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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피아 Jan 31. 2023

"외항사 승무원, 솔직히 천직이긴했어요."

"다시 한 번 말하지만, 국내 항공사 아니고 외국 항공사말이에요."

 승무원을 그만둔지 벌써 3년이나 지났다, 그 뒤로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면 나는 타인에 의해서 소개에 '전에 승무원 했던 사람'이라는 말이 더해지거나, 또는 어쩌다보니 자연스럽게 말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놓여 말하게 되기 마련이다. 가령, 전에 무슨 일을 했는지 물어본다든지, 해외에서 무슨일은 했냐는 질문이라든지 말이다. 그럴때면 대개 사람들의 반응은 굉장히 긍정적인 느낌의 놀라움이다. 굳이 한 문장으로 퉁쳐버리자면, '우와, 승무원이요?!' 랄까ㅡ 그러면 나는 재빠르게 '네네, 외국항공사요!'라고 덧붙인다. 


승무원을 하고 있을 때도 그랬다. 아마 나 뿐만 아니라 많은 외항사 승무원들이 그럴 것 같지만, 보통 한국 사람들에게 승무원이라고하면, 대한항공이나 아시아나, 제주항공 등 국내 항공사를 떠올리기 쉽다보니, 외항사라고 다시 한 번 강조해줘야한다. 우선 베이스(해당 항공사의 승무원이 거점으로 삼고 거주하는 지역) 자체가 국내가 아니라 해외이기 때문에, 이 자체만 봐도 국내 항공사와 외항사는 매우 다른 환경에서 시작된다. (서울이 베이스인 KLM도 있긴하지만) 


하지만 국내 항공사와 외국 항공사는 그보다 더 많은 부분에서 다르고, 개인적으로 완전히 다른 업무 환경이라고 느껴질 정도다. 어떤 것이 더 좋은 곳이냐가 아니라 사람마다 승무원을 하면서 만족을 느끼는 포인트가 다르고, 직업에서 추구하는 면도, 성격도 다 다르기 때문에 어떤 항공사가 더 맞는가?의 관점으로 이해하면 될 것 같다.


나는 항상 말한다, 승무원 정말 너무 잘 맞았다고! 새벽 3시에 일어나야 하는 비행일 때, 침대에서 너무 졸려서 더 자고싶다고 생각하는 그런 원초적인 감정 외에, 일이 싫어서 회사가 싫어서, 비행 가기 싫다고 생각해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대학내일 같은 계정에서 올리는 직장인 밈을 절대 공감할 수 없던 그런 날들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잘 맞았던건, '외국항공사'였기 때문이라고 말이다. (물론 국내항공사에 대한 경험이 없기 때문에, 저 말이 국내 항공사는 맞지 않는다고 못 박는 것은 아니다. 그냥 국내항공사는, 다녀본 적은 없지만 주위에서 듣는 이야기가 많으니 말이다!)


외국항공사 승무원, 내가 왜 그렇게 사랑했냐면 말이다.



1. 자유로운 분위기, 수평적인 관계

    
 10년째 일하고 있는 필리핀 시니어와 21년째 일하고 있는 사무장을 필두로 랜딩파티를 계획하고 아무런 불편함없이 웃고 떠들고 마시고 놀 수 있는 근무환경이랄까? 물론 매 비행을 그렇게 좋은 시니어와 사무장과 함께했던 건 아니지만 적어도 흔히 말하는 똥군기라는거 하나 없다. 비행 초반에 한 번은 문득 내가 점씻에 앉아서 팔짱끼고 다리꼬고 사무장은 서있는 상태로 박수치며 깔깔 웃고 있을 때였다. 내가 지금 수다 떨고 있는 상대가 사무장이라는 생각도 안 들정도였다랄까? 물론 당연히 사무장은 사무장이고 기장은 기장이다, 이 모든 수평적인 관계는 기본적인 리스펙 하에 이뤄지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 직급에, 경험, 나이 등에 대한 리스펙이지, 그 이상의 시니어리티는 존재하지않는다. 두 달전 마닐라 비행때는 16년 일한 퍼스트클래스 크루가 내 파트너였다. 시니어가 뒷갤리 내가 뒷캐빈담당이라 왼쪽 크루들 잘 때 3시간동안 같이 앉아있었는데, 대부분의 대화가 연애이야기 혹은 그냥 인생이야기였다. 또 나는 문득 거의 마흔이 넘은, 16년 일한 시니어와 이런 이야기를 시시콜콜하게 할 수 있는 그 순간에 외항사의 매력에 빠지고만다. 


사실 더 솔직하게 이야기하자면, 외국항공사 중에서도 아시아쪽은 중동이나 유럽쪽보다는 더 시니어리티가 있는걸로 알고 있다. 외국항공사지만 그 안에 한국인 사이에서 선/후배 문화가 생기고, 대부분은 적당한 수준이겠지만 아닌 경우들도 있다. 아, 참고로 내가 다녔던 곳은 중동 외국항공사.


2. 매일 다른 승객, 기장, 사무장, 크루


 모든 외항사가 그런 것은 아닐 수 있지만, 우선 중동쪽 외항사는 내가 알기로 모두 비행스케쥴이 개인별로 다 다르게 나온다. 일명 팀비행이라는 것 자체가 없다. 그래서 매 비행마다 함께하는 사무장과 크루가 다르다. 나는 이게 참 좋았다. 비행스케쥴이 뜰 때마다 이 비행은 누구랑 가나 기대하게 되느 것도 재밌고, 내 성격에도 잘 맞는다. 낯을 잘 가리지 않고 사람 사귀는 것을 좋아해서도 있지만, 인간관계에 있어서 소심하고 눈치보는 편이기 때문에  차라리 매 비행 다른 사람들과 비행하는 것이 마음 편하고 좋다. 당연히 매 비행 모든 크루랑 친해질 수 없고 그럴 필요도 없기에 그냥 모두와 적당히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면서 잘 맞는 크루를 만났을 때 친해지고 다음 비행을 기약하는 것도, 그렇게 다음 비행에서 만났을 때 반가워하는 일도 좋았다. 물론 너무 좋은 크루들을 만났을 때는 이 멤버 그대로 다른 비행을 또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그 비행이 끝나는게 참 아쉽기도 하지만 차라리 그렇게 아쉬운게 낫지, 같이 일하지 싫은 사람을 어쩔 수 없이 매 비행마다 봐야하는 건 정말 상상하고 싶지 않다. 어찌보면 내 성격의 장점을 살리고 단점을 커버하기 참 좋은 환경인 것 같기도 했다. 이 모든건 사무장이나 승객도 마찬가지다. 나의 상사와 내가 응대해야하는 고객이 매일 달라진다는 것은, 나는 장점이라고 생각했다. 좋은 사무장과 승객을 그 비행에서만 만나는 것이 아쉽기도 했지만, 진상 승객, 빡센 사무장, 그 비행만 끝나면 다시 볼 일 없다고 생각해서 스트레스를 덜 받았다. 



3. 매일 다른 출근 시간 (+ 지옥철 경험할 일 없음), 매일 다른 Destination, Duty


 누군가에겐 사실 2번도 3번도 오히려 단점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근데 내게는 장점이라는 것! 매일 다른 시간에 출근하고 퇴근하고, 매일 다른 곳으로 비행을 가고, 매일 다른 포지션으로 업무를 해서 그런지 업무가 크게 질리지 않았다. 어떤 듀티를 어디서 누구와 일하게 될지 모른다는 두근거림이 좋았다. 그리고 숙소까지 비행 시간에 맞춰 오는 버스를 기다렸다가 타고 가면 되는 것도 좋았다! 물론 나 한 명을 위해서만 브리핑에서 버스를 보내진 않으므로, 다른 크루를 기다리느라 로비에서 계속 기다려야할 때도 있었지만, 그래도 지옥철보단 낫잖아...



4. 물론 팀워크! 그러나 너 듀티는 너 듀티, 내 듀티는 내 듀티


 비행 전 브리핑에서 이런 말을 하는 사무장들이 종종있다. ‘We go as a one team and come back as a one team’ 100번 옳은 말. 그러나 팀워크가 있는 가운데 공존하는 것이 바로 개인듀티(?)다. 포지션을 뽑았으면 이제 이 비행에서의 내 듀티는 정해진 것이다. 사무장들이 하는 저 말의 의미는 아무리 자기 포지션에 따른 듀티가 정해져있어도 막, 그거 내 듀티 아닌데! 너 존인데! 너 승객인데! 이런식으로 너무 니 일 내 일 따지고 들지 말라는건데 아마 간혹 그런 크루들이 있어서 하는 말일 것이고 실제론 웬만해선 다 자기 듀티 자기가 알아서 했다. 만약 누군가가 자기 듀티인데 하지 않고 있다면 친절하게 그 듀티를 리마인드 시켜주면 된다. 이것도 동료들과 영어로 커뮤니케이션을 하기 때문에, 그리고 나이와 연차는 크게 중요하지 않기 때문에, 편하게 'Could you?~'로 가능한 부분인 것도 좋았다. 너 듀티, 내 듀티 하는게 약간 정 없어 보일 수도 있지만 어쩌면 되게 서로에게 편한 근무환경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기본적으로 각자 포지션에 따라, 서비스 메뉴얼에 따라 충실히 업무하면 되는 부분이고, 상황에 따라 +a로 도울 수 있으면 돕는 것이다. 깔끔하고 이에 대한 커뮤니케이션도 한국처럼 어떻게 말해야할지 100번 고민할 필요 없어서 좋았다.



5. We don't put passenger's luggage in overhead bins, we ASSIST.


 최근에 인스타에서 돌아다니든 짤이었는데, 외국항공사를 이용하는 한국인 아주머니께서 아이가 아프다고 어떻게 좀 해보라고 승무원한테 계속 얘기했다고한다. 승무원이 아기가 많이 아프다고요? 어떻게 해드릴까요? 하는데 계속 아기가 아프다고 어떻게 좀 해보라고 승무원은 이해를 못하고, 그러다 사무장, 결국 기장이 와서 아이가 그렇게 아프면 태울 수 없으니 내리라고 했다가 그제서야 상황판단하고 괜찮다고하다가 각서까지 쓰고 탔다는 이야기였다. 비행 초반에 내가 적잖이 충격을 받았던 것 중 하나가 비행기가 터치다운하고 아직 움직이는 상태일 때 짐을 챙기려고 일어나는 승객들에게 소리치는 크루들의 모습이었다. 


 "Sit down!!!!!!!!!" 사실 당연히 이미 비행기가 움직이는 상태이기에 승객의 안전을 위해서 하는 일인데 그때가 바로 한국에서 승무원이 이렇게 같은 상황에서 소리쳤다가 많은 사람들앞에서 승무원이 자기한테 소리질러서 모욕적이었다며 고소했던 이야기를 기사로 접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라, 헐 이렇게 소리질러도 되나 싶었었다. 브리핑때였다. 사무장이 승객 케어에 대해서 리마인드 시키던 중 한 크루가 승객들 짐을 오버헤드빈에 넣어주는 것이 하나의 승객케어라고 말했더니, 아니 우리는 넣어주지 않는다고 어시스트만 할 뿐이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혹은 우리는 티커피를 주기위해 있는 존재가 아니라 승객의 안전을 위해 있는 존재다, 라든지 절대 그 어떤 승객도 크루를 위협할 수 없다라든지, 무슨일이 생기든 내가 뒤에서 다 back up해줄 것이다(사무장이) 라든지 이런 식의 말을 들은 적이 많다. 그리고 실제로 크루나 시니어들 마음가짐이 그러하다. 


 절대 이런 마인드가 서비스를 간과한다는 것이 아니다! 다만 내 태도가 잘못되었거나 내가 인정할만한 잘못 혹은 실수를 했거나 내 듀티를 제대로 하지 않았거나 그런게 아닌 상태에서 일어나는 승객의 컴플레인에 대해서는 무조건 사무장은 크루편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컴플레인은 크루 잘못이 아닐 때 발생한다. 크루의 지시를 따르지 않는 승객은 오히려 우리가 승객을 리포트하려고 한다. 이 점도 매우 충격적이었다. 그렇게 내가 승객에서 사과를 받은 적도 몇 번 있었다. 


 




내가 생각하는 외국 항공사의 장점은, 다음 편에서 더 이어써볼 예정이다. 기억은 미화된다고 좋은 기억이 더 강렬한 것도 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한 쪽으로 기운 이야기를 전달하지 않을 수 있도록 외국항공사의 힘든 점도 꼭 올리겠습니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정말 외항사 승무원은 매력적인 직업이라는 것이다. 꿈 같이 지나간 날들, 추억해도 추억해도 끝이 없는 승무원 시절, 그 때의 나, 지금은 K직딩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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