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브를 원망한다.

인생에 핑계가 필요할 때

by 모아

실내 온도가 32도를 찍었다.

모두 에어컨을 틀지 않고는 도저히 견딜 수 없다고 아침부터 한 마디씩 거들뿐

난 언제 끝날지 모르는 생리통으로 아침부터 뒹굴고 있다.

결국 참다 아세트아미노펜을 먹고 말았다.

한여름의 생리통은 차가울 수 없어서 더 괴롭다.

사십몇년째 일 년에 열두 번을 꼬박꼬박 하고 있지만 불치병처럼 적응이 되지 않는 건 어쩔 수 없나 보다.

진통제도 듣지 않는 한낮의 고통을 내가 지금 이 순간 집에 있음을,

침대에서 그나마 뒹굴 수 있음으로 위로하며 핫팩을 찾았다.

머릿속까지 땀이 흐르는 이 날씨에 뜨거운 핫팩을 배에 화상을 입기 직전까지 문질러 줘야 조금 나아진다.

기분 나쁜 이 통증을 어떻게 설명할 길이 없다.

여자들만 알 수 있다는.... 몇 년 동안 잠잠했던 통증은 이사를 하고 두 달째 다시 심해졌다.

이브가 먹지 말라고 한 사과를 먹어서 정말 벌을 받는 것인지

저주 같은 이 고통은 무의미한 시간을 자꾸 일깨워서 더 짜증이 나게 한다.

불필요한 이 상황에 아무것도 대처를 할 수 없다는 사실이 억울할 뿐

한 달에 한번 나는 보지도 못한 이브를 원망한다.



세상은 늘 공평하지 않았다.

아주 어린 그때부터 불공평함을 알아버린 탓일까?

나는 쉬이 사람을 믿지 못한다.

장점이라면 그래서 사기를 당하지 않았다는 것

그리고 세상으로부터 혹독하게 이기는 법을 배웠다는 것

하지만 단점은 사람을 잘 사귀지 못하고

이 나이가 되도록 필요에 의해 사람을 만나고 헤어질 뿐

어떤 친분도 만들지 않는다는 것....

그래서 불필요한 에너지 소비를 하지 않는 게 현명하다고 자부하면서

타인들과 전혀 상관없이 살아갈 수 없기에 딱 그때만

내 혼신의 힘을 다해 사람들을 대한다.

집에 돌아오면 몸이 아니라 정신이 녹초가 되도록.....

그들은 잘 알지 못한다.

그리고 늘 짧은 만남을 아쉬워하며 다른 만남을 만들려고 한다.

나는 손사례를 친다.

사실은 몸서리치게 싫다.

더 이상 내 휴식의 시간까지 그들에게 봉사하는 시간으로 빼앗기고 싶지 않았다.


병원에서 일을 했었다.

간호조무사로....

다들 환자들 때문에 힘들겠다.

다들 아픈 사람들만 있어서 신경이 날카로우니 피곤하겠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만은 않다.

그들은 아프다.

그래서 치료를 해주는 명목 아래 있는 의사와 간호를 하는 사람들에게 함부로 하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의료진들은 늘 침습 행위나 진료 등을 해야만 하고 그들은 의료행위를 잘할 수 있도록 해야만 본인들이 더 편하다는 걸 다 잘 안다.

큰소리치던 아줌마도, 양팔에 문신 가득한 아저씨도 주삿바늘 앞에서는 얌전한 양이된다.

아프지 않게 놔주세요

어떤 여성분은 엉덩이를 주사보다 꼭 더 세게 꼭 더 세게 때려주세요 하고,

양팔 가득 문신을 하고 나를 위협하던 아저씨는 어떻게 해요. 문신 때문에 혈관이 안 보일 것 같아요!

어떻게 하죠! 하며 본인이 더 어찌할 봐를 몰라했다.

종 종 환자분들에게 감사하다는 인사를 듣기도 하고 주사를 안 아프게 놓는다 칭찬도 듣고 친절하다, 사근사근해서 좋다, 가끔이지만 어머님들이 이쁘다고 손도 잡아 주시면서 진심 어린 고마움을 표시해 주시면 직업적으로 보람도 느꼈었다.

내가 뭔가 하고 있다는 자부심도 느끼고...


하지만 그것도 잠시

내가 있던 그 병원 에선 그렇게 지내도록 내버려 두지 않는 세력들의 힘이 훨씬 커서 나는 매일 괴로웠다.

환자분들에게 칭찬을 듣거나 원장님이 잘했다는 칭찬을 할 때면 나는 주변부터 살펴야 했다.

여자들만 있는 곳은 참 무섭다.

왜 인류는 남녀가 함께 살아야 할까?라는 물음의 답과 음과 양이 조화를 이뤄야만 잘 살 수 있다는 말의 뜻을 절실히 알게 되었다.

시기와 질투 갑질과 텃세 뭐하나 인간으로서 갖지 말아야 할 감정의 찌꺼기는 빠지는 게 없었다.

신입으로 들어가 일 년 반 동안 나는 선임들의 정신적인 갈취를 온몸으로 이겨 내야만 했다.

브레이크는 없었다.

사실은 이겨 낸 게 아니라 도망쳐 다니고 피해 다니다 녹초가 되어 포기했다.

간호조무사로 사는 건 사극에나 존재하는 궁에 무수리로 사는 기분이었다.

간호조무사의 역할이 나를 그렇게 만든 게 아니라, 먼저 간호조무사가 된 그녀들의 주인의식이 너무 강해서,

그 억척스러움과 그들의 직업적인 성취감에 감히 도전하려는 듯 보이는 신입은 밟히고 밟혀 인간이길 포기해야 하는 인격 모독의 시간을 보내야 했기 때문이다.

이토록 절망스럽게 밖에 얘기할 수 없는 건 나를 짓밟았다고 생각하는 그들이 나보다 우월하지 않다고 생각해서 더 그렇다.

학력으로 그들을 무시하는 게 아니라 인성의 문제이다.

나보다 못하다는 생각 자체를 하지 않으려고 몇 번을 다시 생각하고 생각하고 출근 전 마음을 다잡고 뭐라도 나보다 나은 점을 찾아보려고 애쓴 시간이 일 년 하고도 6개월이다.


그녀들은 전신 갑옷과 무기들로 채우고 그것도 모자라 다가가지 않아도 공격부터 하는 전사들 같았다.

처음부터 나는 그렇게 까지 하며 일 할 생각은 없었다.

그럴 일도 아니라고 생각했고....

그들이 저렇게 혼신의 힘을 다해 지켜야 하는 일이라면 그렇지 않은 내가 피해 주는 게 맞을 것 같았다.


위아래가 없는 개인병원에선 오래된 그녀들이 스스로 선임아닌 상사 노릇을 자처한다.

나는 아직도 도무지 그렇게 까지 지켜야 하는 게 뭔지 뭘 그렇게 지킬 것이 많은지 모르겠다.


그들과 하는 일에 있어 실력이 비슷해지면 인정해 줄까?

아주 잠깐이지만 인정받고자 노력한 시간이 부끄러워질 무렵 나는 그냥 떠나는 게 맞다고 확신을 했다.


도피하는 자의 어설픈 변명 인지 아니면 푸념 인지....

그 무엇이든 내가 생각했던 사회적으로 뭔가 하고 있음을 느끼고 봉사하며 살고 싶던 꿈은 그렇게 일단락되고 말았다.

한마디로 선임들의 억센 텃세와 갑질에 나가떨어진 거라고 해두자.


그런 그녀들은 하루 종일 사람을 정신적인 거지를 만들어 놓고 퇴근길 저녁 따위를 권했다.

때마다 나는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가자는 건 시중들라는 소리밖에 안되니까...

아니면 인격모독의 사적인 편을 만들려는 계획인 건지.....


20년간 자영업을 하며 간간이

몇 번의 직장과 직업을 바꿔 다녔지만 일하는 동안 그때뿐 직장동료와의 만남을 이어온 적은 없다.

대부분 직장동료와의 관계에서 내가 지쳐 두 손을 들고 나오는 경우가 많았기에 그들은 내가 왜 그만뒀는지 자세히 모를 수도 있다.

아니 그들로 인해 내가 얼마나 힘들었을지를 모르는 것일 수도 있다.

본인들은 늘 백 퍼센트는 아니더라도 맞춰주는 내가 본인들과 잘 맞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는 말이다.

나는 너덜너덜 해져 넌더리가 날 지언정 그들 앞에서는 무조건 네, 네, 그렇죠, 만 하는 날보고 자기랑 잘 맞는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간호조무사 실습 무렵 2차 병원에서 만난 나보다 한 살 어린 간호사가 기억난다.

그동안 만나온 사람들 중에 나보다 상대를 더 배려하고 신경 쓰고 눈치 보던 사람은 이 사람밖에 기억에 없다.

얼마나 정신적으로 힘들지 알기에 많이 도와주고 싶었다.

그러나 그녀 역시 남들이 자신으로 인해 힘들어지는 걸 싫어하고 무던히도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려 노력하다 보니 남의 도움을 받기보다 도와주기를 자처했다.

나 역시 밖에서는 처음으로 배려받는다 느꼈고 많은 도움을 받았으며 고마운 마음을 느꼈다.

배려라는 건 상대로 하여금 아주 황송한 식사를 대접받는 기분이었다.

나 역시 그렇게 살려고 노력했는데 그녀를 보면서 더 반성하고 여러 사람들을 어떻게 대할지 많은 배움을 받았다.

그런 그녀도 병원을 그만뒀다.


그런저런 이유로 난 고교 동창들과 후배 그리고 남편의 고교 동창들 외에는 실질적으로 만나는 사람이 없다.

사적인 만남까지 내가 나서서 그들의 기분을 맞춰주며 헌신하고 싶지 않은 게 그 이유이다.

아니 그럴만한 사람들이 생긴다면 얼마든지 하고 싶다.


나는 무례함이 너무 싫다.

그들의 무리에 들어가지 않고 겉도는 건

못하는 게 아니라 하고 싶지 않은 게 이유다.

그들과 같아지고 싶지 않은 이유


과거에는 무척이나 괴로워했었다.

이런 상황과 내가 이렇게 지치도록 맞춰줄 수밖에 없는 현실에 대해


아직도 해답을 찾지는 못했지만

이젠 아니다 생각되는 일과 사람은 접는 것이 내 정신 건강에 좋은 것 같아 포기하기로 한다.

어차피 내가 바꿀 수 없는 현실은 도피가 아니라 내가 하지 않으면 그만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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