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나할머니와 머위나물
향긋하고 쌉쌀한 기억을 따라
"야야 니 내하고 머우 비러 안 갈래?"
"어디로 갈 낀대?"
"저짝 너매 큰골 골짜구에 머우가 마이 올라왔드라. 그리 갈라카지"
여느 날과 똑같이 할머니는 오른쪽 어깨엔 다래끼를, 나는 폴짝폴짝 발을 구르며 할머니를 따라나섰다.
"우와 벌써 이래 마이 컸네"
"니 칼로 요래 밑둥치를 잘 비서 한쪽에 잘 쌓아 논나"
"으윽 할머이 뭔 이상한 냄새가 나"
"뭔 냄시는?"
"비른내 같은 게 나. 이게 머위 냄샌가?"
"이잉, 비른내는 무신. 이 머우가 을매나 좋은 약인줄 니 아나? 겨울에 곰이 잠에서 깨믄 젤 먼저 뜯어먹는 게 이 머우라자네. 옛날에 이 골짜구에 곰이 이 머우 무글라고 돌아다닌 거 니 못들었제?"
"에이 할머이, 곰이 고기를 묵지 무슨 풀을 묵어. 그리고 진짜 여기 곰이 살았다고?"
"거짓부렁인지 아인지 니 애비한테 물어보래이"
나는 웃으며 말씀하시는 할머니의 얘기가 참말인지 거짓인지 순간 헷갈렸고 산을 간지럽히듯 우수수 소리를 내며 지나가는 윙윙 바람에 깜짝 놀라 설마, 혹시나 겨울잠에서 깬 곰이 어딘가 숨어서 나를 쳐다보고 있지는 않은지 가뜩이나 큰 눈을 더 크게 뜨고 주변을 살펴보았다.
지나간 어느 주말.
시댁에 갔던 나는 창고 뒤 개울가 옆으로 머위가 많이 자랐다는 시어머니의 고급 정보를 듣고 채취에 나섰다.
지난달 마을회관에 마실을 다녀오시다 넘어지신 어머니는 요추골절로 입원 후 퇴원을 하셨고, 우리는 주말마다 시골행을 하고 있는데 덕분에 한 주 한 주 변해가는 시골의 봄 풍경을 누리며 생각지도 못했던 귀촌 생활 사전연습도 하고 있다. 갖가지 꽃나무들 전지질에 마당에 풀도 뽑고 거름도 주고, 어머니를 대신해서 읍내 모종 상회에서 상추랑 당귀도 사다 심었고 나의 희망사항이었던 목화와 해바라기 씨앗 파종도 했는데 곧 때에 맞춰 고추, 가지, 오이, 호박, 토마토 등 갖가지 채소 모종도 사다 심을 계획이다.
어머니가 말씀하신 장소로 가니 진짜 머위들이 들쭉날쭉 자라고 있었다. 그중에 키가 월등히 자란 녀석들만 골라 줄기를 베었는데 물을 잔뜩 머금은 머위 줄기는 과도가 닿을 때마다 아사삭 소리를 내며 내 손 안으로 들어와 비릿한 향을 가져다주었고, 그 향을 따라 어린 시절 할머니와 함께 곰이 나온다던 큰골로 머위를 베러 갔던 기억들도 소환되었다. 나는 키 큰 아이들 곁에서 열심히 자라고 있는 작은 싹이 다치지 않게 조심조심하며 한 끼 넉넉하게 먹을 수 있을 만큼만 베고 밭가 구석에 수북하게 올라온 참나물도 슉슉 베어 집으로 돌아오니 남편이 마당에서 괭이질을 하고 있었다.
자 나의 봄 선물이야"자 나의 봄 선물이야"
"머위가 많이 컸네. 맛있게 무쳐줘"
"기다리셩. 껍데기 까고 데치고 볶고 절차가 까다로우신 분이야"
"기다리는 건 문제가 아닌데 요리법은 아는 거지?"
"혹쉬 나를 못 믿는 거임?"
"아니 못 믿는 건 아니고 또 굳이 없던 실험정신까지 동원해서 무칠까 봐 그라지"
"기대하면서 기다려 보셩. 근데 민들레꽃 보기 좋은데 왜 굳이 힘들게 캐느라 그래?"
마당에 안착한 민들레 "엄마의 지령이야. 엄마는 마당에 민들레가 퍼지는 게 싫으시대"
아! 시어머니의 지령.
나는 군말 없이 남편과 함께 마당 군데군데 노랗게 피어 있는 민들레 꽃들을 제거하고 다시는 땅에 뿌리를 내리지 못하게 돌멩이 위에 올려 두었다.
데친 머위집으로 돌아와 손질을 끝낸 머위로 할머니가 해주시던 요리법 대로 볶아 보았다.
쓴 맛이 많이 달아나지 않았으면 해서 데친 후 물에 잠시만 담가 둔 후 쑹덩쑹덩 먹기 좋은 크기로 자른 뒤 팬에 들기름을 넉넉히 두르고 집간장과 다진 마늘과 파를 넣고 볶아 주다가 마지막으로 들깨가루를 솔솔 뿌려 가볍게 버무렸고 데친 참나물엔 된장 양념을 해서 무쳐 보았다.
"애미야 참나물이 짜다"
저녁상에서 한 젓가락 뜬 남편의 한마디에 나는 빛의 속도로 흘겨보았다.
"알았어 알았어 은혜로 먹을게 은혜로. 밥 이~만큼에 참나물 쪼꼼"
"머위 나물은 괜찮지?"
"응~ 참나물에 비하면 안 짜네. 삼시 세끼는 아니더래도 한 끼는 갓 뜯은 나물 무쳐서 밥 해 먹고, 아침에 새소리 바람소리 들으며 깨고 당신하고 지는 노을도 바라보며 차 한 잔 하면서 그렇게 살면 좋겠다."
"근데 안사람. 나물도 짜게 무치는 내가 꼭 그 모든 자리에 같이 있어야 할까?"
"난 짜다고만 했지 못 먹는다고는 안 했다."
애미야 참나물이 짜다요즘 남편과 나는 새로운 호칭으로 부르고 있는데 나는 남편을 '안사람'이라 부르고 남편은 나를 '바깥냥반'이라고 부른다. 한 날 공사 다 망한 일을 마치고 늦게 들어온 나를 맞아주던 남편이
"아이고 바깥냥반 이제 들어오십니까"
라고 인사를 건넸고, 아침 출근길과 다르게 깔끔하게 정리된 거실을 둘러보며
"아이고 안사람 살림하시느라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라고 나눈 인사가 우리의 새로운 호칭이 되었는데 요즘 우리 안사람의 꿈은 '시간 부자'다. 그리고 간절한 소망은 '은퇴'다. 그리고 요즘 나의 정말 정말 간절한 소망은 안사람을 '조기 은퇴' 시키는 것인데 현재 우리 집 상황에 이 일이 성사되려면 꽤 큰 용기와 어마무시한 도전 정신이 필요하기에 아직까지는 선뜻 용기를 내진 못하고 있지만 뭔가 곧 결정을 내려야 한다는 생각은 진즉부터 하고 있었고, 요즘 들어 출근하는 게 재미없다는 안사람을 지켜보며 나의 그 생각은 점점 더 간절해지고 확고해지고 있었다.
그런데 눈치라곤 가물치 콧구녕만큼도 없는 사람 같으니라고. 나는 은퇴를 시켜 주고 싶다고 이만큼 튀어 오르려던 마음을 꾸역꾸역 다시 구겨 넣고 봉인해 버렸다. 아 그리고 참나물은 된장을 너무 많이 넣은 것인지 내 입에도 음청 짰다. ^^;
덧붙이는 말 : 친정아부지는 곰을 직접 보진 못하셨지만 나의 외할아버지는 진짜로 시커먼 곰을 보셨다고 했다. 산에 나무하러 가셨는데 엄마곰이 계곡에서 바위를 들춰 두 마리의 아기곰에게 가재를 잡아먹이는 것을 보고 오셨고 사위인 친정아부지께 말씀해 주셨던 것을 기억하시고 우리에게 옛날 얘기처럼 해 주셨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