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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아 Mar 01. 2022

나에게로 가는길(5)

휴식은 좀처럼 나를 쉬게 하지 않았다.

휴식의 목적성을 갖고자 한동안 시험공부를 했다.

자격증을 따 보겠다며 적성에도 맞지 않는 공인중개사 시험공부를 나름 열심히 다.

하면 할수록 내 길이 아니다 생각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뭔가 하고 있다는 안도감에 쌓여 그냥 집중할 무언가가 있다는 것이 없는 것보다 나은 것 같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쉬지 않고 떠오르는 전 직장의 선임들이 쏟아부었던 말들과 말속에 바보같이 덩그러니 우뚝 서 있던 내 모습에

자존감 따위를 운운하며 나의 괴로움을 대신 표현하려 해 봤지만

세상 속에서 내 이야기는 여름날 손으로 휘저어 버리고 마는 앵앵 모기소리에 지나지 않았다.


하루, 한 달 그리고 일 년쯤 지나고 보니 억울함은 그냥 고스란히 내 기기에만 존재할

실질 적으로 고민할 거리 라도 되어 주는 건 부조리한 사회 따위에 굴복하지 않으려 했다는 소심한 내 변명 따위를 현실화하려는 노력

아니면 힘 있는 자들, 그들을 위한 계획에 놀아나는 실험쥐 같은 힘없고 돈 없는 자들의 우스운 모습 그것에 대해서나 떠들어 대면 좀 나을까?


때로는 조금 무지하거나 때로는 절박한 존재들이  권 권력자들 에게는 더 필요하다는 사실을

조금 비겁하지만....

내가 권력자로 자리바꿈 한다면 결국 나 역시 그런 존재를 찾게 될지도 모른다고 위로해 본다.

그 안에서 물고 뜯고 상처를 받고 그다음 또 다음 사람에게 그 상처를 되갚아 주고 그들은 조금 후련했을까?

그렇게 하라고 권력자들이 가르쳤다.

다행인지 아닌지 나는 그들의 잘못된 관행에 협조 하기가 무척이나 싫었다.


도통 좋은 게 뭔지 떠오르지를 않는다.

꽃, 동물, 바다.... 그리고 사람

내가 좋아하는 모든 일에 사람이 있었고

내가 싫어하는 모든 일에 또 사람이 있었다.


철썩철썩 파도 소리와 끝없이 펼쳐진 바다를 보면 기분이 한결 편안해진다.

겹겹이 가려진 숲 속보다

뭔가가 나올 듯 말 듯 보이지 않는 산 보다

오르고 올라도 다 보여 주지 않는 산보다 그냥 펼쳐진 바다가 좋다.

줄기 가득 물을 머금고 옹기종기 방금이라도 움틀 생명을 느낄 수 있는 싱그런 꽃이 좋았고  풀이 좋다.


연예인을 왜 좋아해? 사진을 왜 보는 거야?

보면 기분이 좋아 지니까... 행복해 지니까.... 아니 왜? 도대체 왜 기분이 좋아지는 건데?

세상 모든 일들에 납득이 되어야만 하는 내가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이해할 수 없는 단 한 가지

 나와 아무런 연결고리가 없는 연예인을 어떻게 저렇게 좋아할 수가 있는지 어떻게 그런 사람을 보고 기분이 좋아지고 행복할 수 있는 건지... 되묻고 또 되물었었다.

한 껏 삐뚤어진 거라 말하는 시선을 무시하고 인간들의 무자비하게 쏟아 부는 끝없는 말의 전쟁에서 피해자임을 자처하는 못난이처럼 보는 사람들을 무시한 채 나는 나와 상관없는 그들을 왜 좋아해 주는 건데 하고 끊임없이 되물었다.

그들의 실상을 보란 말이야...

누구누구는 엄청 착해, 그래서 좋아...

 그걸 어떻게 아는데? 그걸 뭘 보고 아느냐고?

어디 어디에서 그랬어, 동료들이, 늘 그 아이는 그런 아이라고 말해줬어.

아 그래? 내 동료들도 그렇게 말해 달라고 하면 그 정도는 해 줄 것 같은데...

나보다는 훨씬 순진한 딸에게 나는 늘 그렇게 반문하곤 했다.

나이가 나보다 훨씬 많은 어머니께서 그렇게 말했다.

누구는 이쁘고 착하다고

착하다니 어떻게 그걸 안다는 거지? 20년을 지켜봐 온 내 속도 모르면서


카페에 앉아 오랜만에 멍을 즐기려니

아이고 안됐어 누구는 얼마나 힘들었을까?

야 네가 더 힘들어 보여

 다른 테이블 대화가 들린다.

재는 너보다 더 잘 살아 이혼해서 불쌍하다고? 재 사는 집이 얼마 짜린 줄 아니?


쓸데없이 밝은 청력을 탓해야 하는지 오늘도 멍은 틀렸다.

늘 오감이 살아서 심각하게 민감한 나는 제발 잠시라도 좀 멍을 때리고 싶다.

불멍 물 멍 아무도 없으면 또 혹시나 누가 올까 살피느라 조그만 바람 소리에도 소스라 치며 돌아선다.

혼자 여행도 소용없었다.

만 가지 커버되지 않는 갖가지 소리와 내 시야 반경에 모든 일들이 나로 하여금 신경 거리가 되어 내 오감은 더 피곤해지고 말았으니....


가끔 소주 반 병 정도로 취하면 그렇게 편할 수가 없다. 목소리를 조금 크게 내어도 될 듯하고 조금 빨리 달려도 될 듯하고 조금 편하게 앉아도 될 듯하다.

조금 옆사람을 잊어도 될 듯하고 조금은 내 생각을 먼저 해도 될 듯하다.

사람들은 다들 소주 반 병쯤의 취기를 갖고 사는 것 같다.

겉으로만 멀쩡해 보이는 사람 말고 너무 떳떳하게 큰소리치며 자기 뜻대로 휘젓고 다니는 저 인간들은 당최 술 없이도 소주 반 병쯤 취해 있다.


오감이 살짝 내려앉으면 세상이 조금 달라 보인다

 뛰어다니며 고래고래 소리 지르는 아이들도 조금 이해가 되고 의미 없는 일은 절대 하지 않으려 하던 올곧은 심정도 조금 누그러진다.

하천길 따라 줄지어 노는 오리들을 따라 온 힘을 다해 어린아이처럼 뜀박질을 했다.

나를 보고 놀란 백로가 움츠렸던 날개를 뻗어 두어 번 푸드덕거리다 금세 하늘을 향해 높이높이 날아올랐다.

쓸데없이 휘휘 손을 저어 잘 가라고 인사를 건네본다.

쫓아오던 딸이 배꼽을 잡으며 웃음보가 터졌다.

꿱꿱 줄지어 가던 오리 떼가 물을 휘저으며 잠수를 시도한다.

이내 주변에 녀석들도 물속으로 머리를 들이밀고 어느새 엉덩이를 들어 노란 오리발을 보여 준다.

엉덩이도 노란 발도 어쩌면 이렇게 귀여운지 발바닥을 만져보고 싶어 진다.

뽀드득 잘 닦은 접시 소리가 날 것처럼 매끈하고 깨끗한 발바닥이다.

 양옆으로 아직 살얼음 벗어나지 못한 늦겨울 개울물에 천연덕스럽게 머리를 넣었다 물고기를 잡는 이 아이들의 겨울은 나와는 많이 다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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