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눈먼 자들을 이용하는가
앞에서 본 두 건축물의 사진 중에서 왼쪽의 것은 훈데르트바서(Friedensreich Hundertwasser)가 1991년 빈에 설계한 공동주택이다.
눈에 보이는 형상으로만 본다면 두 건축물은 매우 유사하다.
직선이 배제된 자유스러운 곡선, 타일 같은 소재를 이용한 다양한 색상, 형태와 패턴의 불규칙성.
그러나 거기에 담긴 두 건축가의 철학은 하늘과 땅만큼 다르다.
훈데르트바서는 20세기의 산업화를 거치는 과정에서 잃어버린 자연의 언어를 도시에 재현하고자 했다. 이 또한 하나의 시대정신이다.
핀란드의 알바 알토(Alva alto)를 그 뿌리로 하는 이런 건축을, 자연주의 건축이라고 하기도 하고 유기적 건축이라고 하기도 한다.(하지만 1990년대의 훈데르트바서는 포스트모더니즘의 한 갈래이다)
결국 이런 류의 사상을 커다란 그릇에 담는다면 그것은 '인본주의'이다. 인간에 대한 애정에서 나오는 생각이다.
훈데르트바서가 사용한 곡선과 색상 그리고 불규칙성은, 직선과 무채색, 규칙성, 즉 도시의 산업화 또는 기계화를 반성하기 위해서 선택된 도구였다.
가우디는 무엇에 반발하기 위해서 곡선과 모자이크 타일의 색상, 당초문양의 불규칙한 디테일을 사용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는 무엇인가를 계승하고 재현하기 위해서 그것을 사용했다. 그가 살던 시대의 앞 세대, 즉 로코코와 바로크, 더 나아가서는 고딕의 재현을 그는 꿈꾸었다.
각각 귀족, 왕, 신이 세상을 지배하던 시대의 양식이다.
우리는 이런 행위를 퇴행이라고 부른다.
똑같이 그어진 하나의 곡선을 보더라도, 그것이 언제 그어진 선인가에 따라서 그 의미가 이렇게 바뀐다.
훈데르트바서가 가우디와 같은 시기에 저 쿤스트하우스를 지었다면, 결코 자연주의 건축이나 유기적 건축이라고 불릴 수 없다.
그래서 앞 장에서 길게 당시 스페인의 상황에 대해 설명을 붙인 것이다.
가우디가 활동하던 시대는 건축사적으로는 아르누보의 시대였다.
물론 어느 사조가 모든 나라에서 동시에 시작하고 동시에 끝나는 것은 아니다. 당시 스페인은 유럽의 변방이었기 때문에 무엇이든 늦게 시작되고 늦게 끝난 것도 감안해야 하지만, 가우디의 시절에 유럽의 다른 나라에서는 이미 아르누보에 대한 반성을 끝내고 모더니즘의 싹을 틔우고 있었다.
가우디가 그것을 몰랐을까?
또는 알려고 하지 않았을까?
아니면 알면서도 외면했을까.
여러 정황은 '알려고 하지 않았다.'고 말하고 있다.
건축은 시대정신을 반영해야 한다.
왜냐하면 건축은 '피할 수 없는 예술'이기 때문이다.
평생 문학책 한 권 읽지 않아도, 연주회나 전람회를 가지 않아도 사람은 살 수 있지만, 도시나 건축을 접하지 않고서 살 수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건축이 시대정신을 배신하는 순간 그것은 죄악이 된다.
모더니즘은 단순한 양식의 문제가 아니라 새로운 시대를 여는 개벽의 시대정신이었다.
막스 베버의 말로 간단하게 요약한다.
"근대(모더니즘)는 주술에서 탈피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가우디의 건축을 아르누보 양식이라고 한다. 시대가 아르누보의 시대였으니 그렇게 보는 것이 크게 틀린 것은 아니다.(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여기서 아르누보에 대해 길게 쓸 필요는 없다.
아르누보는 산업혁명 이후, 먹고살만해진 소시민(쁘띠 부르조아 Petite Bourgeoisie)들이 과거 로코코 시대에 귀족들만 즐길 수 있었던 고급스러운 벽지, 장식, 가구, 그릇들을 자신들도 가져보고자 주물공장, 인쇄공장, 가구공장을 통해서 만들어낸 양식이다.*
'새로운 예술(New Art)'이란 뜻으로 아르누보라고 이름 짓고, 산업 전체의 흐름을 전부 거부할 수는 없어서 일부 혁신적인 구호를 내걸었다고 해서 아르누보가 혁신이 될 수는 없다. 그저 구시대의 미학에서 모더니즘의 미학으로 넘어가는 과도기의 절충주의적 양식일 뿐이다. 그것도 미래보다는 구시대에 대한 향수를 더 호소하면서.
많이 들어봤을 아르데코, 에콜 데 보자르 등이 여기에 속한다.
양식 또는 사조라는 것이 그 시대의 주인이 누구인가에 의해 결정된다*고 한다면, 아르누보는 식민지 시대와 노예제 시대의 주인이었던 쁘띠부르주아의 양식이다.
나는 모더니스트다.
굳이 말하자면, 동양적 사고를 가지고 후기모더니즘(late-modernism)을 한다.
우리 모두는 지금 이 순간에도 모더니즘의 건축물 안에서 살고 있다.
과거의 건축유산이 아니라면 우리가 짓고 있는 건축물은 크게 세 범주 속에 있다.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 그리고 드물게 지역적인 전통건축.
그중에서 모더니즘의 건축이 95%는 넘는다. (가령 해체주의 건축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와 전통건축인 은평한옥마을 정도가 모더니즘의 건물이 아니다.)
그 모더니즘이 19세기말에 태동하고 있었다.
글래스고우의 찰스 매킨토쉬, 20세기 들어와서 네덜란드의 드 스틸, 비엔나의 쎄제션, 독일의 공작연맹운동 그리고 훗날 바우하우스 등으로 이어지는 거대한 변화가 시작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의 철학은 이런 것이었다.
'이제 가난한 사람들도 쾌적한 환경 속에 살면서 예술도 즐길 수 있어야 한다'
그들 이전에 서민들이 살았던 거주환경과 나무로 만든 식기 따위를 보면, 유럽의 대부분 사람들은 거지였다고 생각해도 될 정도였다.
그들의 소망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건축이든 그릇이든 싸게 만들 수 있어야 했다.
싸게 만드는 것은 철근콘크리트와 프레스 기계 같은 수단이 생겨나서 가능해졌다.
문제는 사람들의 미의식이었다.
장식 하나 없는 콘크리트 벽 위에 하얀 페인트만 칠한 건물, 철판을 프레스로 누른 뒤 노란 에나멜 칠을 한 냄비도 아름다운 것일 수 있다는 인식이 생겨나야 했다.
칸딘스키와 몬드리안 같은 예술가들이 앞장서서, 작대기 몇 개 그은 그림을 가지고 예술이라고 우기기 시작했다. 뭐든지 여럿이서 계속 우기면 먹히는 법이다.
빈의 아돌프 로스도 한마디 소리치며 거들었다.
"장식은 죄악이다(Ornament ist Verbrechen)"
로스가 그렇게 말한데에는 타당한 이유가 있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원래 예술은 단순할수록 아름다운 것이었는데, 그리고 우리가 고전이라고 부르는 그리스와 로마의 예술이 그러했었는데, 사제들과 왕, 귀족들이 예술을 자기들만 독차지하려고 복잡하고 돈 많이 드는 것이 예술이라고 세뇌시킨 것이었다.
르네상스의 거장들 덕분에 제자리로 돌아가는 듯 하다가, 바로크, 로코코를 거치면서 도로 예술은 있는 자들만의 것이 되버렸다.
아돌프 로스의 고함소리 덕분에 전 유럽이 최면에서 깨어나기 시작했다. 몇몇 사람들만 빼고.
원래 최면상태가 오래가는 사람은 어느 시대에나 있는 법이다. 우리는 그런 사람들을 바보라고 부른다. 반대로 최면이 안 먹히는 사람들을 천재라고 부르는 것이다.*
당연하게도 당시에는 저런 말도 안 되는 디자인을 하는 놈들에게 일을 주는 귀족이나 부자, 가톨릭 교회는 없었다. 전 유럽에서 인본주의적인 철학으로 새로운 세상을 만들고자 하던 디자이너들이 쫄쫄 굶고 있었다.
아돌프 로스의 저 말을 기억하자. 그러고 나서 가우디의 건물을 다시 한번 보자.
사그라다 파밀리아가 중세시대도 아닌 20세기초에 설계된 건물이라는 것이 이해가 되는가.
* 세기말 쁘띠 부르주아의 '저렴하게 귀족 취향 누려보기'는 에르메스나 루이뷔통 같은 '공장에서 대량생산된 럭셔리'로 지금까지 이어져 온다. 귀족들은 주문생산품만 썼었다.
* '서양건축사 강의를 두 시간 만에 끝냈더니' 참조
* 사실 가우디는 최면에 걸린 단계를 넘어서 최면을 거는 역할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