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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주 Aug 11. 2024

내 생애 최고로 스포티한 나날

 나는 운동에 소질이 없다. 어떤 집단에 들어가도 그중 운동신경이 제일 없는 사람이다.

 그리고 사람은 뭐든 좀 잘해야 할 맛이 나는 법이라 운동을 좋아한 적도 없다. 이게 참 비극적인 악순환인데, 큰맘 먹고 배워도 워낙 실력이 늘지 않으니 재미가 없고, 그러다 보면 오래지 않아 그만두게 되고, 그러니 계속 운동을 못하고 자연히 체력도 안 붙으니 더욱 신체활동이 하기 싫어진다.

 학창 시절에 체육 실기는 어떤 종목에서도 가장 하위 그룹이었고, 학교나 회사 행사로 등산을 가도 꼴찌이고, 어른이 되어 건강을 위해 스스로 선택해서 나름 반년 이상 이어 나갔던 다양한 운동들의 경우도 몸에 안 붙기는 매한가지였다. 

 내가 어른이 되어 반년 이상 레슨을 받아봤던 운동들만 헤아려도 테니스, 필라테스, 요가, 방송댄스, 골프, 헬스 pt 등으로 다양한데 정말 안타깝게도 몸에 변화를 느낀 적이 없다.

 방송댄스는 다른 회원들과 친해져 정말 즐겁게 다녔지만 수업이 끝날 때마다 어지럽고 몸이 쳐지는 데다가 매일 반복되는 기본기 동작을 반년이 지나도록 몸에 익히지 못했다. 그나마 필라테스, 요가, 헬스처럼 재활 스포츠라고도 할 수 있는 종목들은 상대적으로 할 만했는데 하고 나서 뿌듯하거나 약간 몸이 풀린 것 같은 느낌을 넘어서는 결과를 얻진 못했고, 특별한 열정이 생긴 적도 없다. 반년 넘게 꾸준히 치료받은 재활의학과의 도수 선생님은 '000 님 같은 경우는 스포츠보다는 걷기를 꾸준히 하시는 게 좋아요'라고 했으며 이비인후과에서도 '000 님처럼 비염이 있고 종종 축농증으로 발달하는 사람은 수영을 하면 안 됩니다'라고 했으니 몸뚱이 자체가 운동 쪽이 아닌 건 확실하다. 

 운동 쪽으로 덜 떨어진 신체 및 적성 프로필을 가진 인간이기에 살면서 스포티했던 적이 없는데 신체 건강하고 운동 좋아하는 아들을 키우면서, 그리고 작년 휴직 중 사귄 동네 친구들의 건강하게 운동을 즐기는 일상을 접하면서 체력과 운동을 즐길 수 있는 적성이라는 게 하나의 생명체로서 인간에게 참 중요한 장점이구나 싶었다. 직장 다니면서 점심시간이나 퇴근 후에 시간을 짜내서 운동하는 사람들 말고, 백지 같은 일상을 스포츠로 채워나가는 사람들을 보니 참 좋아 보였다. 내가 느끼기에 전자는 취향에 무관하게 위대한 동시에 생계형인 것이고, 후자는 정말 운동을 좋아하는 취향을 가지고 삶을 즐기는 것이랄까. 나로 말하자면 휴직 중 생긴 여유시간을 운동에 대량 투자해 보려다가 축농증과 일자목 등으로 순식간에 좌절당하고 그림 그리기와 글쓰기, 그리고 산책에 만족했더랬다.


 이러저러한 나의 취향과 적성에도 무관하게 아이의 초등입학 이후 지금에 이르기까지 나는 생애 최고로 스포티한 일상을 보내는 중이다. 운동을 좋아하는 외동아들을 둔 자의 숙명이랄까. 주말은 물론이고 평일 퇴근 후에도 캐치볼, 배드민턴, 탁구 등으로 아이와 시간을 보내고 티브이를 볼 때도 주로 뭉쳐야 찬다, 골 때리는 그녀들, 최강야구 등 스포츠 예능 및 주요 경기를 시청하며 보드게임을 할 때도 야구, 축구, 농구 게임을 즐긴다.

 누군가가 이십 대의 나에게 '너는 1n 년 뒤 풀타임근무를 한 뒤 삼복더위에 글러브를 들고나가 캐치볼을 하는 40대가 될 것이다'라고 했으면 비웃었을 것이다. '너는 월드컵 예선전을 직접 가서 관람하고 야구 직관 티켓팅을 위해 알람을 맞춰두고 전전긍긍할 것이다'라고 했으면 박장대소했을 것이다. 


 물론 이 일상에 불만은 없다. 태어난 지 8년 된 녀석에게 이미 탁구나 배드민턴을 더블 스코어 이상 차이 나게 완패하고, 공을 던져주면 왜 이상한 데로 던지냐고 불만 어린 소리를 듣고, 신호등까지 달리기를 하면 반드시 지긴 하지만 상관없다. 우리는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으며, 나 때문에 단체 이어달리기에서 우리 반이 1등에서 꼴등으로 쳐져서 이제 그만 세상에서 사라지고 싶은 어린이도 아니고, 실기 점수를 따려고 아무리 던져도 실력이 늘지 않는 농구 자유투를 연습하며 울 것 같은 중학생도 아니고, 다른 선후배들의 등을 보며 산길을 따라가느라 눈치 보이고 힘든 신입생도 아니다. 못해도 된다. 승부욕이나 성취목표 없이 스포츠를 한다는 게 어떤 사람에게는 시시한 일이겠지만 나에게는 비로소 운동이 편안해진 것이다. 그리고 아무리 못해도 체력에는 도움이 될 텐데 내가 스포츠에 바라는 건 그 정도다.(물론 운동신경이 좀 더 있어서 내가 운동실력으로 아이를 능히 상대하고, 존경심 섞인 대접을 받으며 같이 놀 수 있었으면 더 좋았을 것이다.)


 예전에 명절 때 친척들이 모이면 남자 어른들 위주로 스포츠 채널을 틀어놓는 게 참 불만스럽고 재미도 없는 걸 왜 저리 보나 했는데, 지금은 그런 자리에서 스포츠 프로가 나오면 마음이 편안하고 재미도 있다. 내가 특별히 좋아하거나 잘하지 않는 무언가를 하는 시간도 즐거울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새롭고, 많이 남은 인생에 참 희망을 주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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