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 들여다볼게요. 니들은 조만간 토끼가 새끼를 낳을 것 같으니 토끼장 근처에 가지 마. 풀도 주지 말고"
소가 쓰던 외양간을 개조하여 만든 넓디넓은 토끼 호텔에 아빠는 널따란 합판으로 공간을 나눈 뒤 엄마 토끼를 어린 토끼들과 수컷 토끼들에게서 떼어 놓으셨다. 홀로 지내게 된 엄마 토끼는 진짜 털갈이를 하는 것 같이 털이 엉성했는데 엄마 토끼가 움직일 때마다 깡충깡충이 아닌 어슬렁어슬렁 같은 느낌이 들어 언제쯤 새끼를 몇 마리나 낳을까 잔뜩 기대가 되었다.
토끼는 참 귀여운 동물로 알려져 있지만 반면 무서운 동물이었다.
어린 시절 어른들은 토끼장에 풀을 주다가 잘못해서 손가락이라도 물면 '똑'하고 끊어진다시며, 하루에 열두 번도 넘게 토끼장에 가자고 가리키던 어린 동생들의 손가락을 지키라고 언니와 나에게 신신당부하셨다. 동생을 보다 잠깐이라도 한눈을 팔면 어린 동생은 토끼가 먹는 것 먹지 못하는 것 구분하지 못하고 죄다 토끼장에다 넣어 주었고, 가끔은 수돗가에 있는 할머니 빗이나 치약, 칫솔도 토끼장에 던져 넣어 나는 작대기로 토끼들을 밀면서 그 물건들을 다시 꺼내와야 했다.
그 무렵 특별히 어른들이 겁을 주셨던 큰 사건이 있었는데 마당 한구석 전체를 벽돌을 쌓고 시멘트를 발라 동네 최초 토끼 아파트를 지으셔서 농장을 하시던 옆집 할아버지가 젖 뗀 새끼 토끼를 사러 온 이웃 맞이에 어미 토끼한테 손가락을 물리신 일이었다.
항상 아내와 2인 1조로 움직이셨는데 그날 품앗이를 하러 가신 할머니의 부재 속에 난 사고에 지혈이 쉽게 되지 않자 할아버지는 손가락을 움켜쥐고 우리 집으로 오셨고, 이미 팔뚝을 타고 줄줄줄 흐른 피가 할아버지의 윗도리를 타고 허리춤까지 적신 뒤에 방문하신 바람에 우리 가족들은 할아버지가 죽는 줄 알고 기함을 했다. 아버지는 오토바이에 할아버지를 태워 보건소에 다녀오셨고, 눈으로 배운 진정한 교육의 힘! 우리는 토끼 앞니의 힘은 강력하다는 것을 뼈저리게 배웠고, 그 엄마 토끼의 앞니가 월등히 강력했던 또 다른 증거는 새끼를 뺏긴 충격 때문이었는지 토끼 아파트 출입문의 각목을 다 갉아 놓아서 할아버지는 붕대 감은 손으로 보수 공사를 하셔야 했다.
"할머이 토끼 새끼 낳을까?"
"낑낑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거 봐 선 났는가비다"
"애기 토끼 느므 귀엽겠다."
"눈도 못 뜨고 시뻘건 핏덩일 텐데 이삐긴 뭐가 이삐".
"몇 마리나 낳을까?"
"젖 다 먹고 기 나오믄 시 보믄 되지"
'쪼꼬만 게 귀여울 텐데...'
나는 토끼 새끼가 몇 마리나 태어났는지,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궁금해서 참을 수가 없었다.
다음날 오후. 학교에서 돌아오니 먼저 하교한 동생이
"나는 애기 재웠으니깐 이제부터 언니다."
"니 어디 가는데?"
"나 안말 순아네 집에 동갑 살이(우리 동네선 소꿉장난을 이렇게 불렀다)하러 가"
마루엔 막냇동생이 만세를 하고 자고 있었다. 어쩔 수 없이 나는 동생을 지켜야 하는 신세가 되었고 여느 날은 내가 재채기만 해도 자다가도 눈을 번쩍 뜨던 동생이었는데 손가락을 한 개 한 개 만져보고 눈 위로 손도 흔들어보고 날아드는 파리를 쫓으려고 부채질을 해보아도 동생은 꿈쩍도 않고 계속 잠만 잤다.
"그리 자라고 자장자장 할 땐 자지도 않더니 이래 놀자해도 잠만 자네"
나는 심심해 몸을 비비 꼬며 동생 옆에 벌러덩 누워있다가 갑자기 벌떡 일어났다. '아 토끼 새끼'
떨리는 마음을 진정시키며 토끼장에 살곰살곰 다가갔는데도 토끼들이 인기척을 느꼈는지 안에서 우루루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아주 희미하게 낑낑 거리는 소리도 들려왔다. 나는 용기를 내어 아빠가 산실 쪽으로 가려둔 가마니를 슬쩍 집어 토끼장 안을 쳐다보았는데 그 순간 빨간 눈을 한 어미 토끼하고 눈이 딱 마주쳐 놀라는 바람에 엉덩방아를 찧으며 뒤로 넘어졌다.
"으허어어어"
내가 낸 소리에 토끼장에 작은 토끼들과 수컷 토끼들은 우당탕탕 난리가 났고 나도 넘어지며 놀란 바람에 요동치는 심장을 붙잡고 얼른 일어나 토끼장을 뛰쳐나왔다. 그리고 마루로 돌아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동생 옆에 누워 버렸다.
다음날 아침. 아침을 먹는데 할머니가
"야야 토깨이 시끼 낑낑거리는 소리가 안 들린다."
"젖 먹고 자느라 그라겠죠"
대수롭지 않게 아빠가 대답하셨다.
"아인데 이래 잠잠할 리가 읍는데 누가 혹시 토끼장 들이다 봤나?"
"할머이 토끼장을 들여다보믄 왜?"
"어미 토깨이가 놀라믄 지 새끼들을 다 잠 먹자네"
나는 뜨끔하고 놀라 어제 토끼장에 갔었다는 말을 할까 말까 고민하다 끝내 입을 다물었다.
식사 후 마른 약초를 묶고 있는 할머니한테 슬쩍 다가갔다.
"할머이 진짜로 어미 토끼가 새끼를 다 잡아먹었을까?"
"그랬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고, 근데 니가 와 걱정을 하노?"
"아니 내가 어제 애기 토끼가 너무 보고 싶어서 딱 한번 들여다보긴 했지"
"그렇지? 이 마한 것, 그라니 애미 토끼가 놀라 다 잠 먹었구먼"
"아니 지 새끼를 왜 잡아먹냐고?"
"급이 느므 많으니 그라지"
"할머이 진짜 다 잡아 먹었을까? 그라믄 불쌍해서 우짜지?"
"뭘 우째. 다 지 복이지. 애미 토끼는 한 달 뒤믄 또 새끼를 날끼여. 그런데 지발 어른들이 하지 말라는 짓은 좀 하지 좀 말고. 우째 이래 말을 귓등으로도 안 듣나?"
분명 약초를 만지고 계셨던 할머니의 손이었는데 순식간에 내 코를 세게 잡아당기시는 바람에 나는 깜짝 놀란 데다 할머니의 싫은 소리에 서운한 마음이 들어 잠시 머뭇거리다 울음이 터졌다.
왕고들빼기
토끼장 한가운데 세워두었던 3.8선 합판은 다시 꺼내졌고, 몇 마리의 새끼를 낳았는지 모르지만 새끼 토끼를 먹어버린 어미 토끼를 보며 나는 그 모든 일이 나 때문에 일어났다는 죄책감에 그 빨간 눈이 마주칠 때마다 움찔움찔해야 했다. 그래서 그 미안한 맘을 보상하고자 어미 토끼가 좋아하는 왕고들빼기 나물을 열심히 꺾어다 주었는데 할머니 예언대로 얼마 후 어미 토끼들은 줄줄줄 새끼를 낳았다.
나중엔 누가 누구의 새끼인지 구분도 되지 않게 새끼 토끼들이 10마리도 넘게 늘어나 있었고 할머니와 나는 매일 아침 토끼의 머릿수를 세는 게 일이었는데 자꾸만 움직이는 토끼들 때문에 다시 세고 또 다시 세는 웃지 못할 시간들을 보냈다. 그리고 그 늘어난 토끼 가족들 때문에 할머니는 토끼풀을 뜯으시느라 점점 더 바빠지셨고 나도 종종 낫을 들고 할머니를 따라다녔다. 그리고 내가 중학생, 고등학생이 되고, 성인이 되었을 때까지 이웃집에서 수컷 토끼들을 얻어다 넣고, 이웃들이 키우라고 가져다주시기도 한 덕분에 토끼 가족은 대대손손 살고 있었다.
아버지가 젊은 시절 먼 산에서 베다 세운 굵은 기둥과 서까래, 수숫대를 붙인 뒤 진흙에 지푸라기를 섞어 발랐던 외양간 벽은 나이가 들면서 점점 영감님이 되었고 윙윙 바람이 구멍으로 숭숭 드나들며 구멍을 키웠다. 어느 날 그 벽의 연약함을 알았던 똑똑이 토끼들은 야심 찬 계획으로 굴을 파기 시작했고, 어느 날 아침 토끼풀을 주러 가신 할머니는 기함을 하며 소리치셨다.
"야야 토깨이가 다 없어져뿌맀다"
'쇼생크의 탈출'을 찍듯이 벽을 파서 뒷산으로 도망을 간 토끼들이었으나 매몰차게 집을 떠나지 못하고 집 주변에서 서성거리고 있었는데 할머니는 그런 토끼들을 잡으려고 족대를 들고 다니셨지만 토끼는 절대 만만하게 잡힐 녀석들은 아니었고 나는 계속 헛탕을 치는 할머니 모습이 우스워 깔깔거리며 웃었다.
그 후로 우리 집 뒷산엔 토끼가 엄청 뛰어 논다는, 도둑고양이들과 들개들이 뒷동산에 모여들어 산다는 무서운 얘기도 들려왔지만 그래도 가끔 부추를 뜯으러, 호박을 따러 뒤꼍에 갔다가 풀숲에서 부스럭거리고 있는 토끼들을 보고 반가움에 인사를 건네면 알아듣는지 모르는지 기다란 귀를 세우고 동그란 눈동자로 나를 바라보다 산으로 뛰어 올라갔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부모님이 들일을 하시다가 가끔 토끼를 보기도 하시는데 산으로 거주지를 옮겨 대대손손 살아오는 우리 집토끼가 아닐까? 추측하고 계셨다.
자전거가 나갑니다 따르르릉
얼마 전 출근길.
자전거를 타시고 칡잎을 싣고 가시는 할아버지를 만나 놀라움과 반가운 마음에 할아버지 동의는 구하지 못하고 점점 멀어지는 할아버지 뒷모습을 확대해서 사진을 찍었다.
이 동네에서 20년 가까이 살면서 처음 본 광경이기도 하고 연로하신 것 같은데 기운 있게 자전거를 타고 가시는 모습이 괜스레 반갑고 맘이 좋았다.
그리고 생각했다. 저 칡잎을 어디서 따셔서 누굴 주시려고 저리 기분 좋게 싣고 가시는 걸까?
그리고 나의 출퇴근 경로이며 동네 주민들의 산책로이기도 한 이 길엔 엄마 토끼가 좋아했던 왕고들빼기 나물들이 군데군데 자라고 있다. 그 시절 엄마 토끼에게 미안한 맘을 조금이라도 덜어보고자 손에 찐득거리게 묻는 진액을 닦아가며 열심히 왕고들빼기를 뜯어다 나르던 어린날의 내가 떠오르고, 늘어나는 토끼 가족들을 위해 매일매일 바쁘게 토끼풀을 뜯어다 이슬을 말리고 먹이셨던 할머니의 정겹던 모습들이 떠올라 입가에 웃음이 고인다. 그리고 문득 의문이 들었다. 나는 왜 그 많고 많은 나물들 중에 엄마 토끼와 공통으로 왕고들빼기 나물을 좋아했을까? 과연 양념 맛 때문이었을까? 나물 맛이었을까? 엄마 토끼와 같은 식성을 지닌 내가 나도 웃겨서 피식 웃음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