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나할머니와 참새고기 이야기 2

참시고기 절대 알 수 없는 맛

by 별바라기

"얄궂기도 우째 그 착한 거 한테 이런 일이 생기가꼬"


"거 사람 명줄이 어디 맘대로 된대요."


저녁 식탁에서 할머니가 한 숟가락 뜨시다 말고 말씀하시니 아빠가 대답하셨다.


"그라믄 어디 앞에 선산에다 묻는다나?"


"형님한테 듣기론 국립묘지에 묻힌대요."


할머니는 곁에 앉아 밥을 먹고 있는 막냇동생의 머리를 아무 말 없이 쓰다듬어 주셨다.



옆집 할아버지의 늦둥이 아들이자 상병인 수창이 오빠는 군에서 난 사고 때문에 집으로 영영 돌아올 수 없게 되었다. 당시 자세한 얘기는 어른들이 금기어처럼 쉬쉬 하시며 말을 아끼셔서 자세히 알 순 없었지만 오빠의 죽음 이후로 당최 외부로 외출을 하시지 않는 옆집 할아버지가 하얀 운동화를 신고 버스에 올라 어디론가 가시는 날이면 나는 의례히 대전 현충원에 가신다고 짐작하고 할아버지께 더 경건한 마음을 담아 인사를 드렸다.


아들의 죽음과 바꾼 연금이라는 제도 때문에 더 이상 토끼도 키우지 않고, 농사도 짓지 않고 술만 드시는 옆집 할아버지를 흉보는 동네 사람들도 있었지만 지금에서야 드는 생각은 할아버지는 막내아들과 같은 맘으로 전역일을 하루하루 세며 기다리셨지만 돌아오지 못한 아들을 향한 그리움과 나라에 대한 원망, 젊은 시절부터 붙어 있던 고질병에 보태진 마음의 병까지 더해져 심각하게 우울해지시고 무기력하셨던 것 같다.


매일 같이 드시는 술 때문에 학교에 다녀오던 나는 동네 가겟방 앞이나 골목길에 술이 잔뜩 취해 앉아 계시거나 누워 계신 것이라 하기에도 애매한 널브러진 할아버지를 만나 인사를 드리면 할아버지는 떠지지 않는 눈을 크게 뜨시며 반갑게 인사를 받으시곤 그때부터 온몸에 붙어 있는 주머니를 몽땅 뒤집어 돈을 찾으셔서 내 손에 쥐어 주셨다. 어떤 날은 백 원짜리 어떤 날은 오백 원짜리 어떤 날은 천 원짜리로 용돈의 크기는 둔갑했지만 할아버지의 혀만큼이나 둔해진 몸을 어찌하지 못해 누워 계신 할아버지를 부축해서 집에 오고 나면 할아버지 오줌이 나에게도 묻고 할아버지 침이 내 머리에 거미줄처럼 매달려도 있고 할아버지가 오늘은 가겟방에서 무슨 안주로 술을 드셨는지 다 알 것만 같던 냄새들은 몇 날 며칠 나를 따라다녔다.


옆집 할아버지가 술병이 단디 나시는 바람에 며칠 누워계셨던 이유로 나는 홀가분하게 골목길을 누볐지만 코에 밴 냄새를 잊을만하면 또 취해 계신 할아버지를 만나는 바람에 나는 그 냄새들에 절여져 중학생 시절을 보냈던 것 같다. 그리고 어쩌다 나에게 하사 되는 용돈의 크기가 궁금하셨던 옆집 할머니는 내가 할아버지를 모시고 가는 날이면 꼬박꼬박 금액을 물어보셨고 나는 혹 지폐를 받게 되면 할머니께 돌려 드렸다. 엄마의 지령 때문만은 아니었고 할아버지가 쓰시는 돈은 그 집 막내아들 목숨 값이라는 말을 모르는 동네 사람은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니 이거 수요이네 갖다 주고 온나"


"할머이 지금? 이 이른 시간에?"


"수요이 아부지 또 술병 났는지 새벽까지 마당서 게우고 있드라. 국이라도 끓이 묵게 그 집 정지에 두고 온나. 어제도 가겟방 상지이 어머이하고 수요이 어머이 욕지거리 해대므 쌈질해서 동네가 들썩했지. 수요이 아부지 외상 술값이 수차이 한 달 목심 값 보다 더 마이 나왔다드라"


"내 접때 할아버지한테 술 팔지 말라고 할머니가 가겟방 아줌마한테 신신당부하는 거 들었는데 외상술을 또 팔았나 보네. 몸이 이기지도 못하는 술을 왜 자꾸 드신대. 근데 지금 가믄 독구 손자 시끼가 죽기 살기로 짖을 텐데 우짜지? 그 시낀 나 보믄 좋다고 오줌 질질 흘리며 꼬리까지 치면서 왜 그리 짖나 몰라"


나는 혹여나 옆집 식구들을 마주치거나 독구 손자가 짖을까 고민하다 대문이 아닌 뒤꼍 담장을 넘어 옆집으로 건너가 부뚜막에 콩나물을 내려놓고 쏜살 같이 되돌아왔다.




"야야 이리 와본나"


할머니 목소리가 다급히 들렸다.


"언니야 빨리 와봐 할머이가 참새 잡았어"


호다닥 나가보니 할머니가 마당서 말리고 있던 들깨 갑바천 위에 데친 나물을 건질 때 쓰시는 소쿠리를 엉거주춤한 자세로 누른 채 나를 쳐다보신다.


"야야 이 속에 참시 들었는데 우째 꺼내나? 니가 꺼내보래이"


"내가? 할머이도 못하는 걸 내가 우째. 새가 쪼믄 우째라고? 난 부리도 발톱도 무수워"


"등치는 곰만 한 게 무숩긴. 니 참시 고기 묵고 싶댔자네"


"히야~ 할머이 그 일을 안즉도 기억해? 그때는 오빠 따라 재미로 했던 기고 이젠 안무도 돼. 그라니 걍 날리 주자"


나의 대답을 들으신 할머니는 소쿠리를 가만히 들어 올리셨고 마당에 널려진 들깨를 친구들 틈에서 정신없이 먹다가 할머니 소쿠리에 잡혔던 아기 참새는 잔뜩 몸을 웅크리고 있다 두리번두리번 고개를 움직이더니 그제야 뻥 뚫린 시원한 공기를 느꼈는지 파드닥 날개를 펼치며 지붕 위로 날아올랐고, 지붕 위로 아기 참새가 날아 올라 무리에 합류하자 지붕 위에서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던 참새떼들이 희한한 울음소리를 내더니 우르르 뒷산으로 날아갔다.




2009년 큰아이의 초등학교 첫여름방학을 맞아 나는 재래시장 탐방이라는 거대한 이름을 붙여 전국적으로 큰 장이라는 성남 모란시장 견학(?)을 갔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나는 대형 마켓보다 재래시장에 가는 것을 좋아하는데 특히나 경기도에 살게 되면서 지인들의 입소문을 통해 들은 모란시장이 너무너무 궁금했었고, 동경과 환상 때문이었는지 그 무렵 희한하게 텔레비전을 볼 때마다 모란시장 구석구석이 소개되었는데 나는 갈증도 해소하고 아이들에게도 보여주고 싶은 맘에 아침 일찍 지하철을 타고 나섰다.


시골장터에 익숙한 나였지만 나의 상상을 넘어선 이리 큰 장은 생전 첨이라 아이들보다 내 눈이 더 휘둥그레졌고 식구들의 눈을 사로잡은 것은 강아지와 고양이 새를 파시는 할아버지, 그리고 코를 단숨에 사로잡은 것은 메추라기 구이였다. 나는 아이들과 메추라기 구이를 먹어보기로 하고 석쇠 위에서 구워지는 과정을 지켜보며 어마무시 커진 기대감으로 기다린 결과 냄새와 맛이 꼭 비례하지 않는다는 것도 알게 됐다. 왕소금이 우적우적 씹혀 한 번 놀라고 비릿한 냄새가 올라오는 질깃한 살점을 씹으며 두 번 놀랐는데 어린 시절 참새고기를 먹어본 적 있다는 남편이 참새고기랑 크기도 맛도 비슷하다는 설명에 나는 그 어린 시절 그리도 먹어보고 싶었던 참새고기 사건을 떠올리며 허탈한 마음이 들었다.


나는 어떤 맛을 기대하며 상상의 나래를 폈던 것일까? 꿩고기도 토끼고기도 멧돼지 고기도 먹고 자란 나인데 나는 참새고기에게서 어떤 맛을 찾아내고 싶었던 것일까?

참새가 소쿠리 안에 들어오기를 기다리며 마당에서 쪼그려 앉아 있던 여러 날, 기대감을 갖고 줄을 잡아당겼지만 기가 막히게 빠져나가는 참새들과 허탕 치는 횟수가 늘어날수록 덮치는 소쿠리를 눈치챈 꾀보 참새들을 무한정으로 기다리며 미련하게 마당을 지키던 내가 떠오르고, 빡빡머리를 민 뒤로 국기게양대만큼 키가 훌쩍 커졌던 오빠, 야간 자율학습 없는 토요일에 쌀과 반찬, 용돈을 타러 본가에 왔던 오빠는 자취집에 교복을 빨아 널고 갑자기 커진 키에 집에 입고 올 옷이 없어 그 까만 무당개구리 같은 교련복을 입고 집에 오는 거였단 이웃집 언니의 얘기도 떠오르고, 혹여나 술 취한 할아버지가 동전이 아닌 초록색 지폐를 내게 건넸을까 의심스러운 눈으로 나를 보시던 옆집 할머니의 모습도 떠올랐다. 그리고 무엇보다 할머니보다 손도 발도 키도 훨씬 더 커진 사춘기 손녀에게 참새를 잡아 구워주시려고 했던 할머니 마음과 시간이 흘러 엄마가 된 손녀가 두 아이들과 함께 신이 나서 모란시장 구석구석을 살피며 장을 보던 모습과 메추라기 고기를 먹고 와장창 깨진 환상에 마냥 행복하게 웃을 수 없었던 일이 마치 어제 일처럼 생생하다.




메추와 라기가 추울까 온수와 체온으로 돌보는 아이

아이가 방과 후 교실서 데리고 온 메추라기를 기른 적이 있었다. 우리 집에서 커 나간 오리와 닭처럼 오래오래 살길 원했지만 메추와 라기는 똥싸개병에 걸려 오랜 시간 머물진 못했고 이야기의 맺음을 하자면 참새도 메추라기도 닭 만 못하다는 얘길 하고 싶다.

털 벗긴 메추라기는 모습도 충격적이고 고기는 역시 뜯고 씹어야 맛인데 작아도 작아도 너무 작다.

아직도, 앞으로도 참새고기 맛은 절대 알 순 없겠지만 나에게 참새 잡는 법을 가르쳐준 오빠와 또 참새고기를 먹여주고 싶으셨던 할머니의 마음, 늘 반갑게 인사를 받아 주시던 옆집 할아버지의 웃음은 오래오래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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