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직을 하면서 아이 돌봄 문제로 가장 고민됐던 부분은 나와 남편이 출근하고 아이가 등교하기 전까지 시간이 빈다는 점이었다. 아이가 정상 등교를 하려면 집에서 8시 40분 이후에 나가야 하는데 나는 7시, 남편은 8시에 집을 나선다(초등학교에서는 8시 45분 이후 등교하라는 게 일반적인 지침인 듯하다.).
처음 계획은 남편 출근 때 아이도 등교해서 아침돌봄교실에 들어가는 것이었다. 아침잠 많은 아이와 단 한번도 등원/등교 준비를 안해 본 남편이 잘 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되긴 했지만 어차피 시작할 땐 뭐든 서투른 법이니 어쩔 수 없다. 복직하기 열흘 전, 적응기간을 염두에 두고 아이를 아침돌봄교실에 보내보았다. 일어나기 힘들어 하고, 밥 챙겨먹기 빠듯한 건 예상했던 바라 괜찮았는데 그날 하교한 아이로부터 새로운 문제가 튀어나왔다.
"돌봄 때는 뭐했어? 아는 친구들도 있었어?"
"돌봄교실에 마법천자문 책이 있어서 그거 읽었어. 그런데 엄마, 거기에 김영수랑 이철수가 있더라?"
김영수는 지난해에 우리 아들의 얼굴을 때려서 문제가 됐던 아이이고, 이철수는 때린 적은 없지만 마주칠 때마다 놀리고 때리는 척하고 얼굴에 입을 벌려 들이대는 등의 행동을 해서 우리 아들이 '이것도 괴롭힘인데 학폭위에 가면 안돼?' 라고 물어봤던 아이였다(가명이다). 이게 맞벌이의 한계인가? 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그리도 아침돌봄교실을 두번째로 다녀온 날, 아이가 더는 거기에 안 가고 싶다고 했다.
"내가 책보고 있는데 이철수가 몰래 와서 귀에 빨대대고 후 불어서 귀가 멍했어. 돌봄선생님은 그걸 봤으면서 혼내지 않고 그냥 사과하라고만 하는 거야! 그러니까 걔가 무시하고 가버렸어. 진짜 너무 싫어."
장난의 도가 지나치고, 돌봄교실 선생님이 이런 상황을 해결하긴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 문제는, 그래서 화가 난 우리 아들이 이철수의 발을 밟았다고 의기양양하게 말한 것이었다. 폭력에 폭력으로 응하면 안 된다고 수십 번을 말하지만, 이런 상황이 반복될 때 어른도 아니고 애가 평소 교육받은 대로 행동하기는 어려운 법이다. 아이의 스트레스도 문제지만 이러다 우리 애가 대응과정에서 사고를 칠 수도 있을 것 같아서 결국 아침돌봄교실은 포기했다.
그렇다면 아이가 혼자 집에 있다가 시간 맞춰 집에서 나서야 하는 거라서 거실시계를 디지털시계로 바꾸고 씨씨티비를 설치했다. 바늘 시계의 경우 아이가 천천히 헤아리면 시간을 읽을 수 있지만 아직도 실수가 잦고 시간을 바로 캐치하질 못해서 미덥지가 않았다. 남편은 애가 아날로그 시계도 잘 봐야하는 나이인데 미숙하다고 디지털 시계로 바꾸면 어떡하냐 했다.
"지금 그게 문제야? 당장 다음주부터 애가 혼자 있다 학교에 가야하는데."
회사에서든 집에서든 뉴비가 숙련될 때까지 기다리며 교육시키는 것은 시간에 여유가 있을 때나 가능한 일이다. 시계 읽는 법을 모르는 건 아니니까 언젠가는 익숙해지겠지.
그렇게 여러 시행착오와 고난을 각오하고 복직을 준비하던 중에 의외의 도움의 손길이 나타났다. 우리집에 오신지 3년째 되는 청소 도우미 이모님이 대충 상황을 알고 계셨는데, 아무래도 애가 눈에 밟힌다며 매일 아침 애 등교시간에 와서 보살펴 주겠다고 하시는 게 아닌가. 아침 1시간만 도와줄 사람은 새로이 구할 수도 없어서 등원 도우미 쪽은 아예 포기하고 있었는데 진짜 내 입장에서는 천사가 등장한 것이다. 이 분의 일하시는 일정이 매일 오전 꽉 차 있는 걸로 알고 있었었는데, 우리집에 와서 애 학교 보내주고 일하러 나가면 시간이 괜찮다고 말해주셔서 진짜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나는 아이를 키우는 내내 평일에 혼자 등원준비, 등원, 하원, 살림, 돌봄을 전담하면서 회사를 다녔는데(휴직기간엔 회사는 안 다녔지만) 시터님이 하늘에서 뚝 떨어지고 나서 일주일이 지나자 '아, 양가의 도움이 있거나 잘 맞는 시터가 있으면 맞벌이가 애 둘을 낳을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애 하나 키우기도 너무나 벅찬데 어떻게 맞벌이 가정에서 애 둘 키우는 집이 이렇게 많은 건지 이해가 안 됐었다. 맞벌이인데 우리 집처럼 아빠의 기여도가 낮은 집이 드문 한편으로, 양가 중 최소 한 쪽의 도움을 받는 경우가 많은 건 알고 있었지만 매일 오는 이모님의 도움을 받아보니 삶의 질에 정말 큰 차이가 있었다.
내가 아이 옷과 가방은 준비해두고 나가지만 아이를 깨우고, 시간 맞춰 옷 입고 아침먹고 집을 나서도록 관리감독하는 과정을 다른 사람이 해주니까 아침이 가뿐하다. 그리고 감사하게도 간단한 설거지나 정리도 해두고 나가셔서 퇴근하고 집에 왔을 때 살림의 부담이 없다. 애랑 놀이터 가고 산책하고 숙제시키고 준비물 챙기고 저녁만 차려먹으면 된다(...)
아이가 더 어렸을 때, 경제적으로 부담이 되지 않는 선에서 시터를 고용할 수 있었다면 나도 애를 더 낳았을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원래는 아이를 셋 정도 낳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가 키우면서 그 생각이 싹 사라졌으니까. 나는 양가 도움을 안 받는 건 물론이고, 평일엔 남편의 손길도 없이 애를 키우며 회사에 다녔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데 그런 삶의 결론은 외동이다. 애 낳기 전에 이런 삶을 미리 그려보는 사람이라면 딩크를 결심할 수도 있다. 당연하다.
홍콩 지사에서 3년 넘게 일하다 최근에 한국으로 복귀한 친구를 만났는데, 홍콩에서는 외국인 메이드를 두는 게 일반적이라고 알고 있었기에 이것저것 물어보았다. 월 80만원 선에서 24시간 입주 메이드를 고용할 수 있는데, 귀국 휴가를 지원해주는 등의 이런저런 부대비용까지 생각하면 넉넉잡아 월 100만원 이내라고 한다. 한편 또 다른 친구는 (한국에서) 6살짜리 아이의 오전 3시간, 오후 3시간 등하원 도우미를 구할 때 면접 상대방 분이 월급은 250만원이며 아이 돌봄 이외의 가사는 전혀 하지 않는다고 하셔서 결국 사람 구하는 걸 포기했다. IMF가 2023년 10월 발표한 2024년 예측치 기준으로 홍콩의 1인당 GDP는 54,078달러, 우리나라의 1인당 GDP는 34,653 달러로 홍콩의 소득이 우리나라의 1.5배가 넘는 걸 생각하면 도우미 비용의 차이가 엄청나다. 그건 홍콩에서 외국인 노동을 저렴한 가격에 사용 내지 착취하는 구조를 용인하는 사회라 그런 것이긴 하지만 솔직히 부럽다. 갓난아기도 아니고 6살짜리를 6시간 보는 데에 월 250만원을 쓸 수 있는 집이 얼마나 될까. 보통의 맞벌이 가정이라면 부모의 체력과 건강을 깎아 겨우겨우 애를 키우면서 아이는 기관에 해질때까지 있거나 아니면 학원 뺑뺑이다. 그래서 수많은 할머니들이 노구를 이끌고 손주를 돌봐주시는 거겠지.
나는 이제 육아의 피크를 지나쳤기에 부담이 덜 하지만, 그럼에도 도우미 이모님이 아니었더라면 복직하고 정말 힘들었겠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우리 아이는 도우미 이모님 번호를 저장하면서 '의붓할머니'라고 이름지었다. 그 표현을 보고 한참 웃었는데, 아이 딴에는 진짜 할머니에 가깝게 느낀다는 의미로 지은 명칭일 것이다. 시터의 존재가 너무 좋다. 그런 한편으로, 육아에는 최소한 두 사람의 손길이 필요하다는 걸 새삼 다시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