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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비 May 27. 2023

2019년, 감정일기

: 첫번째 이야기.



 대학 졸업 후엔 취업을 해야 할 시기가 온다. 주변 동기들을 보니 각자 자신이 원하는 회사에 서류를 넣고 면접을 보며 그렇게 자신의 삶을 책임지는 어른이 되어간다. 하지만 정작 나는 준비가 완벽히 되지 않았다며 사회로 뛰어들기엔 부족한 사람이라고 지뢰 겁먹으며 취업 정보가 뜰 때마다 할 수만 있다면 회피하곤 했다. 불확실한 미래 때문인지 자기혐오 때문인지 한껏 예민해지고 쉽게 우울해진다. 미래가 희망차지 않을 땐, 두려움으로 가득 찰 땐, 불안함에 벌벌 떨 땐 어떤 생각을 해야 사라질까. 내 안에 또 약함이 찾아와 나를 휘감겨 풀지 못하게 괴롭힌다. 무섭다. 두렵다. 두렵다.


백수생활을 한지 꽤 오랜 시간이 흘렀다. 시간이 지날수록 쪼여오는 부모님의 재촉은 나를 더 불안하게 만들었다. 그렇다고 아무 말씀 하지 않는 날에는 불안해 하지 않는 건 아니었다. 나의 하루 시작은 오후에 슬금슬금 일어나 엄마가 차려준 밥을 느긋이 먹고 온종일 휴대폰을 만진다. 끝. 그게 끝이다. 여느 때와 같이 휴대폰을 보고 있던 중 오랜만에 친구가 나에게 문자를 보내왔다. “잘 지내? 요새 뭐하고 지내?” 평범하지만 형식적인 안부의 말. 그 문자를 보자마자 숨을 턱하고 막힌 듯한 답답함이 들었다. “뭐 하고 지내”라고 물으면 어떤 말을 해야 할지 참 난감하다. 잘 지낸다고 말하기에 양심이 찔려서. 또 그렇다고 그냥 지낸다 하기 엔 내가 너무 못나 보이는 거 같아서. 무엇을 하고 있지가 않아서 아무 것도 안한다고 말하기에는 곤란한 노릇이었다. 휴대폰을 잠시 두고 전신 거울 앞으로 다가섰다. 친구의 말대로 잘 지내고 있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 아주 가관이다. 오후가 훌쩍 지난 시간이지만 씻지 않아 기름진 머리에 눈곱이 잔뜩 껴 있다는 것. "아, 이게 진짜 내 모습이지." 남들 일할 시간에 나는 뭐 하고 있지.. 갑자기 자괴감이 들었다. 지금 이 모습을 꽁꽁 감추어 잘 살고 있다고 이야기할까? 아니다. 그러기에 양심에 가책이 들잖아. 생각의 꼬리를 물다 결국 그 친구에게는 잘 지내고 있다며 안부에 대한 답장만 하고 되묻지 않고 휴대폰 전원을 껐다. 차라리 문자 보내지 말지. 어떻게 지내든 궁금해하지 말지. 그러면 조금은 덜 우울할 텐데. 나는 오늘 우울의 탓을 친구에게로 돌리려다 다시금 원인은 나에게 있다고 책망하며 익숙하듯 다시금 폰 전원을 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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