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나할머니와 참새고기 이야기 1
참시고기 맛은?
여태껏 가늠도 되지 않을 만큼 두려움에 떨게 했던 태풍이 지나가고 거짓말처럼 가을 햇살과 함께 찾아온 일상의 평온함.
물이 불어 차마 접근하지 못했던 산책로 출근길에서 경기도 참새들이 모여 도조체육대회라도 하는지 어마 무시하게 많은 참새떼를 만났다.
허 참, 도시 참새라 사람을 그닥 무서워하지 않는 녀석들인가? 내가 있거나 말거나 신경도 쓰지 않고 내가 걷는 발 앞 채 일 미터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종종거리다가 우르르 날아가고 또 종종거리다 우르르 날아가며 나를 능력 없는 허수아비 취급하는 녀석들을 보면서 뜰채나 투망이 있다면 한 번 던져 보고 싶은 욕망이 끓어올랐다.
"니 가서 코를 풀고 오던지 고만 낑낑대고 조용히 좀 해. 참새 다 날아가잖아."
"오빠 참새가 진짜 밥 무러 또 와?"
이미 콧물 잔치로 번들번들해진 팔뚝으로 콧물을 밀며 나는 옆집 수창이 오빠에게 아주 은밀하게 소곤거리며 물었다.
"그렇다니. 자꾸 말 시키지 말고"
"어"
본능적으로 또 대답한 나의 말에 오빠가 눈을 흘겼다.
나보다 여섯 살이나 많은 중학교 3학년인 수창이 오빠 곁에서 나는 지금 한 시간도 넘게 쪼그려 앉아 보초를 서고 있다. 어제부터 오빠는 소쿠리 속에다 벼 나락을 뿌려 참새를 유인하고 있고, 바깥 마당에 있는 변소에 나왔던 나는 오늘도 마당 구석 사철나무 뒤에서 잔뜩 웅크린 채 줄을 잡고 있는 오빠를 발견하곤 잽싸게 집으로 가 동생들 모르게 잠바를 챙겨 나왔다.
오빠 곁에 가니 밤 새 내린 서리에 몸이 둔했는지 잠이 덜 깼는지 운 없는 참새 한 마리가 사방이 뚫려있는 철망 안에서 작은 눈으로 나를 보곤 놀라 푸드덕거렸고 까만 부리와 작은 발을 가진 참새는 다 큰 것인지 덜 큰 것인지 알 수 없었지만 뭔가 살아 있는 것이 나를 반겨 준다는 것 만으로 신이 나고 들뜨기 시작했다.
"우와 오빠 드디어 잡았네?"
"조용히 입 다물고 있음 구경은 하게 해 줄게"
신기해하며 들뜬 내게 오빠가 엄포를 놓듯 뻐기며 말해 입 다물고 쪼그려 앉아는 있지만 인내, 끈기, 기다림과는 전혀 어울리지도 않고 익숙하지 않은 나는 삼십 분이 지나가고 한 시간이 흘러가자 지루함에 온몸이 베베 꼬이기 시작했고 미동도 없이 숨만 쉬며 앉아 있으니 손도 시리고 발도 저려 오는데 눈은 마당의 소쿠리를 향해 있고 줄줄줄 흐르는 콧물을 밀어내느라 정신없는 팔뚝의 부스럭 거림, 오빠랑 내가 마치 박자를 맞추듯 훌쩍 거리는 콧물 소리를 비웃듯이 참새들은 마당에 더 이상 내려오지 않고 높은 나뭇가지에 앉아 짹짹 거리며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내가 저린 발을 움직일 때마다 통 안에 참새가 놀라 푸드덕 거리며 우는 소리를 내자 오빠가 참새 통을 가마니로 덮었다.
"오빠 왜? 참새가 추울까 봐?"
"털 있는 참새가 춥긴 왜 추워. 자가 내는 소리에 마당에 참새 다 도망갈까 그러지"
"발엔 털이 없으니까 추울지도 몰라"
"니 쉰소리할 거믄 집에 드가고"
오빠는 더 이상 잡히지 않는 참새를 내 탓인 거 마냥 구시렁거렸고 손도 발도 시리다 못해 감각이 둔해지던 나는 중천을 향해 가는 겨울 햇살임에도 더 이상 버틸 기운이 없다는 것을 감지하고 잘 있으란 말도 않고 쓍하니 집으로 돌아와 할머니 방으로 갔다.
아침 군불 겸 쇠죽 불에 떠다 놓은 화로의 숯불은 회색빛 재속에 잠들어 있었고 나는 쇠젓가락으로 숯불의 잠을 깨운 뒤 꾸덕꾸덕 얼었던 두 손을 김을 굽 듯이 뒤집어 비벼가며 열심히 녹였다.
"아침부터 수차이하고 참시 잡았나?"
"응 할머이 오늘은 한 마리 잡았어"
"니들 손에 참시가 다 잡히고 눈먼 참신가비다"
할머니가 손등으로 콧물을 훔치시며 웃으셨다.
"할머이 수창이 오빠가 참새고기가 그래 맛있다는데 할머이는 무 봤어?"
"참시 고기? 무 봤지. 근데 고기도 서나케이라 묵고 자시고 할 것도 읍어"
"슬마 오빠가 혼자 다 먹진 않겠지?"
"글씨. 한 점 읃어 묵을라믄 오늘은 종일 수차이 따라다녀야 긋네"
나는 문득 오빠가 혼자서 참새고기를 다 먹어 버릴까 내심 걱정이 되었다.
어서어서 오세요다음날 아침 옆집 마당에 나가보니 오빠는 여전히 소쿠리를 세우고 참새를 유인하고 있었다.
"오빠 많이 잡았나?"
"니 조용히 해라. 어제보다 참새가 더 마이 왔다"
그러고 보니 은행나무와 느티나무 그리고 우리가 몸을 숨기고 있는 사철나무 속에도 가지가지마다 참새들이 앉아서 짹짹거리고 찌지불 대는 소리가 더 많이 느껴졌고 마당에 내려앉은 참새도 훨씬 많아 보였다. 코를 훌쩍거리며 곁에서 쪼그려 앉아 있는 내게 엄청 자랑스러운 표정과 목소리로 오빠가 말했다.
"나 어젯밤에 저기 나락 볏단 사이에 손 집어넣어서 참새 두 마리나 더 잡았다."
"우와 거기 참새가 드간 건 어떻게 알았어? 오빠 안 무섭드나? 쪼이키믄 우쨀라고?"
"새가 들어는 갔는데 나오는 게 안 비더라고. 그래서 손을 느봤지. 자느라 그랬는지 금방 잡혔는데 그 쪼맨한 게 생각보다 따시드라"
"그럼 가들은 지금 어딨는데?"
"너무 쪼맨해서 더 크라고 좁쌀이랑 한태 담아놨지. 어제 거랑 모두 세 마리"
"오빠 약속해야 한다. 혼자서만 무믄 안 된다."
"알았다 간나야"
오빠의 웃음이 담긴 대답을 듣고 안심한 나는 멀쩡한 대문을 두고 담을 훌쩍 넘어 집으로 돌아갔다.
해가지고 할머니가 저녁 군불과 쇠죽 끓인 숯을 화로에 담아 들어오시자 나는 할머니 방으로 건너갔다.
"니 참시 고긴 읃어 뭇나?"
"아니. 오빠가 참새가 아직 찌만 하다고 더 키워서 잠 묵는다고 그랬어"
"아까 수차이 집에서 두재네 아재 하고 태남이 아재 하고 쏘주 한잔 하든디"
"토끼 아파트에 토끼 많으니 그거 잡아서 묵었겠지. 슬마 찌만한 참새를 묵었을라고"
나는 너무 궁금했지만 해가 넘어가고 윙윙 바람이 노는 밤이라 불 켜진 오빠 방까지 확인하러 갈 순 없었다.
다음날 아침을 먹고 귀를 쫑긋 세우고 기다리니 여느 날과 똑같이 오빠가 마당에서 독구를 데리고 운동하는 소리가 들리길래 잽싸게 뛰어 옆집 마당으로 뛰어가다 밭 가생이에 높다랗게 쌓여 김이 모락모락 나는 거름터미에서 어제는 보이지 않던 버려진 새털 뭉치를 보게 되었다.
"오빠 참말로 참새 잠 뭇나?"
"니 참새 잠 문건 어찌 알았나?"
"저어 거름 터미에 새털 있두만"
"간나 눈은 밝아가지고"
"치이 오빠 혼자 다 묵고 맛있드나?"
"간나 뭔 소리래? 난 참새 깃털 하나 구경 못했다. 어제 영준이네 갔다 오니 아부지가 털 다 뽑고 버강지서 까술구서 쏘주 드셨다 하드라"
"토끼 안 드시고 찌만한 참새를?"
"어른들이 어디 뭐 안주 양 따지나 걍 마시는 기지. 그냥 마당서 놀게 냅둘걸 괜히 잡았나 싶드라."
"그라믄 인제 참새 안 잡을라고?"
"어 인자 안 잡는다. 남 좋은 일만 시키고 참새한테도 미안쿠로. 참 오빠 이제 고등학교 가야 돼서 읍내 가서 자취한다. 그래도 야자 없는 토요일엔 올끼다. "
그날 점심을 먹은 오빠는 자전거를 타고 출장소 옆 이발소에 가서 머리를 빡빡 밀고 왔고 나는 빡빡머리 오빠가 어색해서 웃기다고 놀렸는데 오빠는 아무 말도 않고 집으로 들어갔고 그것이 내가 오빠에게 한 마지막 말이, 야자 없는 토요일이란 말은 우리 언니가 고등학생이 되어 도회지로 유학(?)을 가고서야 이해한 말이었다.
어떤 규칙이 있는진 모르지만 오빠는 이따금씩 까만 무당개구리 같은 무늬가 있는 옷을 입고 집에 왔는데 분명 고등학교를 간다고 했는데 마치 군대를 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일요일 가겟방 앞에서 친구들과 동생들이랑 놀고 있다 보면 하루에 2번 밖에 없는 버스를 타려고 시간 맞춰 나온 오빠의 손에는 쌀자루와 김치통이 들려 있었고 오빠가 입었던 옷은 고등학교 교련복이라고 했는데 오빠는 고등학생이 된 후로는 나에게 예전같이 반갑게 인사를 하지도, 쿠사리를 주지도 않았다. 살이 빠져서 키가 큰 것인지 키가 커서 살이 빠진 건진 모르지만 마당에 서 있는 국기 게양대만큼 키가 커졌지만 공부하기 힘이 들어서인지 밥 해 먹고 학교 다니는 게 힘들어서인지 어딘가 슬퍼 보이고 기운 없어 보였다.
또 그렇게 시간이 지나 나도 중학생이 되었고 오빠는 군대에 간다고 우리 집에 인사를 왔다. 어른들은 남자들이면 다 갔다 오는 거라며 맛있는 음식과 용돈을 주고 선물도 챙겨주며 오빠를 배웅했고 나는 군인 아저씨가 될 오빠가 무척 어색했지만 휴가를 나오면 정말 반갑게 맞아주고 싶었는데 막상 오빠가 첫 휴가를 나와 마당에서 독구의 후손과 놀고 있을 때 나는 인사도 하지 않고 쓍하니 지나쳐 집으로 들어가 버렸다.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