 근속 16년차의 배포(아 몰라, 죽지야 않겠지. 죽을 거 같음 퇴사하자)로 마음을 다스리고 바삐 퇴근했다. 아들이 너무 보고싶었다. 최근 1년을 딱 붙어 있었을 뿐, 그 전에는 각자 회사와 어린이집에서 오랜 시간을 보냈는데 일상을 빼앗긴 듯한 진한 아쉬움이 들었다.
아이는 나의 복직을 앞두고 별 말 없이 변화를 수용하는 것 같다가 복직이 다섯손가락 이내로 가까워지자 한번씩 아쉬움을 내비쳤다. 아파트 1층에 입주민 운영위원회 후보자 벽보가 붙은 것을 보다가 직업란에 표시된 '없을 무' 한자를 보고 이게 뭐냐고 묻더니 직업이 없을 수 있다는 걸 깨닫고 '엄마도 직업 없으면 안돼?'라고 자꾸 물어봤다. 3살부터 7살까지 그 어린 시절, 그 오랜 시간을 어린이집에서 보낼 때는 뭘 몰라서 그런 말을 못했었는데. 또 휴직을 할 수는 없냐고 물어보길래 쉽지 않다고 했더니 '회사는 되게 엄격하구나. 20년 정도는 쉴 수 있어야 되는 거 아니야?'라고 투덜댔다.
그런 얘길 하다보니 아이가 시간과 돈이 교환관계에 있다는 걸 아는지 궁금해져서 '엄마가 일을 안 하거나 덜 할 수 있어. 그러면 하남돼지집 가는 대신 정육점에서 고기 사다 집에서 구워먹고, 방학 때 해외여행 가는 대신 국내여행을 가야되는데 그건 어때?' 라고 아이에게 물어보았다.
아이는 의외로 망설이지 않고 '엄마가 일 안하는 게 좋아. 같이 경복궁 간 거 엄청 재밌었잖아' 라고 대답했다. 그건 심지어 여행도 아니고 그냥 나들이인데. 같이 평일에 경복궁 야간개장 가면서 닭꼬치 사먹은 게 그렇게 맛있고 재밌었더랬다.
이런 대화를 하다보면 회사에서 이렇게 긴 시간, 이렇게 복잡다단한 일을 하는 게 나에게 맞는 걸까 의문이 든다. 얘랑 나랑 경복궁 가서 경회루의 물그림자를 바라보고, 고궁에서 울려퍼지는 클래식 연주를 들으며 손잡고 걸을 수 있는 날이 얼마나 남아있을지 모르겠다. 아이의 성장은 아무것도 기다려주지 않으니까.
오늘 퇴근해 돌아와 아이를 만나서 하루 생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아이가 '엄마를 오랜만에 본 거 같아. 엄마가 계속 없으니까 너무 보고 싶더라' 라고 무심한 듯 서정적으로 말했다. 그리고는 한 마디 덧붙였다. '엄마, 주말이 엄청 소중해질 것 같아.'
맞다. 원래 직장인에겐 주말이 소중한 법이다. 평일에 시간이 없기 때문에. 그런데, 만 7세인 너에게도 그렇다는 게 너무 안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