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시스턴트로 사는 건

두 번째 열애 중

by 모아


내 첫 번째 직업은

광고 스튜디오 포토그래퍼의 어시스턴트였다.

광고주가 의뢰한 제품이 도착하면

촬영자는 주변 배경과 촬영 방법을 결정한다.

소품을 배치하고 조명을 조절한다.

기본적인 소품 배치가 이뤄지면 파인더를 들여다보는 포토그래퍼의 지시에 따라 소품의 위치를 옮겨 주어야 한다.

큰 소품들도 있지만 주로 작은 소품이 더 많다.

아주 조금씩 때로는 각도를 맞춰 말도 안 되게 세워야 할 때도 있다.

조용히 하지만 빠르게 그들이 원하는 배치를 시켜야 한다.

그리고 아주 조금씩 조명의 위치를 옮겨 포토그래퍼가 원하는 상태로 만들어 주어야 한다.

반사판을 써야 할지 조명의 스타일은 어떻게 할지 짐작을 해야 빠르게 준비해 줄 수 있다.

포토그래퍼들은 섬세하다.

그래서 대부분 성격도 날카롭다.

큰 소리가 나서도 안되고 집중하는데 방해를 해서도 안된다.

좁은 소품들의 사이에서 조금씩 위치를 옮기는 건 여간 조심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손가락만 까딱 잘못 움직여도 세워둔 물건이 넘어져 주변은 도미노판이 될지 모른다.

포토그래퍼의 기분 상태도 그날 일의 진행을 좌지우지한다.

내가 편하려면 그들의 기분도 맞춰주는 게 편하다.

촬영 전 꼭 믹스커피 한잔을 마셔야 하는 촬영자가 상담과 회의로 일의 진행이 늦어져 커피를 마시지 못한 날은 어떤 수를 써서라도 촬영 전 커피를 마실수 있게 해줘야 한다.

본인의 잔에 우린 녹차물을 꼭 마셔야 하는 포토그래퍼에게는 더운물을 식혀 회의 중이라도 손에 쥐어 줘야만 했다.

시켜서 하는 일은 절대 아니다.

시켰다면 안 했을 일이기도 하다.


회의가 길어 지거나 촬영 상황이 좋지 않으면 가끔 주위를 환기시키고 주변 사람들을 물려주고 달콤한 간식거리를 바로 집어 먹을 수 있게 준비하기도 하고 당장 필요한 소품을 사러 콜택시를 불러 시장으로 가야 했던 경우도 종종 있었다.

내 존재를 알릴 정도로 소리가 크거나 경망스러워도 안되고 있는 듯 없는 듯 그를 위해서만 존재하여야 한다.

일을 잘하기 위해선 촬영자에 대해서 아주 잘 알아야만 한다.


(아쉽게도 이젠 디지털화가 보편화되고 그래픽 작업이 가능한 부분이 많아져 어시스턴트의 필요성과 현장 변화도 많으리라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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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두 번째 직업은

베이비 스튜디오 포토그래퍼의 어시스턴트였다.

참고로 20년 가까이 베이비 스튜디오 어시스턴트로 일을 했다...

베이비 스튜디오는 아기 사진을 촬영하는 곳이다.

손님이 오면 안내를 하고 금액별 촬영 테마를 결정하고

포토그래퍼와 촬영의 순서 및 배경과 소품을 결정한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 아기의 성향과 반응을 파악해 촬영의 방향을 포토그래퍼에게 제시해줘야 한다.

광고 스튜디오와는 달리 아기를 잘 아는 어시스턴트가 필요하며 포토그래퍼 보다 어시스턴트가 촬영을 주도해야 할 일이 많다.

모델인 아기가 쉬어야 할지 엄마가 달래야 할지 더 진행해도 될지 아니면 연기가 필요한지 끊임없이 일어나는 에피소드에 적절한 대처를 하지 않으면 소비자인 엄마의 클레임으로 이어지거나 아기의 촬영을 한 컷도 할 수 없게 되거나 아기가 다치거나 금전적인 손해가 생길 수 있다.

아기들은 촬영 중 쉬는 시간에도 끊임없이 관심을 가지고 돌봐야 한다.

첫아기를 데려온 부모들은 아기를 잘 다루지 못하므로 옷도 갈아 입혀 줘야 하고 낯가림이 심한 돌 무렵 아기들을 위해서는 긴 시간이 걸려 친해진 후 촬영을 해야 하기도 한다.

촬영이 시작되어도 어시스턴트의 일이 끝나지 않는다.

아기가 세트장에 적응해 웃을 수 있도록 정말 그야말로 혼신의 힘을 다해 아기와 교감하며 노래도 불러주고 장난감과 내가 가진 모든 장기를 동원해 아기의 여러 가지 표정을 끌어내야 한다.

아기가 웃어야 끝나는 촬영...

그 순간에도 나는 포토그래퍼의 상태를 살피고 아기도 돌보아야 했다.

그렇게 2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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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나의 직업은

이비인후과 간호조무사였다.

진료실에서 의사의 보조로써 필요한 기구들을 전달하고

치과만큼 도구가 많고 진료 중 검사와 시술이 함께 이뤄져야 하는 경우가 많은 과이다 보니 그때그때 적절한 검사 준비와 시술에 필요한 대처가 필요하다.

사람의 상처나 아픈 곳을 직접 대하고 자칫 실수가 사람들의 고통과 같이 할 수 있어 조심성과 빠른 준비가 필요하다.

처음엔 당연히 실수도 많고 몰라서 전달이 늦어지는 일도 잦았다.

빨리 적응을 해야만 해서 이것저것 연습도 참 많이 했다

하지만 문제는 사소한 실수나 늦어지는 게 아니었다.

의사의 상태와 원하는 방향 환자와 대화 중 그가 이끌고자 하는 목표 그게 파악되지 않으면 미리 준비하는 것도 힘들어진다는 거다.

결론은 그를 잘 알아야만 했다.

좋아하지 않아도 좋아하고 파악하려 말고 느껴야 했다

그 사람의 감정선과 일에 대한 패턴을....

머리로만 익히려고 하면 그와 부딪히게 된다.

기구를 전달해주는 손도 순서도 그가 되어 느끼지 않으면 도저히 머리로는 암기가 되는 부분이 아니었다.

그래서 오래된 직원들도 의사가 이랬다 저랬다 해서 맞출 수가 없다고 투덜 되곤 했었다.

그는 자꾸 나에게 더 많이 더 빨리 배우기를 재촉 해데고

그래서 나는 오래된 직원들을 제치고 진료에서 시술 그리고 간단한 비염 수술에서 비중격 수술까지 6개월이 지날 무렵 모든 걸 다 하게 되었다.

가끔 기대하지 못한 센스가 발휘되면 한 번씩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가 되면... 그가 되어 수술을 한다고 생각하면 그의 손에 필요한 그다음 도구들이 저절로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다 다른 주변 사람들과의 마찰로 어쩔 수 없이 일은 그만두었지만.....

새로운 장르의 어시스턴트는 재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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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놀라운 사실은 첫 번째 어시스턴트를 하던 시절 포토그래퍼와 사랑에 빠졌고 그래서 그 포터그래퍼와 결혼을 했으며

두 번째 어시스턴트의 주체는 남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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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난 왜 어시스턴트가 재밌는 걸까?

이런 주체적이지 못한 사람 같으니라고...

하면서도 아니야 이건 아무나 잘할 수 있는 일이 아니야 하는 걸 너무 잘 알고 있었다.

천직이라는 말을 이럴 때 하는 건가?

상대를 보조하고 상대가 더 훌륭하게 완벽하게 어떤 일을 해낼 수 있도록 그 사람의 손과 발이 되어 아니 그 사람의 감정선까지 넘나들며 보조를 하는 일은 나에겐 때로는 설렘을 가져다 주기도 했다.

그들이 자신도 모르는 엄청난 배려와 도움을 받으며 깜짝 놀라는 표정을 건넬 때 나는 괜스레 으쓱 해진곤 했었다.


내 인생의 절반을 어시스턴트로 보냈는데

도대체 내 인생의 어시스턴트는 누가 해야 하는 걸까?

갑자기 몹시 궁금해졌다.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일들은 일단락되고 말았지만

나는 아직도 어시스턴트를 갈망한다.

그래서 이젠

나의 어시스턴트가 되어 나를 더 살펴볼까 한다

나를 느끼고 나를 사랑하고 나에 대해 내 감정 깊숙한 곳까지 찬찬히 들여다보며 나를 읽고 나를 노래하고...


그렇게 시작한 나와의 연애는 요즘 매일을 떨리는 20대로 만들어 줬다.

첫사랑을 지나 두 번째 열애를 시작한 요즘!

나는 행복한 꿈을 꾼다.

어색해진 내 이름만큼 나와 더 가까워지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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