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는 사람이 알고 있는 그리고 느끼고 있는
내가 말하고 있는 지금 이 내용을 나는 어디서 들었고 어디서 배워 왔는지 정확히 알지 못한다.
단지 내가 알게 되었고 그래서 나의 지식이 되거나 앎이 되어 버린 상태이다.
딸아이의 질문에 늘 내가 알고 있는 답변을 최대한 딸의 입장에 맞춰 설명해 주려고 노력한다.
딸아이의 자존감이나 지금의 기분상태 등을 고려해 조금 덧붙인 때로는 부분삭제된 내용을 전달하기도 한다.
질문에 대한 정확한 사전적 정의는 어차피 공개된 자료로 대부분 쉽게 접할 수 있다. 그 정의와 내용이 내 머릿속으로 들어와 나 다움이 입혀지고 그냥 내가 알고 있던 사실처럼 되어 버리면 나는 자연스럽게 다른 이야기들을 하면서 새로 인지된 그 정의를 스스럼없이 말할 수 있게 된다.
누군가의 글을 읽고 나서도 처음에는 아 ㅇㅇ의 글을 나는 읽었다.라고 인지하고 문구들을 떠올리기도 하며 그 존재를 인정하고 있지만 시간이 흐르면 그 사실은 그냥 내용의 좋았던 부분이나 기억에 각인된 어떤 부분이 출처보다는 내용으로 남아 내가 어떤 글을 쓰거나 얘기를 할 때 자연스럽게 나오게 된다.
나는 인지하려 하지만 시간의 흐름 속에서 인간의 뇌는 알게 된 사실 기억나는 사실들을 차곡차곡 모아 나를 만들고 사상과 개념을 쌓아가게 된다.
나의 사상과 개념은 어차피 수많은 정의와 수많은 사람들의 사상을 모방하고 학습하며 만들어져 왔다. 앞으로도 얼마나 더 많은 정보와 다른 사람의 저작권적인 글을 공개적으로 때로는 단독으로 혹은 몰래 읽고 인지하게 될 것이다.
이런 사실들을 모두 정렬해 검색해 주는 시스템은 우리가 정보나 다른 사람의 글들을 더 많이 빨리 쉽게 접하게 해 준다.
작곡가들의 노래는 얼마만큼의 마디수를 정해 이 정도의 카피는 표절로 본다라고 되어있지만 글은 문맥상 흐름의 따라 분량으로 얘기하기도 애매하다. 본인이 인지란 상태에서 그 내용을 본인의 방식으로 풀어냈다고 한다면 그 글을 과연 표절이라 할 수 있을지 의문이 생긴다.
발달된 AI 서비스는 이런 문장들에서 비슷한 글들을 발췌해 낸다. 얼마만큼인지에 따라 되고 안되고를 결정지어 준다. 이런 가운데 정의라고 단정 지어지는 사전적인 의미는 계속 같은 문장으로 인식될 수 있다.
하지만 작가가 느끼고 즐긴 또는 감각적으로 인지된 단어를 넘어선 감정의 부분은 개별적이고 특수하다. 유일하게 AI가 할 수 없는 것은 인간의 감상적이고 감정적인 부분들이다.
인간은 어떤 상황과 사물에 대해 감정을 느끼는 생명체이다. 그 고귀한 감정과 감상을 글로 표현해 내는 우수한 능력을 AI가 쫓아오기란 힘들다.
또한 내 감정을 문장 그대로 복사하지 않는 이상 똑같이 표현하기란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인용이라는 부분에 있어서 읽어내는 독자로 하여금 비슷한 효과를 불러일으킬 수는 있다고 본다. 하지만 출처를 밝히고 인용을 한 부분을 우리는 탓할 수 없다.
끊임없이 자료들을 접하고 급변하는 시대에 새로운 정보들을 접해 나가는 과정에서 작가들은 수많은 감정과 교류하며 글을 만들어 간다.
그 글들 속에서 작가의 고유한 감정과 감성을 우리는 복사할 수 없다.
작가가 혼신의 힘을 다해 끌어낸 감정의 매개체인 글이 쉽게 다뤄지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크다.
AI가 걸러 낼 수 없는 문장의 전달력은 작가 고유의 힘이다.
온전히 그림이나 조각처럼 잘 보관되어 전달할 수 있는 물질이 아닌 글이야 말로 인간만이 해낼 수 있는 감정전달 최고의 산물이라 여겨진다.
나라는 사람의 지금 이 감정과 감성을 똑같은 인간에게 전달하기 위해 나는 오늘도 글을 쓰고 남긴다.
온전히 내 것으로 포장되어 보관되어지기보다 널리 알려지고 변화되길 바라기도 한다.
저작권법은 그런 작가의 고유한 감성을 지켜줄 사회적인 통념이다.
내 글이 중요한 만큼 다른 사람의 글도 소중히 다뤄져야 하고 그 글이 정당한 방법으로 사회에 알려지길 바라는 작가들의 바람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