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끈한 감자떡재래시장 감자떡집에서 감자떡과 찐빵을 산 나는 또 다른 떡집에 진열된 떡들을 보며 남편에게 중얼거렸다.
"여보 나 인절미가 먹고 싶은 거 같애"
"그럼 사"
"아니야 오늘 장본게 많으니 다음에"
"감자떡이랑 찐빵은 장인어른 드리려고 산거 아니야? 인절미도 사지 왜?
"아니야 조짐이 안 좋아. 떡 먹음 진짜 아플지도 몰라. 그래서 더 못 먹겠음"
"무슨 논리가 그래. 먹고 싶은 거 얼른 먹고 아프지 말아야지"
나는 결국 인절미를 먹지 못한 상태로 된탕 고뿔에 걸렸고 코로나랑 독감이 의심 되어 검사를 했지만 아프기만 무지하게 아프고 결과는 음성으로 나왔다. 그리고 냄새도 입맛도 느끼지 못한 며칠을 보내고 겨우 걸어 다닐 기력을 차린 후에야 맛있다고 입 소문난 떡집에 들러 인절미가 담긴 까만 봉다리를 흔들며 집으로 왔으나 의욕만 앞섰지 몇 조각 먹지 못했다.
평상시에는 아무렇지도 않다가 별안간 떡이나 빵이 당길 때가 있다.
기가 막히게도 그땐 십중팔구 아프거나 아프고 난 뒤이고 지난주도 그걸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 부득부득 인절미를 먹지 않았던 것도 있었는데 이렇게 많이 아플 줄 알았으면 먹을 걸 그랬나 보다. 오뉴월엔 개도 안 걸린다는 감기라두만 이번에 증상은 코로나 이후로 겪은 통증 중에 최고였던 것 같다.
"엄마 결국 인절미를 사 왔네? 맛이 느껴지긴 해?"
"아니 아무 맛도 안나. 그냥 식감으로 먹어. 근데 코도 막힌데 목도 멕혀서 인절미 먹다 호흡곤란 오겠다."
코맹맹이 소리에 가뿐 숨을 쉬며 인절미를 먹던 나는 작은아이가 떠다 준 물로 간신히 인절미를 절벽으로 떨어 트렸다.
학교에 다녀오니 수돗가 다라에 하얀 쌀이 담겨 퉁퉁 불고 있다.
"할머이 이건 왜 쌀이 이래 하얘?"
"찹쌀이라 그라지"
"찹쌀은 모 할라고?"
"모 하긴 떡해 무글라 그라지"
"우리 무슨 날이야?"
"무슨 날은, 식구들이 지다 입맛이 없으니 해 먹을라 하지"
평상시에는 장독대 빈 장독 위에 거꾸로 놓여 있던 빛바랜 시커먼 시루는 오늘 할머니 손길 덕분에 장독대를 내려와 깨끗하게 목욕을 하고 마당 구석에 걸려 있는 냄비 위로 번쩍 올려졌다. 할머니는 시루에 삼베천을 깔고 소쿠리에 건져 놓은 찹쌀을 붓고 굵은소금을 솔솔 뿌린 뒤 냄비 뚜껑을 덮으셨고 미리 반죽해 두었던 밀가루를 길게 길게 늘려 냄비를 삥 둘러가며 붙이시며 우리에게 당부하셨다.
"늬들 또 불에다 밀갈 꼬 먹는다고 홀딱 띠지 마래이. 뚜껑도 열지 말고"
"할머이 왜 안돼?"
"왜긴 짐이 새서 떡이 맛이 엄써지지"
솔가지로 지핀 불은 하얀 연기를 내며 주변에 둘러 있던 우리들의 눈을 맵게 하고 재채기를 나게 하더니 금세 마른 장작을 간지럽혀 장작이 타탁타탁 웃음 소리를 내었다. 그 덕분에 마당도 따뜻해졌고 나는 쪼그리고 앉아 활활 타는 장작불을 구경하다가 냄비 속에서 쏴~ 하며 물 끓는 소리와 뚜껑 틈에서 가끔씩 동생 재채기 소리 같이 고막을 자극하는 삐~ 하는 바람 빠지는 소리를 듣고 있었다.
뚜껑을 열면 짜잔~ 하고 맛있는 떡이 있을 거라 잔뜩 기대를 하고 있었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그냥 밥만 들어 있었다.
"에걔 이게 뭐대? 떡이 아니고 그냥 밥이잖아"
"그라믄 떡해 묵는 게 뭐 그리 쉬운 줄 아나? 인자 늬들이 떡을 해야지"
할머니는 주걱으로 푼 찹쌀밥을 튼튼한 고무다라에 넣고 아까부터 장독대 위에서 얌전하게 마르고 있던 절구공이로 찹쌀밥을 쿵 쿵 치대기 시작하셨다.
"할머이 나도 해볼래"
"나도 나도 해볼래"
우리는 할머니한테 서로 하겠다고 졸랐고
"니가 내보다 기운이 더 좋으니 해볼래?"
할머니가 웃으며 나무절구공이를 내 손에 내어 주셨다.
"할머이 이거 너무 무구워"
"니 성이 무급다는데 니도 해볼래?"
할머니가 동생에게 절구공이를 옮겨 주셨는데 동생은 절구공이를 몇 번 움직이지 못했다.
"것보래이 무겁지? 고만 인내"
할머니는 어디서 그렇게 힘이 나는지 주걱으로 밥을 뒤집어 주며 쿵 쿵 떡을 찧으셨다.
"이제 고만해도 되겠다"
"이잉? 할머이 아직도 우둘투둘 밥이 보이는데 더 안 찌?"
"원래 이렇게 밥알이 씹히야 맛있는 기여"
"나는 미끈한게 좋은데"
할머니는 칼로 찰밥 덩이를 뚝 떼어 나무 도마 위에 올려 두시곤 옆에 둔 물이 담긴 사발에 손을 적신 뒤 밥 덩이를 가래떡처럼 길게 길게 밀어 모양을 만드시곤 칼로 툭 툭 잘라주셨다. 그러면 우리는 잘라진 작은 덩어리들을 동그란 쟁반 위에 소복하게 올려져 있는 노란 콩고물 위로 한 개 한 개 떨어트려 옷을 입힌 뒤 접시 위에 차곡차곡 담았고 그제야 인절미가 된 것 같았다.
그렇게 우리 모두의 손을 거쳐 만들어진 인절미는 저녁 식탁에 올려졌고 열무김치와 김칫국을 곁들여 먹었지만 나는 콩고물을 뒤집어썼어도 밥알이 우적우적 씹히는 인절미가 맛이 없었다.
시장에서 만난 뜨끈한 찐빵지난번 집 앞 떡집에 쑥개떡을 사러 불쑥 들어 갔다가 없는 쑥개떡 대신 쑥색 나는 송편을 사 왔다가 왕창 상심했던 나는 이번엔 지하철 역 앞에 있는 떡집에 가서 인절미와 쑥개떡을 사 왔다.
떡집에 진열된 갖가지 떡을 보니 색도 이쁘고 모양도 이쁘고 매끈한 떡이 참 먹음직스럽기도 해 보이는데 주책 맞게 문득 밥알이 씹히는 인절미가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열장 너머로 완두콩이 박힌 찰떡을 자르고 계신 떡집 사장님을 구경하며 할머니가 하셨던 대로 인절미를 만들어볼까? 살짝 고민을 했으나 겨우 떡집까지 오는데도 촉촉이 난 식은땀을 인지하곤 빠르게 포기했다. 아무래도 이 상황에 일을 벌이는 건 회복을 늦출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도 설거지와 뒷정리를 할 생각 만으로도 으휴, 엄청난 두통이 밀려왔다. 당분간은 떡집의 떡으로 만족해야지. 아! 그리고 지금 감기는 감기의 탈을 쓴 '코로롱독감'인 것 같다. 모두들 감기조심하시고 무탈하시길 지면을 빌어 전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