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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년필 Nov 11. 2022

덕후의 실패한 개그

당신은 생사진을 아시나요?

 누님이라면 알아들을 줄 알았지.


 나에게는 16년 지기 대학 동기 언니가 있다. 옛날부터 '누님'이라고 불렀다. 포스가 있고 그래서 누님이 아니고 그때는 (개인적으로) 예의를 지나치게 따지던 시기였다. 언니는 다른 대학교를 다니다가 다시 수능을 보고 대학에 들어왔기 때문에 나이가 3살 많았다. 뭔가 언니보다는 '누님'이 극존칭이라는 느낌이 들었다.(그냥 그랬다.) 그래서 누님이었다.  


 대학 재학 시절에는 누님과 손짱(대학 동기)과 셋이 명동으로 '화장품을 산다, 밥을 먹는다'며 많이 쏘다녔다. 노포에서 서서 먹는 순대볶음이 그렇게 맛있었고 즉석떡볶이에, 빕스에, 정말 아르바이트해서 받은 돈의 80%는 식대로 다 나간 것 같다. 서로 진지하게 꿈 이야기도 하고 아무튼 많은 시간을 함께 보냈었다.

 그러나 우리에게 너무 휘둘렸을까. 손짱과는 어느샌가 연락이 끊어졌다. 누님과 둘이서 손짱을 찾아보려고 애썼지만 결국 10년 이상 연락을 하지 못했다. 우리는 셋에서 둘이 되었다. 누님과는 서로 볼 때마다 '누님이 벌써 40대라니! 혹은 네가 벌써 30대 후반이라니! 20대 초반에 만났는데!' 하고 놀라곤 한다.


 삐-클라쓰를 진행하면서 누님에게 '누님! 나 책 출판하는 거 배우고 있어요. 배우고 나서 누님도 알려드릴게요.'하고 이야기했었다. 누님도 책을 쓰는 것에 관심이 많다. 작가가 되겠다는 소중한 꿈을 가지고 있고 몰래 블로그에 비공개로 글을 쓰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번 주에 드디어 글쓰기 작업이 모두 끝나고 부크크에 원고를 보내는 마지막 작업만이 남아있었다. 나는 누님에게 자비출판의 비밀은 부크크에 있었다고 알렸다.


나 : 자비출판의 비밀은 부크크였어요.

누님 : 오 이런 게 있구나.

        만 작가님 책은 언제 발간되나요?

나 : 이게 POD 출판이라고 미리 몇 천부 찍어두는 것이 아니고 주문 들어올 때마다 몇 부씩 인쇄 가능한 거래요.

누님 : 오 괜찮네 재고도 줄이고.

나 : 마무리 작업 중입니다. 삐-클라쓰에서는 2권 준다고 하는데 소장용으로 제가 더 출력해서 보내드리겠습니다. ㅋㅋㅋ 사인본으로다가 ㅋㅋㅋ

누님 : 네 꼭 사인본 부탁합니다 ㅋㅋㅋ

         작가 사인회에 가고 싶은데.

나 : 사인에 생사진까지 넣어서 보내드릴게요 ㅋㅋㅋ

      입술 자국이 있을지도?!

      (흔한 덕후의 개소리)

누님 : 아니 저기요 작가님 ㅋㅋㅋㅋㅋㅋㅋ

         근데 생사진이 뭐야?


 앗! 누님은 생사진을 몰랐다. 아마 이 글을 읽는 대부분의 사람이 생사진이 무엇인지 모르고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생사진은 일본 아이돌 AKB48의 앨범을 사면 그 안에 들어있는 인화된 사진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아이돌의 프린트로 인쇄된 포토카드가 아니고 필름을 인화해서 나온 사진이라고 해서 生사진(나마사진)이라고 부르는데 내가 그런 마이너 한 단어를 너무나 자연스럽게 입 밖으로 뱉어버렸다. 누님도 갓세븐이라는 아이돌을 상당기간 좋아했었기 때문에 아이돌에 관련된 용어는 알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방심했다.

 

 요즘 들어 내가 비속어를 많이 사용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교양 있는 현대 사람들이 두루 쓰는 현대 서울말이 아니라 유튜브나 애니메이션이나 기타 영상매체에서 주워 들어서 쓰는, 표준어가 아닌 말들을 너무나 많이 사용하고 있다. 이런 표현들이 나의 가치를 낮추고 세대 , 성별  기타 등등 차별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오늘의 나는 반성한다. 표준어보다 비속어를 더 많이 사용한 나 자신에 대해. 앞으로 일주일 정도는(짧아!) 표준어를 사용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 볼 예정이다. 교양 있는 현대 만년필이 되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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