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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름 Jan 10. 2024

치료야말로 우리와 그들을 위한 '처벌'이다

하루한권독후감 20240108 <나의 무섭고 애처로운 환자들>


[20240108] 차승민, <나의 무섭고 애처로운 환자들>, 아몬드, 2021.

※ 전자책 독서로 인해 인용 쪽수 표시 없음


지난 2018년 서울 강서구의 한 PC방에서 아르바이트생을 살인한 김성수는 우울증 진단서를 제출하며 심신미약을 주장했다. 이에 반대하는 청와대 국민청원이 등장했고 해당 청원은 청와대 국민청원 최초로 100만 명이 넘는 국민이 서명했다. 이 사건의 여파로 국회는 심신장애로 인하여 책임 능력이 미약한 자의 행위에 대해 '형을 감경한다'는 형법 제10조 2항의 문구를 '형을 감경할 수 있다'로 문구로 개정하며 심신미약 피의자의 의무감형이 폐지됐다.     


이처럼 심신미약 범법자에 대한 우리 사회의 시선은 두말할 것 없이 차갑다. 심신미약에 따른 감형이나 무죄 자체가 존재하는 이유를 모르겠다는 목소리 또한 적지 않다. 특히 최근 정신질환자의 중범죄가 늘어남에 따라 이들에 대해 혈세를 써가며 치료하기보다 처벌을 중시하는 의견이 힘을 얻고 있다.      


하지만 정신질환을 앓는 범법자들을 치료하지 않은 채 감옥에 가두는 것을 과연 처벌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국립법무병원에서 일하는 정신과 의사 차승민은 자신의 책 <나의 무섭고 애처로운 환자들>에서 자신의 환자들-동시에 가해자이자 범법자이기도 한-이 죗값을 치러야 한다고 강조한다. 국립법무병원은 정부에서 운영하는 정신병원으로 범죄를 저지른 후 치료감호형을 선고받은 환자이자 범죄자들이 치료를 받는 곳이다.    

  

저자는 정신질환의 증상으로 인해 범죄를 저지른 사람에게는 치료가 이루어진 뒤에야 참회와 반성, 처벌이 가능하다며 죗값을 치르기 위해서는 치료가 우선이라고 말한다. 그들을 처벌하기 위해서라도 치료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병원 내 환자들끼리의 폭행이나 의료진을 향한 폭행은 비일비재하며 주치의를 고소하는 일도 일상다반사인 곳이 국립법무병원이다. 천 명이 넘은 범죄를 저지른 정신질환자들이 입원한 곳이지만 의료진은 턱없이 부족하다. 그럼에도 저자는 이들에 대한 연민을 버리지 않는다. 동시에 범죄자로서 냉정함 역시 잃지 않는다.       


저자는 앞서 언급한 김성수의 정신감정을 맡았다. 저자는 어린 시절부터 가정폭력의 피해자였던 그를 "정신과의사인 나는 그를 맹목적으로 비난할 수는 없었다"면서도 "자신의 상태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고 자신의 범죄에 대해서도 이유를 분명하게 설명했"기에 치료감호가 아닌 형사처벌을 받는 '심신건재'로 진단한다.     

 

이처럼 정신질환자라고 하더라도 치료감호 조치는 세간의 인식과는 달리 무분별하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저자는 소견서 몇 줄을 적어내기 위해 담당 의사는 대상자의 하루 일상을 한 달이나 상세히 관찰한다고 얘기한다. 물론 속이려는 대상자도 있지만 저자는 수백, 수천명의 환자를 지켜본 전문가 앞에서 "하루 24시간씩 한 달 내내 미쳐있는 척 연기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실제로 법원행정처가 발간한 <2017 사법연감>에 따르면 2016년 한해에 1심 판결이 내려진 형사사건의 피고인은 총 268510명인데 이 중 심신장애가 인정된 경우는 0.03%에 그쳤다. 음주에 의한 심신장애 인정이 더욱 엄격해진 요즘에는 인정 비율이 더 낮아졌을 것이다.      


저자는 오히려 환자가 아닌 범법자들은 환자라고 거짓말을 하고 실제 환자들의 경우는 자신이 환자가 아니라고 강변하는 경우가 많다며 "꼭 치료를 받아야 하는 사람은 환자가 아닌 척하고, 교도소로 가서 죗값을 치러야 하는 사람은 환자인 척해서 감형받으려는 것을 보면 정신과 의사로서 난감하기 이를 데 없다"고 토로한다.  

   

책에는 여러 정신병에 따른 사례가 즐비하다. 성충동, 알코올과 마약을 비롯한 약물중독, 사이코패스를 비롯한 성격장애, 조증과 우울증, 치매, 그리고 조현병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환자의 사례가 나온다. 가장 기억 남는 사례는 조증으로 입원한 한 노인의 사례로, 조증만 발발하면 정치집회에 참여해 아무 사람을 폭행하다가 급기야 세월호 유족을 욕하고 뺨을 때려 입원한 노인의 사례였다. 불행 중 다행(?)으로 조증이 발발하면 여기저기 아무데나 부동산 투자를 일삼았는데 그 투자의 수익률이 높아 자식들이 서로 돌보려 했다는 뭐 그런 정말이지 한국적인 사례다.     


또한 치매 환자들에 대한 역시 기억에 남는다. 이들의 경우 대개 망상장애 등 치매로 인한 정실진환과 함께 치매와 노화 자체로 인한 육체질환도 동반되기에 국립법무병원에서의 치료만으로는 완전한 치료가 힘들다. 그럼에도 10년 전에는 한 명도 없었던 국립법무병원의 치매 환자는 현재 스무 명에 이른다고 한다. 저자는 고령화로 인해 치매 노인의 범죄 역시 늘 것이라면서 전국에 고령자 클럽만 20만 개가 있는 등 노인을 위한 제도와 시설을 구비한 일본을 예시로 들며 한국 역시 고령화를 비단 범죄문제뿐만 아니라 전반적으로 사회적인 대비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한편 저자는 2016년 개정된 정신건강복지법을 주목한다. 현행 정신건강복지법은 타 기관에 소속된 의사 2명의 진단 하에만 입원이 가능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저자는 이러한 규정이 "'강제입원에 대한 적합성'에 관한 판단을 의사 개인의 책임으로 떠넘긴다"고 비판한다. 저자는 의사 개인이 아닌 정부와 독립된 사법기관이 결정해야 할 사안이라며 이미 프랑스, 미국, 호주 등 선진국과 UN 및 WHO 등 국제기구 역시 그렇게 권고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인권 침해 여부, 의학적 적절성 등을 제대로 판단하기 위해서는 그러한 독립 기관이 필수라는 얘기다.      


이러한 독립 기관 없이 오로지 가족과 의사에 의해 진행되는 입원 과정은 환자로 하여금 퇴원 후 돌아갈 가족과 입원 내내 함께 할 의사에 대한 불신과 원망으로 이어진다. 또한 입원 자체가 힘들어짐에 따라 환자의 치료 또한 늦어져 환자들이 방치된 채 범죄로 이어져 결국 정신질환 범죄의 증가가 늘어난다. 그렇기에 저자는 "가족과 의사에게 맡겼던 강제입원의 결정권을 국가가 이제는 되찾아 와야 할 때"라며 사법입원제도를 주장한다.      

저자는 맺음말에서 과중한 업무에 책임은 크고 급여는 적은 국립법무병원에서 일하는 이유에 대해 환자와 사회를 위한 사명감이 아닌 "워킹맘으로서 시간관리가 비교적 자유롭다는 점이 버티는 가장 큰 이유"라고 솔직하게 얘기한다. 또한 "그저 최소한의 진료, 가장 기본적인 진료를 위해 서로가 손을 꼭 잡고 버티고 있"는 동료들때문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내가 쓴 책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저 정신질환자들도 나와 같은 인간이구나 하고 잠시 생각해볼 여지를 준다면 그것으로 족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 '잠시 생각해볼 여지'야말로 세상을 바꾸는 계기가 아닐까. 인터넷에는 잠시도 주저하지 않고 누군가를 폄하하고 욕하기로 단정 지은 이들로 가득하다. 실제로 있어난 일인지도 확실하지 않은 커뮤니티의 글들은 온갖 곳에 퍼져 특정 집단을 악마화하고 편견을 갖게 만들고 언론은 이를 자극적인 제목을 붙여가며 클릭 장사에 몰두한다. 여기에는 잠시 흥분을 가라앉고 잠시 생각해볼 여지가 없다. 이렇게 글을 쓰는 나 역시도 의식적으로 그러지 말아야지하고 여기지만 어느새 '저런 쓰레기 같은' 하며 열불 내곤 한다.     


이러한 극단의 사회에서 이 책을 통해 잠시라도 '아 그때 그 정신과의사가 쓴 책에서 그렇게 얘기했지'하며 관련 사안에 대해 아주 약간의 관심만 갖게 된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것 아닐까. 책의 서문에도 나와있지만 정신질환자의 흉기에 찔러 숨진 임세원 교수의 유가족은 끝까지 환자와 동료를 생각한 고인의 뜻에 따라 정신질환자를 향한 낙인과 혐오를 경계하고 그들이 사회적 편견이나 차별 없이 치료를 받게 해달라고 당부했다.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이들이 그렇게 얘기한 까닭은 기실 그것이야말로 자신과 같은 슬픔을 최소화하는 가장 빠른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를 언급하며 "적어도 나만은 이들을 '애처롭게' 생각해주고 싶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죄인이라고, 미친 사람들이라고 손가락질해도 말이다"라고 말한다. 물론 그들과 마주할 일이 드문 일반 독자들이 범죄를 저지르는 이들을 애처롭게 생각하기란 힘든 일이다. 하지만 적어도 이 책을 읽고 난 후에는 그들의 치료야말로 단순히 감정에 기댄 연민이 아닌 현장에서 일하는 전문가들의 의견으로서 우리 사회가 집중해야 할 일임에는 충분히 동의할 수 있을 테다. 


기실 무엇보다 많은 이들이 이 문제와 관련해 간과하는 사실은 근대 형법 체계의 궁극적 목표는 범법자를 향한 처벌이 아닌 교화라는 점이다. 비단 정신질환자뿐만 아니라 어떠한 범법자든 간에 그러한 교화가 병행되지 않는 상태에서 이루어지는 처벌은 범법자의 세상에서 사회를 강탈함으로써 범법자를 천부인권이라는 사회계약에서 벗어난 존재로 규정하는 행위에 지나지 않는다.      


정신질환 범법자에 대한 치료감호가 사라지고 교화가 아닌 처벌만을 강조하는 사회는 결국 이들을 사회 자체로부터 배제하는 극단으로까지 치달을 수 있다. 우리는 그러한 극단이 불러일으킬 수 있는 최대한의 잔혹함을 이미 나치 독일로부터 목격했다. 역사는 반복된다지만 그런 역사는 처음이자 마지막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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