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 어른으로 살면 좋겠어

by 민주

친하게 지내던 나보다 한참 어린 동생이 있었다.

그애는 명문대를 졸업했지만 5년쯤 지나 다른 길을 찾아 다시 수능 준비를 했다. 착하고 잘 웃으며 독립적인 성격인 그녀는 독서실 총무 알바를 해가며 2년간 공부해서 원하던 대학, 원하던 과에 합격했다. 너 진짜 훌륭하다- 소리가 절로 나왔다. 나는 이십대 후반의 나이에 다른 직업경로를 위해 인생을 걸기엔 이미 겁이 너무 많았다. 그만큼 원하는 바도 없었다. 그래서 그녀의 도전과 결실이, 나로서는 엄두가 나지 않으면서 정말 멋지게 느껴졌다.


그렇게 시작된 새로운 대학생활, 다시 맞이한 새내기의 파릇한 하루하루. 첫학기 중반 즈음에 만났을 때 그녀는 공부가 어려운 것 보다도, 나이가 많다보니 더욱 주변과 잘 어울려야겠다는 압박감이 있어서 이런저런 자리에 빠지지 않고 다니다보니 힘에 부칠 때가 있다고 했다. 평소에 내가 일하기 거지같다고 투덜댈 때처럼 그애도 웃으면서 이야기했다.

그리고 얼마 안 가서, 그 애는 그 학기를 못 채우고 뛰어내려 죽었다. 그 나이에 수능공부를 다시 해서 대학에 다시 가는 막막한 과정을 이겨낸 그녀에게 누구도 멘탈이 약하거나, 의지력이 약한 사람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어둡고 힘든 시기를 잘 이겨내더니 남들이 보기에 드디어 꽃길인가 싶을 때 그렇게 가버렸다.


그애가 죽은 뒤, 살아있을 때보다 훨씬 더 많이 그애에 대해 생각했다.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 무슨 징조가 보이진 않았나 돌이켜보았다. 그애는 전혀 우울해 보이지 않았었다. 하지만 나중에 들어보니 정신적으로 상당히 지쳐있었고, 정신과 진료를 받고 싶지만 그런 진료 기록이 나중에 커리어에 안 좋은 영향을 미칠까 걱정되서 진료를 미루고 고민하던 중이었다고 한다.


일하다 생긴 지병으로 고생하던 직장 동료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후, 그와 아주 친하지는 않았음에도 오래도록 생각이 났다. 그의 지병에 대해 웃음을 섞어서 나눴던 대화가 반복해서 생각났고, 그의 죽음이 너무나 비현실적이고 어이없다는 느낌이 자꾸 맴돌았다. 참나... 진짜 어찌 그래... 참나.... 이런 혼잣말을 속으로 자꾸 되뇌였다. 해외 근무 중에 몸이 너무 안 좋아서 현지에서 수술을 받았는데 그 뒤로 부작용도 있고 제대로 낫질 않았다고 들었다. 그때 무리해서 수술하지 말고 일단 휴직이든 뭐든 하고 한국에 들어왔으면 어땠을까, 이제 와선 의미없는 생각이지만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휴직 중에 상을 당한 것이라서인지 한창 때인 직원이 죽었는데 장례식장에 생각보다 회사 사람들이 많지 않았고, 그의 어린 자식들은 상복을 입고 해맑게 앉아있었다.


생각이든, 육체적 괴로움이든 간에 내 몸 안에서 일어나는 일은 나만의 것이라 남이 제대로 이해하기 어렵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선택의 기로에 선다면 내 몸과 정신이 건강한 것이 우선이고 일, 학업, 관계같은 것들은 제법 중요하긴 해도 건강보다 중요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생업, 책임감, 일에 대한 욕심, 미래에 대한 두려움, 본인의 성격이나 기질같은 것이 우리를 제법 강하게 밀어부친다. 그게 나쁘다고 생각지는 않는다. 스트레스 없는 성취나 발전이 어디 있겠는가. 근육도 찢어졌다 아물면서 강해지는 것을.


일을 하다 보면 내가 괴로워하고 힘들어했던 과업의 경험이 좋은 자산이 되는 경우가 많다(인간관계가 문제거나 악의적인 갑에게 당하는 경우는 빼고). 하지만 '내가 감내할 만한 수준'이 어디인지를 눈치채야 한다. 뛰어내릴 만큼 괴로운데 그 순간까지 정신과 상담 한 번을 못 가보고, 몸의 병이 깊어지면서 불면증이 생겼는데 어찌할 바를 모르고 지내다 불면이 우울이 되고, 그렇게 아팠던 그들을 생각하면 슬프고 억울하다. 내가 그 입장에 있었다면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었을까? 정신의 아픔도 몸의 아픔처럼 견뎌낼 수 없는 한계가 있다.


인간의 회복탄력성으로 충분히 이겨낼 수 있는 상황에 과도한 상담이나 약물치료를 들이대는 것도 문제지만 아직 우리나라는 (비록 정신과들이 아주 성황이긴 하지만) 정신과 치료에 대해 색안경을 완전히 벗진 못했으니까, 일반적으로는 치료에 좀더 열린 마음으로 보면 좋겠다.


마땅한 스트레스, 긍정적인 압박감과 정신을 무너뜨리는 스트레스의 구분점은 사람마다 다를 거다. 그 균형점을 과연 개인이 정신승리를 통해서 찾아갈 수 있을까. 목적-수단적인 삶의 방식, 미래에 대한 희망보다는 걱정이 많은 문화, 당장의 아픔은 일단 덮어두고 일/학업에 매달리는 걸 칭찬하는 정서가 지배문화인 것은 개인의 정신건강에 해롭다.


아이가 나에게 '엄마는 내가 커서 뭘 하면 좋을 것 같아?' 라고 물었다. 나는 직업이나 성취에 인생과 건강, 그리고 인격이 매몰되지 않길 바란다. 무엇을 하는지보다는 어떻게 사는지가 중요한데 그게 자꾸 묻힌다. '어떻게'를 보여주는 건 어렵고, '무엇'을 성취하는 건 명확하니까.

'엄만 네가 건강하고, 성실하고, 씩씩한 어른으로 살면 좋겠어. 뭘 하든지 상관없이.'


애가 아직 어려서 내가 이렇게 생각하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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