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에서야 맛있는 맛
송년회 겸 신년회 겸 부부동반 모임이 생겨 약속 장소로 갔다. 근 일 년 만에 보는 반가운 얼굴들. 그 흘러간 시간 속에 부부들의 머리엔 희끗희끗한 서리가 내렸고, 크고 작은 증상들로 병원신세를 졌고, 한 집은 작은 아이가 수능을 봤고, 한 집은 곧 청첩장 돌리는 거 아니냐며 훌쩍 자란 아들의 안부를 묻고 있었다.
이야기 꽃을 피우는 사이 음식점 식탁 위로 기본 반찬들이 차려졌고, 그 차림상 속에 아주 오랜만에 보는 반가운 음식이 있었다.
"어머 옥수수 범벅이네"
곧 며느리 볼 것 같은 언니가 들뜬 목소리로 숟가락을 들어 맛을 보곤
"이렇게 맛있는 줄 알았으면 예전에 많이 먹어둘걸.
왜 그랬나 몰라. 자기들도 얼른 먹어봐"
"언니 나는 지겹도록 먹고 컸어요. 요즘도 어쩌다 친정 가면 먹어요"
"옥수수 범벅을 지금도 친정 가면 드신다고요? 친정이 어디신대요?"
다른 언니가 내게 질문 하셨다.
"그럼 자기 이런 것도 만들 줄 알아?"
연이은 질문에 나는 빙그레 웃었다.
"할머이 모할라고?"
"보믄 몰르나 강네이 밤박 할라카지"
"껍디 삐낀 강네이 보고 알았지. 근데 혹시 뭐 딴 거 해 묵는 줄 알고 물어봤지"
"와 니는 이거 싫나?"
"응. 나는 강네이만 들어 있음 좋은데 콩이랑 팥이 드가믄 맛이 엄써"
"이른. 가들이 드가야 맛이 나지"
"할머이 그럼 이번엔 소금 말고 사까루를 마이 느줘 달달하게"
"아서 그라믄 씨구와서 매해"
"그라믄 내가 맛을 볼게"
"니가 간을 본다고?"
그렇게 시작된 할머니의 옥수수 범벅은 마당에 걸어둔 커다란 솥 속에서 부글부글 끓어가고 있었다. 찌그러진 뚜껑 틈으로 김이 삐져나올 때마다 익숙한 옥수수 익는 냄새와 약간 비릿한 팥 익어가는 냄새도 났다.
"할머이 언제 먹어?"
"우물까서 싱늉 내노라 칸다 하두만 딱 그 짝일세. 느 승처럼 불도 넣고 심부름도 하믄서 찐득허이 지달리야지 짐도 안 났는데 벌써 묵을라고? 불 지키는 걸 잘 배우야지, 낭중에 시집가믄 사돈집서 숭해. 친정서 살림 드럽게 배워가꼬 왔다고"
"그라믄 시집을 안 가믄 되지. 마로 시집을 가가꼬
배불르게 욕을 무"
"이잉 이런 것도 다 배워놔야 낭중에 시집서 쓰먹지. 시집을 안 가긴카시 안 간다 하믄 더 빨리 간다카드라"
"그럼 낭중에 보믄 알지. 내가 시집을 가나 안 가나"
"내 니 시집가는 거 까지 보고 죽을라나?"
"죽긴 왜 죽어. 오래오래 100살까지 살으야지"
"오이야 내 니 말마따나 백 수 해 보마"
금세 사라진 옥수수 범벅 그릇을 보신 차림사님이 이번엔 더 많이 담아다 주시자 옆 테이블에 앉아 식사 중이던 아저씨들도 그게 그렇게 맛있냐며 드시기 시작하셨다. 이상도 하지 지금은 이렇게 맛있는데 그땐 왜 그렇게도 맛이 없었을까?
옥수수 범벅을 입에 넣으니 톡 하고 느껴지는 옥수수 한 알, 팥 한 알에 또다시 추억들이 톡톡 튀어나온다. 만화 '톰과 제리'처럼 때론 친구로 때론 연인으로 때론 원수처럼 투닥대고 하하 호호하던 할머니와 나. 가끔 친정엄마와 작은 아이가 대화하는 것을 보면 어린 시절의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아 흐뭇하면서도 큭큭 웃음이 난다.
이 밤 갑자기 옥수수 범벅이 먹고 싶어진 주책스런 나. 다행인지 불행인지 거피 찰옥수수가 없어 시도는 하지 못하지만 방법은 있다. 그 비싼 갈빗집에 또 가면 된다. 그러려면
"여보오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