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아내에게 유럽여행을 가자고 말했을 땐 두 가지 이유가 있어서였다.
빨리 아기를 갖고 싶어 하던 아내를 위해 마지막으로 둘이 온전한 시간을 보내고 싶어서였고, 제대로 된 프러포즈를 해주지 못해서(계획 단계에서 아내의 깨방정으로 인해 무산되었다..) 만회하고픈 마음에 덜컥 제안하게 되었다.
극단적인 P성향을 갖고 있는 나지만, 여행을 계획하고 수정하는 과정이 무척 설렜었다.
혼자서는 용기가 나질 않아 시작하기 어려웠을듯한 여행을 갈 수 있음에 설렜고, 3주 정도의 시간을 무료한 한국에서 벗어나 처음 보는 외국에서 보낼 수 있다는 사실에 기쁘고 행복했다. 어떤 장면과 마주칠지 수시로 고민하고 또 생각했다.
그렇게 아내와 난 테마를 결정했다. 유럽 여행을 자주 가긴 어려운 까닭에 알찬 여행이 가능할 것 같은 3군데의 나라를 정하고 집중하기로 했다.
2주 정도는 쉽게 정하지 못하고 꼬박 고민을 했던 것 같다. 매일 유튜브를 보며 유럽 이곳저곳을 여행하는 영상을 뒤지곤 했다. 이 나라도 가고 싶고, 저 나라도 가고 싶고. 결정과 번복의 복잡한 과정을 거친 끝에 드디어 3군데의 나라를 정했다.
물가는 비싸지만 자연경관이 멋진 스위스,
낭만과 달콤함이 넘쳐흐르는 프랑스의 파리,
고대시적 유적지가 잘 보존되어 있고 맛집이 많다는 이탈리아.
실은 여행이라는 건 설렘을 시간과 돈으로 사는 일이다. 가보지 못한 나라에 대한 희망과, 새로운 언어권에 대한 충돌, 다양한 인종의 사람들과의 만남까지 나에겐 사실 무척이나 가슴 벅찬 일이다. 길을 잃거나 서툰 언어로 대화를 하는 것, 새로운 풍경을 만나는 일까지 걱정보단 기대와 희망, 그리고 설렘이 가득한 순간들이다.
나이가 지긋한 어른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여행에 대한 아쉬움을 성토하는 분들이 많다.
조금이라도 젊었을 때 여행을 부지런히 다녀봐야 된다고, 빚을 내서라도 많은 곳을 여행했어야 한다고.
환경에 따라 성향에 따라 체감되는 기대치는 다르겠지만 적어도 나에겐 여행은 새롭고 희망찬 일이다. 그래서 경험자들의 말은 나에겐 참이자 진실이다.
업무를 끝내고 퇴근을 바라보며 우연히 사진첩에 들어갔더니 3주가 지나서야 눈에 들어오는 여행 사진들이 가득하다. 그리고 또 사진을 보니, 그때가 그립다. 무척이나 그립다. 그래서 P성향의 나답게 이번에 다녀온 여행을 추억하며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적어도 그런 것 같다.
나에게 여행이란, 설렘을 기록하는 일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