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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바라기 Jul 13. 2024

야나할머니의 닮은 꼴 손녀

기억할 수 있게 닮은 모든 것들에 감사를

6월 초 늦은 밤.

막 잠이 들던 차였는데 충전 중이던 휴대폰 화면이 환하게 피어올랐다. 귀찮아서 그냥 무시하고 자려고 하다가 괜스레 뭔가 이끄는 거 같아 화면을 열었더니 친정 가족톡에 알림이 떠 있었다.


이 카톡방을 나는 "긴급대책반"이라 이름 지었고 남편은 "성골방"이라고 부른다. 긴급대책반 말 그대로 이 방은 우리 사 남매가 부모님의 병원 진료나 집에 애경사가 생겼을 때 허심탄회하게 의견을 주고받는 방인데 남편이 보기엔 우리 사 남매만 들여다보는 성골방이라며 자꾸만 부러운 듯 놀리는 듯 말하는 그 방에 온 알림은 다름 아닌 당백숙의 소천 부고였다.


우리는 긴급하게 부모님을 모시고 조문 갈 일정을 정했고, 나는 쉽게 오지 않는 잠을 청하다 그렇게 날이 밝았다.




수원 고속버스터미널에서 부모님을 만나 남동생의 차로 환승해 일산 장례식장으로 출발했다. 오늘 조문을 가는 당백숙은 현재 우리 집안의 가장 큰 어른으로 나는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서울아저씨"라 불러왔다. 이름부터 부티나는 "서울아저씨" 서울 아저씨는 말 그대로 서울에 사셨고 나의 꼬꼬마 시절에 이미 승용차가 있었고, 얼굴도 손도 얼마나 하얀지 아저씨 덕분에 서울에 대한 환상이 있었던 것도 같다.


장례식장에 들어서니 낯익은 당백숙의 사진이 나를 맞아주고, 초췌한 당백숙모의 모습과 당숙 내외분이 어떻게 왔냐며 깜짝 놀라 맞아 주셨다.

나는 당백숙이 우리 집안 최연장자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투병 중이셨다는 것을 알지 못했고, 현재 동생인 당숙도 투병 중이시라는 것이었다. 게다가 갑작스러운 소천소식도 놀랐지만 얼마 전 숙부도 치매에 이어 항암 치료를 시작하셨는데, 집안에 이미 암으로 돌아가신 어른들이 여럿이신데 이렇게 환자가 있다는 사실에 소름이 돋았다.




"조카는 큰어머니 얼굴이 보이네"


당숙모가 식사 중인 내 얼굴을 들여다보며 말씀하셔서 나는 아무 말 없이 눈으로만 웃곤 밥을 먹었다.


"큰어머니 정말 많이 닮았어. 점점 더 닮아가"


사실 속으로 약간 갈등했다. 부모님이 앞에 앉아 계신 이 자리에서 내가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를...




나는 자랄 때 할머니를 닮았다는 이유로 엄마한테 미움을 받았었다.

사실 그땐 부모님 두 분이 나는 제작(?) 하셨고 낳은 것도 당신인데 생긴 걸로 자매들과 차별을 두니 뿔다구가 났었다.


군에서 수재 소리 듣던, 방 전체를 채우고 있던 액자에 담긴 상장들의 주인이었던 엄마를 닮은 언니, 터를 잘 팔아 남동생을 봤다는 여동생, 아들이었던 막내. 그리고 동네의 모든 사건사고에 빠지지 않았던 할머니 모습을 한 나. 엄마는 나를 향한 모든 지적에 아빠를 닮았거나 할머니를 닮았다며 몰아세웠다.




"엄마~ 어디 있어?"


멀리서 작은 아이 목소리가 들렸다.


"앞 베란다"


최근에 산 화초들을 보고 있던 중이었다.


"엄마 이것 좀 봐봐 대박이야"


아이가 내민 것은 본인의 초등학교 졸업 앨범이었다.


"갑자기 앨범은 왜?"


"엄마 내가 보은 할머니랑 똑같이 생겼어"


"니가 아빠 닮았으니 할머니도 닮았겠지"


나는 아무렇지 않은 듯 대답했지만 솔직히 엄청 놀랐다. 정말 어머니 딸이라고 해도 믿을 만큼 닮아 있는 모습. 그런데 나는 이 사실을 그간 인지하지 못했을까?




작은 아인 클 때 아빠를 닮았다고 하면 엄청 듣기 싫어했다.

아빠 닮은 딸이 잘 산다고 하는 말은 안 예쁜 딸들을 위로하기 위해 만들어낸 말이라며, 나는 누구를 닮은 사람이 아닌 그냥 '나'라고 말했고, 그 맘을 아는 나이기에 농담으로라도 놀리지 않았다. 그런데 희한한 것은 시댁에 서운하거나 남편이 미워질 때 두 아이가 데칼코마니처럼 보였고 그제야 친정엄마 맘을 조금은 짐작할 수 있었다.




좋은 사람을 보면 닮고 싶어 진다.

친정 아부지의 긍정적인 마음과  친정엄마의 팔방미인 손재주, 남편의 성실함, 큰 아이의 섬세함과 음악적 재능, 작은 아이의 센스 및 추진력 등 나에겐 눈 씻고 찾으래야 찾을 수 없는 재능들을 닮고 싶다. 그런데 나에겐 약초박사였던 할머니를 닮았다는 엄마 말이 저주의 말이 되어 나를 묶어 두었고, 여태껏 자유롭지 못한 나를 보았다.


장례식에 다녀오면서, 다녀와서 든 생각.

죽음으로 잊히는 모든 것들을 기억할 수 있는 작은 것이라도 담고 있는 것은  축복이 아닐까? 물론 할머니와 달리 나는 꽤 튼실한 골격과 골밀도를 갖고 있는 것이 좀 아쉽긴 하지만 이 체격은 엄마가 물려주셨으니 이것 또한 축복으로 감사의 제목으로 여기기로 했다.


나를 쓸데없이 묶고 있던 말의 저주를 나는 댕가당  끊어 버리기로 했다.


버렸다.


나는 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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