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아이의 학원 방학에 맞춰서 강릉으로 일주일간 휴가를 다녀왔다.
휴가가기 며칠 전 어느 기사에서 보니 이번 여름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많이 휴가가는 기간은 7월 마지막주 주말이고, 가장 많이 가는 행선지는 동해안이며, 가장 많이 이용하는 교통수단은 자동차라는데 우리 가족이 딱 그 대한민국 표준 케이스였다.
아이가 학교에 들어가기 전에는 앞이든 뒤든 극성수기에서 2주만 피해서 움직여도 훨씬 여유가 있는데 왜들 이 시기에 휴가를 가나 싶었는데 아이 학원 방학을 고려하면 그 모든 다른 조건 -번잡함, 가격 비쌈, 예약 어려움 등등-에도 불구하고 이 때가 최선인 것이었다. 국내라면, 어딜 가도 뜨거운 시기이고 어딜 가도 숙박비가 비수기의 2배에 육박한다. 하지만 많은 학원들이 7말8초에 약속한 듯이 방학을 해버려서 우리 휴가도 여기에 맞출 수밖에 없었다. 아직 아이가 어리고 비싼 학원에 보내는 것도 아니라서 학원 방학과 다른 기간에 휴가를 간다 해도 수업 진도나 수강비가 그리 문제되진 않는데, 그때 휴가를 가지 않으면 학원이 방학하는 시점에 생기는 공백을 다른 방법으로 채워야 하는 게 문제다.
그래서 그야말로 극성수기에 국내로 휴가를 떠났다.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강원도든 바닷가든 상관없이 더위를 피한다는 본래 의미의 피서는 불가능한 날씨였다. 휴가 중에 일기예보에서는 강릉의 일일 최저온도가 관측 이래 최고점(30.x도)을 기록했다고 나왔다. 처음 머물렀던 숙소는 해변까지 걸어서 10분 정도였는데 첫날 저녁에 한 번 걸어가본 이후로는 항상 차를 타고 다녔다. 해지기 전에 3분 이상 걸으면 '덥다, 정말 덥다' 소리밖에 나오지 않았다. 이 시기에 한반도 안에 이 더위를 피할 수 있는 곳이 있을까? 고도를 높여 그늘진 산 속으로 가면 가능하려나.
식당 사장님조차 '강릉에 일주일을 왔다구요?'라고 놀란 우리의 일주일 휴가는, 뜨겁게 타오르는 태양과 온 세상이 눅눅해지는 습기 속에서도 나름 순조로웠다.
낮에는 주로 실내 빙상장, 서점, 드로잉 카페 등 더위를 피할 수 있는 장소에 많이 갔고 바닷가에는 여섯시반 이후에 나갔다. 나는 '이 나이에 내가 이러고 놀다니' 라고 생각하며 진심으로 즐겁게 파도의 흐름에 맞춰 떠오르고, 바닷물 위에 누워 해지는 구름낀 하늘을 바라보고, 아이와 함께 헤엄치며 놀았다. 동해치고 물이 차지 않아서 좋았는데, 어느 날은 아이가 바다에 들어가자마자 해파리에 쏘이기도 했다. 알고보니 올해 수온이 너무 높아서 해파리가 극성이라 했다. 아이가 쏘인 직후 바다를 보니 그제서야 떠다니는 해파리들이 눈에 들어왔다. 사람 머리통보다 크고 갈색 갈기같은 게 달린 꽤나 크고 눈에 띄는 종류였다(노무라입깃해파리라 한다). 시간이 좀 지나 썰물 때가 되자 해파리가 쓸려나가 다시 괜찮아졌다. 해파리에 쏘인 것에 깜짝 놀라 '나 바다에 트라우마 생겼어'라며 평생 바다에 안 들어갈 듯이 울적해하던 아이는 20분 지나자 다시 바다에 다리부터 슬금슬금 담그더니 아빠에게 해파리가 있는지 감시해달라고 하고는 다시 헤엄치며 놀았다. 회복탄력성이 좋다. 트라우마는 이내 무용담으로 진화했고, 해파리 촉수가 닿았던 흉터를 다소 자랑스러워했다. 내가 보기엔 해리 포터 이마의 시그니처 상처처럼 생겼다. 정형화되지 않은 번개모양의 얇실한 흉터.
휴가지에서도 더위는 그대로였지만, 일주일이 참 즐거웠다. 어른은 일하지 않고 아이는 공부하지 않고 한가롭게 온 가족이 보내는 시간이 귀하다.
일주일 여행을 떠나면서 나의 계획은 화이트 보드에 적어놓은 강릉 위시리스트 -서점, 아이스링크, 바다, 수영장, 요트, 배낚시, 드로잉카페, 스크린야구- 가 전부였는데 다녀와서 비교해보니 리스트를 모두 달성해서 뿌듯했다. 더위를 피해 숙소에 있을 때면 올림픽 경기를 보거나 책을 읽거나 게임을 하면서 쉬고, 혹은 식당을 찾아보거나 임박한 일정을 예약했다(요트 외에는 미리 예약하지 않은 채 강릉으로 떠났다). 여행이 참 쉬운 세상이다.
날씨는 너무나 덥고 끈적했고, 강릉은 북적거렸지만 우리의 휴가는 여유롭게 마이 페이스여서 휴가가 끝난 주말에는 마치 복직을 앞뒀을 때처럼 (그때보다 강도는 약하지만) 상실감이 느껴질 정도였다.
날이 너무 더워서 걸어서 여기저기 다니질 못하다보니 도시를 제대로 맛보지는 못했다. 또 온다면 가을에, 바닷가를 느긋하게 걸어다니고 오죽헌이나 초당마을도 찬찬히 둘러보며 발길 가는 대로 가게나 식당에도 들어가보는 여행을 하면 좋을 것 같다.
너무나 원하던 배낚시나 바다수영 등을 다녀와서 씻고 게임을 하거나 책을 읽으며 쉬는 아이에게 한 번씩 "행복하냐?"라고 툭 물음을 던지면 "응! 강릉 너무 좋아!" 라는 답이 바로 튀어나왔다. 작년에 갔던 발리와 비교하면 어떻냐고 묻자 발리가 더 좋다는 냉철한 답이 돌아오긴 했지만, 또 와도 좋겠다 싶게, 떠나는 발걸음이 아쉽게 일주일을 보냈으니 비록 더위의 한복판으로 들어간 휴가지만 참 휴가답게 잘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