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나할머니와 감재송편
김이 솔솔 쫀득쫀득 맛있는
매미하고 닭 하고 누가 누가 이기나 죽어라 목청 겨루기를 하는 새벽.
엄마는 안개가 자욱해 앞도 보이지 않는 새벽밥을 드시곤 점심밥이 든 가방을 들고 밭에 가시기 전 반쯤 눈을 뜨고 있는 언니에게 동생들 밥 잘 멕이고 소나기 오면 빨래 걷고, 장독대 덮고, 감자 물을 잘 갈라는 지령까지 내리시고 우리가 자고 있는 방을 나가셨다. 식구들 중에 할머니를 버금가게 초저녁 잠이 많은 나는 대신 아침잠이 없었기에 새벽부터 엄마가 떨그럭 떨그럭 소리로 부엌을 깨우고 쌀을 씻어 가스불을 켜는 소리부터 반찬 하는 소리까지, 언니에게 내린 지령까지 전부 귀에 담으며 누워 있었다.
산골에서 시부모님과 시동생 5명, 어린 4남매를 데리고 살림을 했야 했던 엄마는 때론 무에서 유를 창조해야 하는 막중한 책임이 있는 분이셨다. 지금 보면 엄마가 너무 억척스럽게 살아오셨고 아직도 그렇게 살고 계셔서 안쓰런 맘이 생기다가도 어떨 땐 고만 좀 쉬라고 화를 내기도 하는데, 솜씨 좋고 개척정신이 강한 엄마 덕분에 우리는 맛있는 요깃거리를 많이 먹고 자랐다.
장마가 오기 전 감자를 캐고 나면 상처가 있어 물러져 썩는 감자가 수두룩 빽빽 생겼는데 엄마는 한 알도 허투르게 버리지 않고 모두 모아 깨끗이 흙을 씻고, 막냇동생이 숨으면 보이지 않을 만큼의 깊은 다라에 감자를 넣고 비니루로 입구를 막았다. 그렇게 여러 날이 지나면 감자 다라는 솔솔 똥쿤내를 내며 마치 끓고 있는 거 마냥 보글보글 거품을 내면서 퉁퉁 울리는 요상한 소리도 냈고 덮었던 비니루 뚜껑을 열면 정말 상상도 하지 못한, 감히 추측도 할 수 없는 최고의 똥내가 났는데 엄마는 눈 한 번 꿈쩍이지 않고 맨손으로 그 썩은 감자들을 휘휘 젓고 손으로 뭉갠 뒤 손잡이가 달린 스댕 소쿠리로 감자 껍질과 불순물들을 걸러내고선 엉망진창 똥내 나는 감자물이 가라앉기를 기다리셨다. 그렇게 다라 안에 감자물이 진정이 되어간다 싶으면 시커멓게 남은 잔여물들을 얕은 다라 두 개로 옮겨 담으시곤 그날부터 매일매일 엄마가 직접 여러 차례 물을 갈아 주셨는데 녹말가루가 완전하게 가라앉기 전에 물을 잘못 비우면 죄다 쏟아져 먹을 게 없다고 그 작업만은 우리에게 맡기지 않으셨고 그렇게 시간이 하루 이틀 지나다 보면 시커멓던 감자녹말들은 점점 더 하얀색을 내며 가라앉았고 그 냄새가 익숙해진 것인지 없어진 것인지 헷갈리게 똥쿤내도 희미하게 사라졌다.
엄마가 감자 다라를 설치한 곳은 나의 풀장이 있던 큰 도랑 다리 위였다.
다리 위에는 물이 빠져나갈 수 있는 내 주먹만 한 구멍이 있었는데 그곳을 향해 감자 다라 안에 있던 물을 쪼로록 따라 부으면 다리 밑으로 와다다 커다란 울림소리를 내며 떨어졌고 감자물은 도랑물에 숨어 멀리멀리 달아났다. 그리고 비워진 다라에 물을 채우기 위해 막아 놓은 풀장에 끈을 묶은 양동이에 돌멩이 하나를 넣어 조심조심 하늘에서 선녀가 동아줄 내리 듯 내려보내 적당량의 물이 담기길 기다렸다가 양동이를 데리고 가려고 쑤욱 끌고 가는 도랑물과 시합이라도 하는 것 처럼 젖 먹던 힘까지 끌어 모아 으아아 기합 소리를 내며 물을 길어 올렸는데 자칫 균형을 잃으면 다리 밑으로 떨어질 수 있어서 늘 긴장을 놓치지 않았다. 그리고 한바탕 소나기라도 지나가 윗동네와 큰 산 계곡에서 끝도 없이 내려오는 흙탕물이 맑아지기를 한 참 동안 기다려야 할 때도 있었는데 가끔씩 낮잠이 쏟아지는 오후에는 그 이유를 핑계 삼아 물 갈러 가는 일을 거르는 것도 꽤 신나는 일이었다.
7월 말의 햇볕에 뜨겁게 데워진 다라 안의 물은 뜨뜻하다 못해 뜨겁기까지 했다. 그 뜨거운 물을 조심스레 따라 버리고 도랑 밑으로 양동이를 내려 열심히 찬물을 길러 다라를 채운 뒤 암만 손가락에 힘을 세게 주고 찔러보아도 잘 들어가지 않는 딱딱한 녹말 뭉치에 어떻게든 비집고 구멍을 내면 그것이 물꼬가 되어 마치 거짓말 같이 흐물흐물한 상태로 풀어지기 시작했는데 첫 체험땐 그 상황이 너무도 신기했었다.
그렇게 괴물 손 놀이라 하며 둥근 다라 안에 쌓여 있던 녹말 뭉치를 다 부셔주는 작업까지 끝내야 오늘 나의 지령은 완수였는데 겨울방학에 시간 맞춰 콩나물에 물을 줘야 하던 일처럼 아침 10시, 오후 3시에 한 번 해야 하는 감자 물 가는 작업도 까먹지 않게 정신 바짝 차려야 했고 지금은 가까운 큰 도랑까지 가는 길이 그때는 어찌나 먼지, 증말 귀찮고 성가시게 느껴졌었다.
시어머니의 정성나의 시어머니는 잡곡을 주실 때 꼭 이렇게 병에 담아 주신다. "힘들게 일일이 담지 마시고 그냥 봉다리에 담아 주세요"라고 해도 이래야 벌레 안 난다며 담아주시는데 나는 안다 벌레 먹고 타작하다 깨진 못난이들은 당신이 드시려고 빼놓으시고 정말 실하고 이쁜 아이들만 꽉꽉 담아 주신다는 것을. 한 알 한 알 투명한 병에 담는 작업을 하시며 언제 전해줄까 설레는 맘으로, 아들 내외와 손주들이 맛있게 먹는 것을 기대하며 흐뭇해하셨을 거란 것을. 나는 파종부터 수확까지 노고의 과정을 알기에 한 알도 흘려보내지 않으려 한껏 집중하고 여름엔 콩국수를 까만 팥은 팥밥으로 빨간 팥은 팥죽이나 팥칼국수와 앙꼬를 만들어 큰맘 먹고 가족들의 생일에 떡을 하기도 한다.
여름방학 내내 언니와 내가 나란히 손을 잡고, 어깨동무를 하고 친하게도 갔다가, 때론 서로에게 미루고 티격태격하며 갈아 주었던 녹말 덩어리가 어느 정도 되었다 싶으면 엄마는 니야까에다 다라를 싣고 집으로 돌아와 마당 구석에 싸리발을 펼치고 천을 깔은 뒤 주걱으로 덩어리들을 크게 떼어 놓으셨다. 그러면 언니와 나는 찰흙을 갖고 노는 것처럼 누가 누가 더 크게 떼나 기합을 넣으며 덩어리를 부수고 또 그 덩어리를 뚝 뚝 떼어 더 작게 만든 뒤 손바닥이 뜨거울 정도로 비벼 더 부셔 놓았다.
그렇게 채반 위에서 아침 이슬도 피하고 소나기도 피하고 요래조래 귀한 대접을 받으며 뜨거운 여름 햇살에 신나게 일광욕을 끝낸 하얀 가루는 어느 날 구멍도 잘 보이지 않는 아주 빽빽한 고운 체를 통과하며 진정한 감자 가루로 태어났고 아까부터 엄마 곁에 쪼그려 앉아 구경하던 막냇동생은 공기 중에 날아다니는 가루에 냅다 재채기를 했고 고개를 돌릴 새도 없이 일어난 재채기 폭풍은 마법할머니가 푱하고 나타나는 것처럼 둘러앉은 우리들에게 흰 마법가루를 뿌려 주었다.
엄마는 탬버린을 치는 것 마냥 박자를 맞춰 채를 계속해서 흔들고 계시고 체가 비어갈 때마다 언니가 쏜살같이 국자로 가루를 보충해 준 덕분에 엄마 앞엔 소복하게 작은 설산이 만들어지고 있는데 연탄불 위에서 아까부터 솔솔 하얀 김을 내며 끓고 있는 빨간 팥을 할머닌 나무 주걱으로 이따금씩 뒤적뒤적 섞어 주시다가 손가락으로 조금 건져 기미를 하시는 걸 보니 앙꼬도 다 된 거 같고 오늘 저녁엔 감재송편을 먹게 될 것 같다.
"야야 물 다 끓었나?"
"어 할머이 주전자 갖고 간다."
나는 엄마가 들려준 주전자를 들고 조심조심 마루서 기다리는 할머이한테로 갔다.
"니 여다 살살 부 봐라"
"이 뜨거운걸 그냥 부라고?"
"감재떡은 뜨건 물로 반죽을 치대야 하니 콱 들이붓지 말고 살살 내가 고만하믄 멈추래이"
나는 바들바들 떨리는 손과 집중하면 나도 모르게 내는 낑낑 소리를 내며 물을 붓고 있었다.
"아이고야 물 붓는 사람 어디 장에 갔나?"
"아니 뜨건 물에 할머이 손 딜까봐 그라지"
"인내"
할머니가 주전자 손잡이를 건네받으시곤 시원하게 물을 부으시자 여름 내내 맡다가 어느샌가 나지 않았던 똥쿤내가 살짝 코로 들어왔다.
"엄마 우리 집 떡은 왜 이래 똥그랗게 생깄어?"
"떡이 똥그랗게 안 생기면 네모나게 생기나?"
나의 질문에 할머니가 웃으며 대답하셨다.
"아니 정숙이네 떡은 만두같이 길쭉하게 생깃드라고"
"자 봐보래이 이래 생겼제?"
"어 할머이 우뜨케 알았대?"
"히힛 우뜨케 알긴. 요래 맹글어도 되고 요래 맹글어도 되니 그렇지"
할머니는 만두같이 생긴 감자떡에 손가락을 꾹 눌러 모양을 내셨다.
우리 엄마 송편은 동그랗게 생겼다.
그리고 할머니 송편은 그냥 떡반죽을 무심히 꾹 하고 움켜쥐었다가 내려놓은 거 같이 생겼다.
정숙이네 엄마 송편은 만두 같이 생겼고
그리고 나의 시댁 송편은 모시송편처럼 길고 넓적하게 생겼고
지금 내가 사는 우리 동네 떡집 송편은 양쪽 끝이 표족한 마름모 모양으로 생겼다.
어릴 적 나는 모든 송편이 동그랗거나 꾹 움켜쥔 모양만 있는 줄 알았다. 하지만 송편을 빚어보고 또 얻어먹고 나눠 먹으면서 그 모양은 빚는 사람의 솜씨에 따라, 지역차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무엇보다도 내가 크는 동안 너무도 익숙하게 먹었던, 빨간 앙꼬가 들어 있던 감자떡은 흔하지 않은 떡에다 내 또래 친구들이 그닥 좋아하지 않는 떡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결혼을 하고 시아버지의 첫 생신이 돌아왔을 때 새벽 일찍 일어나 감자 송편을 빚었다. 아버님도 어머님도 그리고 남편도 적잖이 당황하는 눈치였는데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남편이 해준 시식 후기는 집에서 만든 감자송편을 한 번도 먹은 적이 없었다는 것이었고 나는 다시 한번 지역 문화차이를 절실히 느꼈다. 하지만 나는 내가 제일 자신 있게 만들 수 있는 떡으로 아버님 생신을 축하해 드리고 싶었는데 애석하게도 그 세분들보다 내가 먹은 떡의 개수가 훨씬 더 많았다.
따끈따끈한 감재송편
비도 오고 춥고 뭔가 맛있는 것이 먹고는 싶은데 그것이 뭔지는 모르겠고 애매한 맘으로 거실을 서성이며 퇴근 전인 남편을 기다리다가 냉동고에서 화석이 되어가고 있는 감자송편이 떠올라서 몇 개 쪘다.
감자송편의 모양과 맛까지 담은 사진을 찍고 싶었지만 자꾸만 김이 서려, 인내심도 그리 많지 않아서 포기하고 호호 불어 앙 하고 한입 물으니 딸각딸각 소리를 내며 우물우물 감재송편을 드시던 할머니모습도 떠오르고 살림 초보 며느리가 시집오고 맞은 당신의 첫 생신상에 올린 쫀득쫀득 탱탱한 감자송편을 한 입 베어 물으시고 틀니가 달라붙어 당황해하시던 시아버지의 모습도 떠올라 갑자기 훅 더워졌다.
한 개 두 개 떡은 자꾸 사라지는데 남편은 오지 않고 중간고사를 당하고 있는 고삼이 언니는 접시를 슬쩍 보더니 못 본척한다. 맛있다고 암만 무라고 권해도 실실 웃으며 물만 마시고.
아~ 이 맛있는 감재송편 맛을 어떻게 알려주지?
친정아부지가 감재송편을 음청 좋아하시는데 이 식성은 할머이, 아빠, 나 딱 삼대까지가 끝인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