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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주 Jul 07. 2024

엄마 직업의 목적이 뭐야?

 초등 2학년인 아들이 학교에서 다양한 직업에 대해 배우더니 그 마무리로 우리 동네 어른과 직업에 대한 인터뷰를 하라는 숙제를 받아왔다. 생판 타인의 인터뷰 따기 어려운 현실을 반영한 듯, 가족을 대상으로 한 인터뷰도 무방하다고 했다. 몹시 내향적인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우리 아들은 당연히 날 인터뷰 대상으로 지목했고 '엄마 직업은 이런 문답을 나누기에 좀 애매한데...'라는 나의 반론을 무시하고 인터뷰가 진행됐다. 


 숙제지에 나와있는 질문들, 아이의 입을 통해 내게 던져진 그 질문들은 참 이론적이고 아름다운데 그래서 어이없고 실소가 나오기도 했다.

 "엄마, 직업의 목적이 뭐야?"

 "내가 일하는 목적? 아니면 내가 다니는 회사의 목적?"

 "으음...뭘 하지... 회사의 목적!"

 어느 쪽이든 간에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이었지만 직업세계에 대한 초2의 이상적 관점을 안 흐트러트리기 위해 노력했다.

 "우리나라 기업들의 원활한 생산 및 판매활동을 지원하고 이를 통해 국가경제 발전에 이바지하는 뭐 그런 건데... 너 생산이 뭔지 아니?"

 "으아아, 안 들린다아. 엄마, 말이 딱 이쪽 귀로 들어와서 저쪽 귀로 빠져나가!"


 내가 일하는 목적을 물어보지 않아서 다행이다 싶었다. 은행원을 포함해 일반적인 직장인들 중 몇이나 구체적이고 개인적으로 일하는 목적을 댈 수 있을까? 

 나는 개인적으로 직업에 딱히 꿈을 투과한 적이 없고, 많은 경우에 직업생활을 통한 자아실현은 자본주의 현대 사회의 환상이라고 생각한다. 적성과 능력과 기회가  딱 맞는 직업을 영위한다면 그 자체가 자아실현이고 꿈의 직업일텐데, 그런 직업에 투신하지만 경제적 안정은 달성하지 못한다면 우리 사회가, 그리고 그 안에서 자란 나 자신이 정말로 내 직업에 만족할 수 있을까? 그게 되는 사람들이 간혹 있지만 많은 사람에게 어려운 일이다. '경제적 어려움을 무릅쓰고 정말 원하는 일을 한 멋진 사람'이라는 신화는 그 사람이 그 일로 결국 경제적 성공을 거뒀을 때만 세상이 뿌려주는 환호라서, 꿈의 추구 자체에는 명예가 없다. 

 그래서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경제적 안정을 함께 염두에 두고, 적성은 문과/이과 정도로만 고려하여 직업을 선택하는 것이 일반적일 것이다. 그런 현실이 이미 내 집처럼 편안한 와중에 직업의 목적이니 꿈의 직업이니 하는 말을 들이밀면 좀 당황스럽다. 물론 내가 정말 간절히 뭔가를 해보고 싶은 적이 없어서 더욱 그렇다는 것은 잘 알고 있다.


 "그럼 엄마가 일하면서 싫은 순간은 언제야?"

 "매일 일하러 갈 때. 아니다. 이건 쓰지 마."

 "일하면서 기분이 좋을 때는 언제야?"

 "아...하... 음. 내가 계획한 대로 일이 잘 진행될 때."

 정말 힘빠지고 재미없는 인터뷰라고밖에 할 수 없었다.


 이 문답을 친구들에게 들려주자 다들 큰소리로 비웃음과 헛기침을 내뱉었다. 특히 '직업의 목적' 운운에 대해서는 다들 즉각적으로 답을 던졌다.

 "직업의 목적은 퇴사지! 뭔 소릴 하는 거야!"

 "너 먹여 살리는 거라고 하지 그랬어"

 만약에 이 질문을, 예컨대, (특출난 성공을 거두지 않은) 안무가/운동선수/가수/목수 등의 구체적인 직업을 가진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다른 충실한 대답이 나올 수 있을까 궁금했다. 내 주변엔 그런 직업군의 사람이 없어서 아쉽다. 


 현대사회에서 현실 어른 버젼으로 생각할 수 있는 직업의 목적은 명함으로 대변되는 사회적 지위와 소속감, 경제적 안정, 자본주의 사회에의 참여 정도가 아닐까 싶다. 그리고 그 정도 목적이기에 직업생활이 나의 사생활, 건강, 평화, 시간을 침해하는 것은 아주 불쾌하다. 


 최근에 조지 오웰이 1930년대에 쓴 르포타주 '위건부두로 가는 길'을 읽었는데, 당시 영국 탄광의 근로환경, 광산 노동자들의 주거환경, 경제적 어려움 등을 다룬 이 책에서 광부들에게 여유시간이 너무도 없다고 말하며 구체적으로 근로시간의 예를 든 것을 보고 상당히 놀라웠다.

 [... 그는 새벽 3시 45분에 일어나 오후 세 시가 넘어서야 돌아오곤 했다. ... 그는 밤 아홉 시면 집을 나서 아침 여덟시에 돌아온 뒤 ... 그의 여가 시간은 하루 네 시간 정도였고, 씻고 먹고 입는 시간을 빼면 그보다 훨씬 적었다]

 근로시간대가를 제하고 생각하면 아침 6시 20분에 일어나서 오후 5시 45분에 돌아오는 나랑 똑같지 않은가. 심지어 나는 칼퇴근을 목에 칼이 들어온 듯이 지키려고 힘쓰는 직장인이고, 우리 남편은 아침 8시에 나가서 밤 10시에 들어오는 일이 너무나 흔하고 더 늦게 들어오는 일도 드물지 않다. 우리 둘 다 한국에서 번듯하다는 직장을 다니고 있는데 90년전 영국 광부에 비해서도 평일 여가 시간에 여유가 없다는 점이 거의 분노를 일으켰다. 물론 광부의 작업환경이 훨씬 고되고, 그 때는 주6일 근무였으니 지금 한국 직장인의 근로환경이 그에 못미친다고 할수는 없다. 그러나 여가 시간이 비참할 정도로 부족하며, 그것을 우리 사회가 아직도 제대로 인지하지도 못하고 있다는 것은 맞다고 생각한다.  


 당장은 힘들겠지만, 언젠가... 예를 들면 1인당 GDP 4만달러 정도의 경제력이 갖춰졌을 때, 우리나라 노동계에 충분한 여가시간- 예컨대 하루 7시간의 근무, 야근없음, 연간 35일의 유급휴가 등-이 주어진다면 전반적인 직업 만족도가 상당히 올라가지 않을까 싶다. 아이들에게 꿈결처럼 직업들을 소개시켜주고 자아실현의 신화를 들려주는 것도 좋지만 근로자의 여가시간이 아직도 100년전 수준인데 부모에게 직업의 목적이나 기쁨을 물어봤자 진정성있는 답이 나오지 않는다. 


 나는 무념무상한 근로자로 살고 있지만 그래도 아이랑 이런 대화를 하다보면 너는 가급적 뚜렷하게 좋아하는 일이 있어서 그 일을 하며 살아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보다 중요하게는, 어떤 일을 하든 지금보다 평균적으로 훨씬 나은 근로환경이 갖춰진 사회에서 일을 하며 살 수 있기 바란다. 일은 꼭 어느 특정한 일을 좋아해서 하는 게 아니라 이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당연히 하는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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