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나할머니와 사건파일 4

요리오뜨 사건

by 별바라기

몇 시가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아직 밖은 깜깜하고 닭도 울지 않는 것을 보니 새벽까진 되지 않은 것 같다. 동생의 '부드득부드득' 이가는 소리가 이따금씩 들리고 벽에 붙어 있는 시곗바늘 돌아가는 소리가 유난히도 찰칵 거리는 밤. 자다가 배가 너무 아파 잠이 깼는데 아무리 다시 잠을 청하려고 해도 잠은 오지 않고 이리 누워도 저리 누워도 불편해서 등을 잔뜩 구부리고 있었다. 그러다가 다급히 온 신호. 나는 아픈 배를 움켜쥔 채 바깥 마당에 있는 화장실까지 갈 수 없다는 빠르고 지혜로운 판단에 마당 구석을 지키고 있는 향나무 아래서 속을 비운 결과 통증은 한결 나아졌다.

'휴우 죽을 뻔했다. 근데 왜 물똥이지?'

장을 비웠는데도 아픈 배는 잠을 점점 쫓고 밝아지는 방문만 우드커니 바라보다 방문을 채우고 있는 사각형 문틀 개수를 하나 둘 세다가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


"고만 일어나 아침 먹어야지"


귀에 와서 꽂힌 엄마 목소리에 퍼뜩 잠이 깼다. 벌떡 일어는 났는데 아직도 배가 쓰리리 하고 아팠다. 기운없는 발을 떼어 밥상에 가서 앉으려는데 아빠가


"근데 할머이 왜 안 나오시나? 할머이 불러봐"


"할머이 아침 드세요"


나는 기운 없는 목소리를 쥐어짜며 할머니 방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여느 날 같으면 할머니는

"오냐"

하는 대답과 함께 등장하시는데 오늘은 대답이 없으셨다.


"할머이 바압"


내가 더 큰소리로 부르니 할머니 방문이 한 뼘 정도 열리고 기운 없는 할머니 목소리가 들렸다.


"난 안 문다 니들이나 무"


할머니 목소리를 들은 아빠는


"늦잠을 주무시나 했더니 아닌가?"


벌떡 일어나셨고 나도 쪼르르 따라갔다.


"아이쿠야 이게 뭔 냄새래요?"


할머니 방문 문지방을 넘어 방에 들어서자 후끈한 공기와 함께 똥쿤내가 나를 '훅' 하고 강타했다.


"어머이 어디가 마이 안 좋아요?"


한겨울도 아닌 이 삼복더위에 할머니 방에 요강이 놓여 있는 걸 보니 뭔가 큰일이 있는 거다. 아빠는 할머니 이마를 짚어보고 방 문을 모두 열고 환기를 시키셨다.


"그 문까지 열어노믄 포리 드온다"


"지금 파리가 문제래요?"


"근데 할머이 바지에 똥 쌌어?"


내가 코를 잡고서 코맹맹이 소리를 내며 요강 옆에 수북이 쌓여 있는 할머니 옷들을 가리켰다.


"야야 내가 밤 새 똥 질 하느라 날이 샜는데 니들은 다 괜찮나?"


"그럼 얘길 해야지, 이렇게 방에 가마이 있음 우째 안대요. 근데 뭘 드셨길래 그래요? 우린 다 괜찮은데"


"나도 배 쫌 아픈데"


"또 엄살"


"아니야 아빠, 나도 밤에 물똥 쌌어"


"둘이만 뭘 맛있는 걸 먹었길래 그래요?"


"아빠 나 맛있는 거 안 먹었는데"


"배탈이 단디 난 거 같은데 뭐라도 무야 약을 묵지, 우선 죽이라도 드시봐요"



엄마가 들기름에 볶아 끓인 맛있는 죽이 오봉상 위에 감낭 물김치랑 얹어져 할머니 방으로 배달되었고 아빠는 먹고 먹으라며 아주 쪼꼬만 알약을 주셨다.


"어머이 죽이라도 드갔다고 혈색은 돌아오는 거 같아요. 이 약 먹고도 배가 계속 아픔 보건소에 가서 약을 지와야하니 오늘은 찬물 드시지 말고 미지근한 물을 무요. 그리고 니는 얼음 먹지 말고 도랑에 드가지 말고"


진짜 약을 먹어서 인지 죽을 먹은 덕분인지 배 아픈 것은 줄어들었는데 하루 종일 속에서 올라오는 고약한 약 냄새에 나는 심기가 불편했다. 이 쪼꼬만 알약은 뭔 향이 이렇게 센 것인지. 다행히도 할머니는 약을 드시고 속이 좀 편해지셨는지 아니면 어젯밤 잠을 주무시지 못하셔서 그런지 긴 낮잠을 주무셨다.


매미채를 들고 동네를 한바퀴 돌고오니 할머니가 장독대에 앉아 햇빛을 쬐고 계셨다.


"어 할머이 일어났네? 인젠 배 안 아파? 똥 안 싸?"


할머니는 나의 말이 웃기신 지 피식 웃으시며


"그래 이 마한 것, 똥 안 싼다. 니는 안 아프나?"


"나는 이제 괜찮아진 거 같애. 근데 할머이 다 똑같이 밥을 먹었는데 왜 우리 둘만 배가 아플까?"


"그러게 말이여. 귀신이 곡할 노릇이지. 내가 이 나이 먹도록 이렇게 똥질하긴 난생 첨일세"


할머니도 고개를 갸웃거리며 의아해 하셨다.


"야나 이거 만지 보래이"


할머니가 건네준 요구르트가 미지근하게 느껴졌다.


"할머이 이거 왜 뜨시?"


"냉장고가 고장이 났는가베"


"아닌데 어제 먹었을 때는 뜨시진 않았는데"


"어제 내가 니한테 줬을 땐 샘물에 담궜다 줬자네"


며칠 전 할머니가 장에서 사 오셔서 나에게 건네셨던 '요리오뜨' 그것이 할머니와 나의 장염의 원인이었다. 할머니는 요구르트 발음이 힘드신지 항상 '요리오뜨'라고 부르셨는데 그 요리오뜨를 사시러 몇십 년 동안 지정 슈퍼인 '운진 슈퍼'에만 다니셨다. 왕복 2시간이란 시간을 들여 장에 나오시는 걸 아시는 맘 좋은 슈퍼 사장님은 오랜 단골손님인 할머니에게 항상 유통기한이 넉넉한 요구르트 줄을 챙겨 주셨고 할머니는 그 요구르트를 다래끼에 담아 들일을 하는 식구들의 목을 축이게도 하시고, 근처 밭에서 일하고 있는 동네분들까지도 챙겨 주시는 정 넘치는 분이셨다.


"희한도 하지. 요리오뜨가 잘못 만들어질 리도 음꼬 야야 뭐가 잘못됐을꼬?"


할머니 말에 나는 냉장고 문을 열어보았다. 쌈장 통과 고추장 통, 할머니가 즐겨 드시는 과일청들과 정체 모를 약병들만 들어 있는 냉장실. 특별히 변한 것도 없는 거 같고 냄새도 없는데 뭐가 문제일까? 냉장고 문을 닫았다 열었다를 반복하다 그제야 이유를 알았다.


"할머이 냉장고 꺼져있네"


"불이 드오는데 어찌 꺼짔나?"


"할머이 냉장고 만졌지? 여기 이게 돌아가 있자네"


"그게 돌아가 있다고? 그젠가 도마도를 느놨는데 깽깽 얼었길래 약하게 한다고 돌려놨지"


할머니는 냉장 효과가 뛰어나 냉동고가 되어 버린 냉장고 수동 조절장치를 꺼짐으로 돌려놓으셨고 냉장고는 그렇게 며칠을 꺼져 있었다. 할머니가 한글을 읽으실 줄 알았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었지만 슬프게도 일어났고 그나마 천만다행인 것은 그 요리오뜨를 먹은 것은 할머니와 나 둘뿐, 그리고 남은 가족들도 이웃들도 먹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그 뒤로 식구들은 할머니가 주시는 음료들을 우선 한 번씩 의심부터 하고 유통기한이 넉넉해도 온도까지 확인 하고 먹는 습관이 생겼고 그게 익숙해져서 별 탈 없이 시간이 흘렀는데, 내가 고등학교 2학년이 되었을 때 할머니가 주신 음료를 드시고 부모님은 어마 무시한 장염에 걸리셨는데 증세가 하도 심해서 보건소도 가실 수도 없는 상황이 발생했다. 나는 태어나서 아버지가 직립 보행이 아닌 네발로 기어서 화장실에 가시는 모습을 보는 두려움을 마주했고, 아버지는 창피해서 안된다고 부득부득 말리셨지만 엄마의 지원을 받은 나는 보건소 소장님께 연락을 드렸고 소장님은 퇴근 후 우리 집에 방문진료를 해 주셨다. 그 덕분에 다음 날 부모님은 건강한 직립 보행자로 돌아오실 수 있었다.



내가 첫 아이를 낳고 친정에서 산후조리를 하고 있던 때. 할머니는 장에 다녀오시면서 내게 6개가 한 묶음으로 묶여 있는 오렌지 주스를 사다 주셨다. 수유 중인 나는 음식 조절을 하고 있었기에 할머니한테는 먹겠다고 말씀드리고 냉장고에 넣어 두었고 집을 떠날 때 까지도 그 음료수는 마시지 않았다.


장에 가신 할머니는 운진 슈퍼 사장님을 찾아가 해산한 손녀딸에게 주실 거라며, 뭐가 좋겠냐고 물으신 다음 그 가녀린 어깨에 음료수가 든 배낭을 메고 기쁜 맘으로 버스에 올라 돌아오셨을텐데 난 참 주변머리가 일도 없는 무심한 손녀딸이었다. 빨대를 꽂아 시원하게 쪽쪽 빨아 마시는 모습을 보셨다면 얼마나 흐뭇해하셨을지, 왜 그때는 그런 생각을 못했었을까...


나는 지금도 마트에 가면 진열되어 있는 요구르트랑 음료수 코너를 살피는 버릇이 있는데 가지런히 진열된 눈에 익숙한 음료들을 보고 있으면 기분이 차분해지고 채워지는 마음이 든다. 그리고 내가 사다 드린 요리오뜨를 흐뭇해 하시며 이웃들과 가족들에게 인심 좋게 건네시던 할머니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만 같다.


"야나 요리오뜨 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