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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피아 Jun 18. 2023

외국 항공사 승무원이 좋은 이유, 두 번째 이야기

5성급 호텔 혼자 쓰며 용돈 받는 삶, 퇴근 후 아무도 찾지 않는 삶

2018년 8월 24일


 9월 로스터가 나오기까지의 남은 며칠은 이렇게 시간이 안 가는 것 같은데, 벌써 8월 말이다. 그것도 2018년. 이 곳에 온 지 벌써 1년하고 4개월이 지났다. 글은 작년 여름에도, 아마 재작년에도 그리고 올 여름에도 계속 써야지, 써야지 하고 있는데 안 쓰고 있다. 글쓰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고 나를 이야기하고 글 쓰는 것을 좋아한다고 말하지만, 글을 쓴다고 하지는 않는다. 게으름을 이길정도가 정말 좋아하는 정도라고 하던데 나는 대체 얼마나 게으른걸까. 매일 머릿속으론 수없이 글을 쓰는데 자판위에 손가락을 얹기까지가 이렇게 오래 걸린다.


 어제 아침 첸나이에서 돌아왔다. 첸나이 비행은 안 그래도 내가 좋아하는 비행인데 이번엔 사무장부터 기장, 부기장, 크루가 모두 좋았던 비행이었다. 필리핀1, 이란1, 쿠웨이트1, 튀니지1, 코소보1, 우즈베키스탄1, 태국1, 방글라데시1, 이집트1, 그리고 한국인 나, 첸나이 가는 길에 필리핀 크루랑 먼저 듀티프리 얘기를 하다가 그러면 거기 크루라운지 있으니까 다른 크루들도 물어봐서 다 같이 마시자고 자연스럽게 얘기가 나왔다. 사실 사무장도 모른 첸나이 호텔 크루라운지의 존재, 나만 알고있었다나? 헤헤 그렇게 우리는 랜딩파티를 계획하기 시작했고 필핀크루랑 둘이서 이미그레이션 제일 먼저 통과해서 듀티프리로 달려갔다. 새벽 3시쯤? 도착해서 짐풀고 30분뒤에 만나기로! 크루 세명은 술을 안 마셔서 빠지고 중간에 부기장도 같이 와서 놀고 웃고 떠들고 그렇게 6시 30분 조식시간이 될 때까지 마시다가 조식먹고 자러갔다. 좋은 사무장과 크루와 함께하니 돌아올 때도 당연히 비행은 너무 편하고 좋았다.


중동의 생활이 어떻냐는 질문은 아직까지도 많이 받는다. 그럴때면 나는 내 직업을 사랑해, 이런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크루로 일하는건 정말 나랑 잘 맞아, 그런데 이 중동에서 사는건 좀 힘들긴하지 라는 식으로 보통 대답한다. 그 이 직업을 제일 좋아하는 부분이 바로 어제 첸나이비행같이 좋은 비행에서 느끼는 부분들이다, 무슨 말이냐고?




외국항공사가 좋은 이유, 그 두번째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6. 공짜 여행 + 호텔 + 용돈

 승무원의 가장 큰 매력이자 동기부여이지 않을까? 이번주는 에펠탑보며 와인, 며칠 뒤엔 마닐라에서 소맥ㅡ, 다음 런던 비행이 뜨면 ASDA에 가서 장을 실컷 봐야겠다, 뭐 이런 라이프다. 한국이 그립고 외로울 때 많지만 확실히 매력적인 직업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일했던 항공사는 비교적 취항노선이 턱없이 부족했지만 그런 와중에 그래도 좋은 점을 찾아보자면, 체류시간이 긴 비행이 많다는 점? 듣기론 타항공사와 비교했을 때 체류비도 잘 준다는 점? 약 파리 24시간 체류비가 22만원 48시간 체류비가 36만원정도였다, 당시 환율로의 기억이이고, 물론 체류비는 도시마다 호텔에 따라 매우 다르다. 체류비는 정말 같은 중동 항공사들 중에서도 후한편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리고 국내 항공사와 비교해서 또 다른 좋은점, 바로 호텔을 처음부터 무조건 혼자 쓴다는 것이다. 많은 국내 항공사들은 처음 몇년동안은(?) 동료와 2인 1실을 사용하는 걸로 알고 있다, 또 한국 회사는 보통 시니어리티가 존재하다보니 룸을 같이 쓰는 선배에게 후배가 많이 맞춘다고 들었다. 우리의 경우에는 혼자 쓰다보니, 밤새 한국에 친구와 통화를 하거나, 한국에서 여행온 가족들을 룸에 재우거나 등 마음껏 누릴 수 있었다. 그리고 외국항공사마다 다르긴한데, 우리는 대부분 조식도 모두 포함되어 제공이었다. 이것도 사실, 당연히 다 제공해주는 건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조식 포함이 아닌 항공사들이 많았다.

 그렇다보니 회사에 오래 비행한 시니어들을 보면, 이미 다 가본 곳이고 나가면 다 지출이다보니, 조식으로 아침 챙기고, 점심 저녁도 대충 싸온 음식으로 먹거나 룸서비스도 먹으면서, 다운타운으로 나가지 않고 체류비를 그대로 세이브하여 모으는 경우들이 있었다.
         

7. 영어를 쓰며 일한다는 점

 영어를 쓰면서 일해서 좋은 점은 아 이걸 뭐라고 표현해야 좋을까, 크게 두 가지면이 있다. 한 가지는, 외국인 남자친구랑 싸우면 영어로 싸우기 때문에 답답할 순 있어도 어쩌면 그래서 덜 상처받을 것 같은 그런거? 음 한국어로는 그 억양에 따라 한 마디로도 기분 상하거나 오해하거나 그럴 수 있는데 영어로는 그 표현이 상대적으로 제한적이고 대~부분의 크루나 승객이 다 네이티브가 아니기에 더욱, The way of speaking 측면에서 스트레스 받을 일이 덜하다. 똑같은 짜증이나 컴플레인도, 영어로 들으면 한 번 완충효과가 있는데, 한국어로 들으면 바로 직격타 맞는 느낌이다. 예를 들어, 한 번 한국인 커플 승객이 있었고 그들이 요구한 내용이 다 떨어져서 우리가 제공해줄 수 없는 상황이었는데, 남자승객이 왜 어렵냐고 물어보셔서 설명을 드렸더니 옆에 있는 여자 승객이 남자 승객보고 '하ㅡㅡ진짜 왜 안 된대ㅡㅡ?' 라고 한 적이 있다. 이게 같은 상황이라면, 외국인 승객이, 'ugh, why is that?' 했다치면 뭔가 느껴지는 짜증이 다르다.

 또 다른 한 가지는 너무 당연하게도 영어를 계속 쓸 수 있어서 좋은 것이다. 크루끼리 서로 네이티브가 아니고 대화 주제도 대부분 비슷해서 남들이 생각하는 것 만큼 승무원으로 일하면서 영어가 엄청나게 늘지는 않지만, 적어도 계속 쓰면서 유지는 할 수 있다!


8. 그냥 나랑 잘 맞는다...?

 진짜 식상하지만 모든 서비스업 취업을 준비하는 사람들의 준비된 답변일 수 있지만, 나는 내가 누군가를 웃게하고 만족시키고 하는 그런 일이 좋다. 내가 상대방을 웃게하고 만족시키는 무언가를 했을 때 내 서비스에 고맙다라고 좋은 서비스였다고 말해주는 승객을 만날 때, 보딩때 웃으면서 인사하며 들어왔던 승객이 나갈 때도 웃으면서 나갈 때, 그 따뜻함이 좋다. 내가 조금이라도 한 순간이라도 그 사람이 기분 좋아질 수 있는 이유가 될 수 있는게 좋다랄까, 크루들이랑 일하는 것도 오늘 처음 본 사이지만 내일부터는 오다가다 우연히 마주치거나 다른 비행을 같이 하게 되지 않는 이상 한 동안 못 볼 사이지만 이 비행만큼은 즐겁게 함께하는 것도 기분 좋고 그렇게 서로에게 기억에 남는 크루가 되었을 때 또 너무 좋다. 지난 1년간 비행 고작 딱 한 번 같이 해봤는데도 그때 너무 좋았어서계속 기억에 남는 크루들이 많다.  우연히 브리핑에서 마주칠때면 꺄아아아악! 그게 전부지만 그걸로 충분히 기분이 좋다. 물론! 서비스업답게(?) 기분 안 좋아도 웃어야하고 등 그런 점들은 힘든 부분이지만 (단점할 때 써야겠다!) 대체적으론 확실히 나는 서비스업이 내 성격이랑 잘 맞는구나라는 생각을 한다. 사람 때문에 스트레스 받기도 하지만 사람과 어울리면서 받는 감동이 크기에!

     

9. 체크아웃하는 순간 모든 업무는 끝!

 직업마다 다르겠지만 퇴근하면 그대로 정말 퇴 근! 이라는 점! 뭐 퇴근했는데도 따로 고객이든 상사든 거래처든 상대할 일도 없고 서류작업 회의준비 등 노트북 앞에서 씨름할 일도 없고 회식이 있기를 하나 어디 회사에서 막 전화와서 뭐 부탁을 하길 하나 이런게 정말 1도 없다. 단적으로 얘기해서, 외항사 승무원은 명함이 없다. 사내 메신저도 없다. 퇴근하면 그대로 업무는 끝이다. 미리 걱정할 일도, 지나간 일에 이불킥할 일도 거의 없다. 왜냐고? 비행이 무사히 안전하게 마무리 되었으면, 그걸로 끝이다. 안전하게 잘 다녀온 비행이다.


10. 이국적인 문화, 새로운 친구들, 다양한 경험

 어쩌면 승무원의 장점이기도하지만, 그래도 국내 항공사보다도 더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는 곳이 바로 외국항공사 인 것 같다. 외국항공사도 물론 인천과 특정 취항지만 운항하는 경우들도 있지만, 중동 항공사처럼 중동을 베이스를 두고 다른 나라로 비행을 다니는 경우에는 아무래도 국내 항공사 승무원들이 경험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다양한 부분들을 겪을 수 있는 것 같다. 첫 번째로 사는 곳이 중동이다. 이미 말 다 했다. 하루에 5번 기도가 울려퍼지고 라마단 기간이면 아랍 동료들은 금식을 하고, 승객들도 금식을 한다. 그래서 라마단 기간이면 진짜 비행이 꿀아니면 헬이라는 사실, 해가 떠 있는 동안 금식을 하다보니 비행의 테잌오프나 랜딩이 해가 지고 뜨는 시간과 맞물리게 되면, 하루종일 금식을 하다가 이제 막 풀린 승객들이 엄청난 허기에 달려들어 엄청 힘들기도 했다가, 또 아무도 마시지도 먹지도 않는 비행을 하게 되면 편히 다녀오기도 했다. 보통 한국 사람들이 라마단을 경험하기도 어려운데, 승무원으로 라마단을 경험하는 일도 결코 흔치 않은 경험이다. 사는 곳도 문화적으로 너무 달라서 흥미로운 부분이 많고, 또 아랍 친구들과 비행하다보면 진짜 문화가 이렇게 다르구나 배우는게 많다. 내가 중동의 삶에서 가장 크게 배운 자세가 있다면, '다름을 인정하는 것'이다. 원래 성격도 '그럴 수도 있지~'하는 편이긴한데, 중동을 다녀온 이후로는 정말 '나랑 다른가보지~ 상대방은 그렇게 생각할 수 있지~'하는 생각이 강해졌다.


 벌써 항공사를 떠난지도 꽤 되었지만, 다시 생각해도 그 때는 내 인생에서 가장 다이나믹했던 때가 아닐까 싶다. 중동은 정말 가본 사람들만 알 수 있고, 외국 항공사는 해 본 사람들만 공감할 수 있을 것 같다. 어쩌다 우연히 국내 항공사 승무원 하시는 분과 대화 나누게 되면 서로가 서로의 얘기를 듣고 놀랄지경이니 말이다. 뭐든 완벽한 곳은 없지만, 외국항공사 승무원은 정말 매력적인 직업이라는 것, 그 것 하나만큼은!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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