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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아 Feb 28. 2022

부지런한 나무늘보

나에게로 가는길(4)

정작 직장의 사장인 의사는 아무래도 상관없다.

조용히 그리고 병원만 잘 굴러가면 될 뿐이다.

누구 하나 곪아 터진 채 죽어 나가도 딱히 상관은 없다. 본인의 병원이 아니라 나가서 죽어 주기를 바랄 뿐

그들의 큰 계획 아래 푼돈이나 얻어먹는 직원들은 자기들끼리 쥐어뜯고 싸우며 사장이 던져준 동전을 줍기 위해 바닥을 기어 다니고 있다.

밟혔어요. 아파요. 힘들어요. 떠들어 봤자 하루 종일 심심해 틀어놓은 티브이 소리에 지나지 않는다.

생일이면 바리바리 선물을 챙겨주고 명절이면 상여금을 받기보다 명절 선물을 챙기는 꼴이 우습다.


스승의 날 선생님 감사합니다 하면 선물을 전해 줘야만 하던 때가 있었다.

어떤 선생님은 돌려주던 선물을 어떤 선생님은 누구는 뭘 줬고 누구는 뭘 가져왔다고 교단에서 발표하듯 알려주는 분도 계셨다.

그런 선생님이 요즘 아이들이 버릇없다고 탓하지는 말았으면 하는 생각을 했다.

"엄마 친구들이 전부 선생님께 선물을 줬어. 친구들이 넌 왜 안 가져왔어? 하고 물어봤어."

선생님께 감사 하기에는 참으로 이른 5월 15일이다.

나는 딸아이에게 작년 선생님께 편지를 써보라고 권했다.

일 년 동안 널 가르쳐 주신 선생님과 나눈 추억도 쓰고 감사함도 담아 편지를 써보라고 그리고 찾아가 보라고


서로 몰래몰래 눈치 작전을 하듯 전해준 선물이 의사 방과 책상에 널브러져 있다.

커피는 마시지 않는다며 아침 본인방을 청소하는 나를 보고 마시라고 준 커피 컵에는 쪽지가 끼워져 있었다.

절대 선물 따위 하지 않을 것 같던, 원장에게 잘 보일 생각 없다며 큰소리치던 나이 많은 선임의 글씨다.

파릇파릇 희망을 담아 글씨 한 자 한 자 눌러쓴 정성이 꼬깃꼬깃 꼬롬하기 그지없는 파렴치한 분노로 바뀐다.

다 걷어 간 줄 알았는데 건조대가 놓여 있던 바닥 구석에 처박힌 수건이 보인다.

햇빛에 바짝 말리지 못한 채 구석에 처박혀 먼지가 올올이 끼여버린 채 쿰쿰한 냄새마저 난다.

또 어린 털 팔이 같은 선임이 빨래를 후루룩 걷어 내다 떨어트린 게 분명하다.

뚱뚱한 배와 엉덩이로 뭐든 밀어 버리고 지나가면 뒤처리는 다 내 몫이다.

그 꼬락서니를 떠올리니 짜증이 밀려온다.

햇빛이 눈부신 창가에 잠시 기대어 본다.

자외선에 검버섯이라도 생길까 모자에 선글라스에 얼굴을 칭칭 둘러 감고 산책을 즐기는 중년 여성들이 줄지어 개천 길을 따라 지나간다.

가끔 멈춰 서서 얼굴을 들여다보면 어린 시절 만화에서 보던 울트라맨이 떠오른다.

그렇게 둘러싼 것도 모자라 외출 전 선크림을 덕지덕지 펴 바르고 매번 병원에선 비타민d가 부족하다며 엉덩이 주사를 맞는다.

한없이 게으른 나무늘보가 꺼이꺼이 1시간째 비슷한 자리를 맴돌고 있는 것 같다.

실제로는 기어갔는데 내가 보기에 변화가 없는 걸로 보이는 게 아니라 내가 그렇게 보려고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부지런한 나무늘보.... 아이러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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