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수업 제3강. 디자인, 어떻게 하는 것인가
5'내가 쓰는 글들은, 내가 읽은 책의 저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쓴 낙서이다.'
비록 그것이 낙서일지라도 열심히 흉내를 내야 합니다.
천재가 아닌 이상 다른 방법은 없습니다.
세상을 꽤 돌아다녀봤지만 아직 천재라고 할만한 건축가를 본 적이 없습니다.
물론 뛰어난 작품을 본 적은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뛰어난 건축물을 만나더라도 그 뒤에 모여있는 공동저자들이 나의 눈에는 보입니다.
그렇다고 결코 폄하할 일은 아닙니다.
결국 얼마나 독창적으로 베낄 것인가가 중요한 것입니다.
그것이 디자인의 전부입니다.
나는 르 코르뷔지에(Le Corbusier)를 거의 천재라고 생각합니다.
그의 작품 중 많은 것을 사촌동생인 피에르 잔느레가 만들었다는 것이 혹 사실이라고 해도, 천재는 르 코르뷔지에이고 피에르는 재주 많은 장인일 뿐입니다.(안토니오 가우디처럼)
천재는 새로운 생각을 만들어내는 사람이지 솜씨가 좋은 사람을 일컫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를 덧붙이자면, 천재는 용기와 확신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 코르뷔제조차도 본인은 그리스 로마건축에서 모든 영감을 얻은 것이라고 '동방여행'에서 밝힙니다.
인류 최초의 디자인 이론서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쓴 '시학(詩學)'입니다.
그는 '예술의 본질은 모방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물론 살짝 사전적인 의미만 차용하는 것이지만, '모방' '재현' '은유'가 창작의 본질인 것은 맞습니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습니다.
한 후배가 있었습니다.
모두가 집으로 돌아간 여름방학, 그는 학교 설계실에 남아 살다시피 했습니다.
집에도 안 가고 무엇을 하나 봤더니 매일 무엇인가 도면을 놓고 모형을 만들었습니다.
그것은 르 코르뷔지에의 도면이었습니다. 인터넷이 없던 시절 어디서 구했는지 모르겠지만, 그는 코르뷔지에의 도면 몇 개를 구해와서 모두 만들고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봐도 그보다 좋은 디자인 공부는 없습니다.
그의 디자인이 점점 좋아진 것은 말할 필요조차 없고, 그해 그는 대한민국 건축대전에서 대상을 수상합니다.
상 받는다고 잘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는 받을만했습니다.
많은 선생들이 학생들에게 베끼지 말라고 말합니다.
전문가 수준으로 훈련받고 입학하는 음대, 미대, 문예창작과, 연영과에서조차 서로 다른 여러 방식으로 '따라 해 보기'를 가르치는데, 걸음마도 안 배우고 들어온 건축과 학생들에게는 따라 하지 말라고 가르칩니다.
그렇다고 딱히 '이렇게 하는거야'라고 방법을 알려주는 것도 없습니다.
이런 교육은 몇 가지의 치명적인 부작용을 가져옵니다.
첫째는 당연히 '세상에 없는 것을 만드는' 고통과 직면하게 되고, 자신의 무능을 깨닫게 되어 건축에 흥미를 잃게 된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그래도 과제를 제출해야 하니 몰래 레퍼런스를 찾아서 슬쩍슬쩍 응용을 합니다. 그러고 때로는 남에게 때로는 자신에게 거짓말을 합니다. 베끼지 않은 것이라고. 왜냐면 베끼는 것은 죄악이라고 배우니까. 문제는 이 일그러진 가치관과 습성을 내면화한다는 것입니다. 한 명의 사기꾼을 키우는 꼴이 됩니다.
셋째는 베끼는 것이 나쁘다고 하니 공부할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공부는 안 하고 궤변만 늡니다. 궤변은 스스로의 발전을 방해합니다. 건축에서도 공부라는 것은 앞에 말한 것과 같이 '많이 읽고' '많이 생각하고' '많이 써보는' 것 이외에 없습니다. (단, 많이 읽어야 할 것은 사진이 아니라 실제 건물입니다)
그룹 부활의 작곡가 김태원이 "혹시 영향을 받을까 봐 다른 사람의 곡을 듣지 않는다"라고 말한 것을 사람들은 잘못 해석합니다. 세상에 없는 것을 만들어내려면 다른 작품을 참고하면 안 된다는 뜻으로.
그렇지 않습니다.
나는 김태원의 곡을 좋아하는데, 그가 만든 곡은 그가 청소년 시절에 남들이 학교 갈 때 학교도 빼먹고 들었던 숱한 락 레퍼토리들과, 밤을 새우며 '땄던' 기타 리프들의 산물입니다. 지금도 훌륭한 실용음악과 선생님들이 이구동성으로 이런 말을 합니다. "70년대 락 레퍼토리를 많이 들어라"
김태원이 앞의 말을 한 것은 혹시 자기도 모르게 '복제'를 할까 봐서, 그리고 이제는 어느 정도 형성된 자신만의 창작 메커니즘이 오염될까 봐서 한 얘기입니다.
이런 얘기는 자기만의 방법이 만들어진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얘기입니다. 그것을 지켜야 만들 수 있으니까요. 아직 그런 것이 없다면 밤을 새워서 지미 페이지의 기타 리프를 흉내 내는 방법 밖에 없습니다.
최근에 찍은 영화로 천만 관객이 보게 만든 영화감독 장항준은, 시나리오 작가가 되는 비법을 알려주겠다며 이렇게 말합니다.
'드라마를 보고나서 그대로 다시 써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