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나할머니와 사건 파일 2

사라진 구렁이

by 별바라기

우리 동네에 산책로가 생기고 얼마 후 세워진 이 푯말에 나는 정말 신선함을 느껴졌다.


"뱀이 나오니 조심하란 얘기도 해주고 역시 도시 사람들은 참 조심성 있고 친절해"


"조심성에 도시 사람 시골 사람이 어딨어?"


"왜? 나 중학교 친구는 씨레빠 신고 멀쩡히 집에 가다가 길가에 있던 뱀한테 물려서 발톱이 빠지고 없었어"


"그거야 그 친구가 조심성이 없었네"


"아니지 그 길에 이 푯말을 세워뒀어 봐 내 친구는 병원서 그리 오래 안 있었지, 걔 예전에 그 발톱 때문에 샌들도 절대 안 신었는데 이제는 페디큐어가 진보했으니 신고 다니려나?"


"오지랖 오지랖 별 걱정을 다해요"


남편이 본인의 어깨로 내 어깨를 툭 치더니 경보 걸음으로 쌩하니 지나갔다.




"야들아 우리 집에 구렁이 있다 보러 갈래?"


"자네 집에 구렁이 있대 니도 보러 갈 거지?"


"나는 좀 무서운데, 가가 물믄 죽는거 아녀?"


"야 깊다란 항아리에 있는 뱀이 우뜨케 무나? 걱정 마"


하굣길 나는 한 동네에 사는 동갑네기 친구들에게 집에 뱀이 있다고 자랑을 하고 있었다.


"야 근데 구렁이를 누가 잡았어?"


"우리 할머이"


"니네 할머이? 대단하시다"


"니네 할머이 키도 작고 손도 작자네"


"어 우리할머이 손도 작은데 힘은 쎄. 나도 안즉 팔씨름 못 이겨"


"진짜? 니도 힘이 쎈대 니네 할머이를 못 이긴다고?"


"근데 그 큰 뱀을 어디서 잡으셨나?"


"할머이가 산에 나물 뜯으러 갔는데 풀이 수북하게 솟아 있드래. 그래서 혹시나하고 꼬깽이로 슬쩍 들춰봤더니 뭔가를 잡아먹은 뱀이 배가 불러서 옴짝달싹 못하고 있길래 비료푸대를 열고 꼬깽이로 밀어서 담아 오셨대. 할머니도 이렇게 큰 뱀은 첨인데 옆집 할아버지가 보시더니 뱀이 아니고 구렁이래"


나는 할머니가 뱀을 잡으셨던 과정을 어제 아빠와 옆집 할아버지에게 하시던 말씀을 기억하며, 꼭 내가 잡은 뱀처럼 친구들에게 신이나게 자랑을 했다.


친구들과 집에 가니 역시나 어른들은 안 계시고 구렁이가 담겨 있는 항아리는 마당 구석에 벽돌로 뚜껑을 눌러 놓고 있었다. 나는 뱀이 독을 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어서 뚜껑을 아주 조심히 열면서 실눈을 뜨고 항아리 속을 들여다보았다. 뱀은 항아리 구석에 구겨지듯 몸을 말고 있었다.


"뱀이 아직 소화가 덜 됐나 봐 독도 안 쏘네 자 구경해봐"


나는 자랑스럽게 친구들에게 항아리 안을 들여다 보라 했고 구경을 한 친구들은 뱀의 굵기를 서로의 팔뚝으로 가늠해보며 세상에서 제일 큰 뱀이라고 혀를 내두르고 수돗가에서 목을 축이고 회관 마당으로 우르르 몰려갔다.


해가 뉘엿뉘엿 지고 꼬질꼬질한 몰골로 집에 들어선 나는 뭔가 심상치 않은 느낌을 감지했다.


"너 뱀 항아리 열었어 안 열었어?"


마당에 들어선 나를 보자마자 엄마가 소리를 지르며 다가왔다.


"뱀 항아리? 열었어. 근데"

엄마한테 변명 할 이유를 끄집어내려고 생각해보니 아차! 뚜껑을 닫고 벽돌로 눌러 놓은 기억이 없다.


"언니야 구렁이가 도망갔대. 그거 약이라고 옆집 할아버지가 산다고 한 건데 없어졌대"


평소 뱀이라면 질색하는 엄마는 마당 구석 항아리에 뱀이 넣어질 때부터 표정이 좋지 않았는데 집 안에서 사라진 뱀 때문에 신경이 곤두섰고 들마루 위에 놓여 있던 파리채로 나의 등과 엉덩이를 때렸다.


들마루 구석에 앉아 팔뚝으로 눈물을 훔치고 있는 내게 할머니가 다가오셨다.


"내가 괜한 짓을 해가꼬 니 애미 화만 돋궜네. 니만 매타작 하고"


"할머이 근데 구렁이가 항아리에서 어떻게 나갔지?


"소화가 다 된 모양이지"


"할머이 근데 가가 해꼬지 하러 오믄 우째?"


"해꼬지 하러 안 와. 구랭이는 착한 뱀이여. 여 어디 담 속이나 굴에 드가서 가마이 있을거여. 걱정말어"


"근데 옆집 할아버지한테 그 뱀 얼마에 팔라고 했어?"


"그 아재가 피(폐)가 안좋자네. 피 안 좋은 사람한테 탕이 약이라고 누가 그래서 탐이 났는가베. 뭐 다른 뱀 사다 먹겠지. 을맨지 알믄 니가 구랭이 값 물어줄라고?"


"내가 돈이 어딨어"


"맹물, 돈도 없는기 묻긴 왜 물어"


"히히"


"속도 없기는, 니 애미 또 한소리 할라 얼른 때꾸정물 깨꼬시 씻어"


우리 집에서 뱀을 봤던 친구들의 입을 타고 동네며 학교엔 사라진 구렁이는 어마무시 큰 황구렁이라는 소문과 소문은 어디서 그렇게 살을 잘 붙이는지 용이라고 해도 믿을 태세였다. 그 소문을 듣게 되신 담임선생님 조차도 "황구렁이가 그렇게 컸냐며 너는 그 귀한 걸 왜 잃어버린 거냐"라고 나를 놀리셨다. 그리고 그 소문은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우리들의 기억 속에 차차 잊혀 갔고, 그 무렵 희한 케도 이웃 마을에서는 뱀에 물리는 사고가 자주 일어나 겨울잠을 자기 전에 독이 바짝 오른 뱀들을 특별히 조심하라고 이장 아저씨는 아침부터 뽕짝 음악을 틀고 어색한 억양과 목소리로 동네 방송을 하셨다.




깡촌에서 자랐지만 나는 뱀을 만져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아이가 5살 때 공룡과 파충류에 심취해 있어 나는 동물원 체험을 가서 거금을 내고 아이와 사이좋게 비단뱀을 목에 감고 촬영한 사진이 지금도 남아 있는데 나는 그날 뱀이 닿았던 그 느낌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그리고 자라면서 로드킬 당한 뱀은 수없이 보았지만 내가 뱀을 직접 죽인 적도 없었다. 그런데 초등학교 5학년 때 가을소풍을 다녀오는 길에 신작로 한가운데서 고개를 세우고 우리 가는 길을 가로막고 있는 뱀 한 마리와 마주쳤다. 초록색 빨간색이 온몸에 퍼져 있는 것을 보니 어른들이 너불메기라고 부르는 뱀 같았는데 나보다 앞서 걷던 아이들이 소리를 지르며 내 뒤로 도망을 왔고 나는 항아리에 담겼던 구렁이 말고 처음으로 살아 있는 뱀과 마주했다.


딴 때 같으면 자동차라도 지나가면 뱀이 도망을 가던지 차가 뱀을 치고 가던지 뭔가 사단이 날 텐데 그날따라 오토바이 한 대도 지나가지 않았다. 나는 무서워서 내 등 뒤로 숨은 친구들을 안심시키려고 근처에 있던 넙적한 큰 돌멩이를 주워서 냅다 던졌는데 정말 의도치 않게 돌이 세로로 떨어지면서 뱀의 몸통 중간을 뭉텅 끊어 버렸다. 두 동강이 난 뱀은 고통을 온몸으로 표현하며 방향을 가늠할 수 없게 사방으로 꿈틀댔고 친구들은 그 뱀 덩어리를 피하고자 꼬리잡기를 하는 무리들처럼 우르르 우르르 뛰어다녔다. 내 심장은 미친 듯이 벌떡대기 시작했고 친구들은 뱀이 피를 묻히지 않은 곳만 골라서 길을 건넜고 나는 뱀에게 미안한 맘이 들어 뒤를 돌아보니 뱀은 기운을 다했는지 점점 움직임이 둔해지고 있었다.


"올골레 니 이제 클났다. 뱀은 항상 복수하러 온다고 했는데 니가 뱀한테 돌을 던졌으니 자가 니한테 복수하러 올지도 몰라"


"야 니 입조심해라. 니들이 무서워하니 내가 돌을 던진 거지 내가 뭐 뱀한테 원한이 있었나?"


"그냥 돌만 던져서 쫓지 누가 뱀을 짤르래"


"내가 뱀이 그리 짤라질줄 알았나? 어쩌다 보니 돌이 그리 날아간걸"


평상시에도 얄미웠던 저 간나는 집에 가는 내내 펄떡 대는 심장에다 소금을 뿌렸다.

'간나 담엔 도와주나 봐라'


"할머이"


"소풍 잘 댕기 왔나? 와 기운이 읍노?"


"할머이 내가 뱀을 반 짤라놨는데 죽지는 않았어 근데 뱀이 나한테 복수하러 올까?"


"뱀을 죽였대?"


나는 소풍길에 돌아오던 상황을 할머니에게 설명해 주었다.


"가가 명이 다 되었는갑다. 왜 하필 니들 눈에 띠가꼬. 해꼬지하러 안 와. 벌써 죽었을 걸 뭐 걱정 말그래이. 사람들이 뱀이 징그럽고 문다고 나쁘다 하는데 뱀은 절대 먼저 사람한테 해꼬지 안 한다. 니가 발자국 소리만 내도 알아서 도망가. 담엔 돌도 던지지 말고 가마이 비껴 오래이"


"할머이 근데 뱀이 진짜 죽었을까? 지금 가서 확인해 볼래도 해도 지고 너무 멀고"


"지가 반으로 짤맀는데 어찌 살어."


다음날 나는 얼마전 빵구가 나서 타지 못해 벽에 세워둔 자전거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옆집 할아버지의 큰 자전거를 빌려타고 6키로미터 떨어져 있는 어제 뱀을 만났던 그곳에 다시 갔다. 두동강 난 뱀은 자동차에 깔린 탓에 빨간 비늘이 덮고 있는 가죽만 간신히 남아있고 나는 가는길 오는길 통틀어 죽은 뱀을 6마리나 보았다.


점점 자라면서 안 것이지만 가을날 급격히 떨어진 기온에 체온이 떨어진 뱀은 그나마 따뜻함을 품고 있는 아스팔트 위에서 몸도 녹이고 햇볕도 쬐며 쉬고서 산에 올라 겨울잠을 자려는 준비를 하려 했던 것인데 자동차 괴물과 괴물 소녀를 만나서 명을 다한 것이었다.


"해꼬지를 하지 않으면 뱀은 알아서 도망가"


할머니의 그 말씀은 지금껏 나를 안심 시켜 주고 있다. 해마다 남편을 따라 산에 벌초를 가는 나는 산 입구부터 일부러 발을 쿵쿵 굴러 뱀들에게 피해 달라고 신호를 보내며 산에 오른다. 그 덕분에 수로에 빠진 살모사를 한 번 보았을 뿐 뱀은 한 번도 마주치지 않았다. 올해도 나의 발구르기는 계속 될 것이고 이왕이면 뱀은 사라지는 꼬리라도 발견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누구에게든지 해코지를 하지 말고 괴물 소녀? 괴물 아줌마? 암튼 차카게(착하게)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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