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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년필 Nov 17. 2022

술 이야기 1

20살부터 대학 졸업 전까지

 바밤바밤 막걸리를 마셨다. GS25에서 팔고 있는 캔막걸리가 바밤바밤 아니면 칠성사이다 막걸리였는데 칠성사이다 막걸리는 정말로 진짜로 내 취향이 아니더라. 예전에 공부할 때는 월매 막걸리라고 장수막걸리에서 나오는 캔막걸리를 한 캔씩 먹고 잤었다. 공부하는 기간이 길어지면서 우울을 견디는 힘으로 매일 밤 막걸리 한 캔을 선택한 것. 당시 1,000원이었는데 만약 막걸리만 마셨다면 이렇게 살이 찌지는 않았겠지. 순대 혹은 떡볶이, 컵라면을 안주로 사서 먹었다. 여름까지 입었던 반팔티가 겨울에는 맞지 않았다. 그리고 10년이 지난 지금도 그 살을 빼지 못하고 있다. 


 술은 친구한테 배웠다. 엄마는 술은 안주빨이라고 이야기하는 분이다. 아빠는 술을 마시지 않는다. 증조할아버지가 술 때문에 젊은 나이에 요절하셨다고 들었다. 그래서인지 할아버지도 술을 즐기지 않으셨다고 알고 있다. 대신 담배는 피우셨다. 그리고 할아버지는 구십을 앞두고 폐암으로 돌아가셨다. 아빠는 술도 마시지 않고 담배도 피우지 않는다. 생각해보니 부모님과 술자리를 가져본 적이 없는 것 같다. 결혼하기 전에도 결혼한 후에도. 제사 때 음복을 하는 정도? 왜지? 엄마가 가정요리를 즐기는 편이 아니고 외식을 하면 운전을 해야 하기 때문에 술을 안 마신 것 같기도 하다.


 20살의 음주 추억은 고등학교 친구 2명과 관련 있다. 재수를 했기 때문에 대학교에서 겪는 새내기의 과음을 경험해보지 못한 상태였지만, 거의 그 정도로 마신 것 같다. 술을 많이 마시고 맥주잔을 깼다. 그 호프집의 알바가 친구 2명 중 한 명이 다니는 교회에서 드럼을 치는 남자였다. 나는 알바에게 맥주잔 어차피 맥주 브랜드에서 주지 않냐, 무료이지 않냐며 꼬장을 부렸다고 한다. 친구는 부끄러워서 나를 끌고 호프집을 빠져나왔다. 우리는 찜질방에 갔다. 찜질방에서 술이 거나하게 오른 나는 화장실 바닥에 쓰러진 채로 발견되었다. 술을 잘 못 배운 탓이다.


 21살에 대학에 들어갔다. 여전히 잘못된 술버릇을 가진 나는 예비소집 날 선배님들과 이모집 안쪽 방에 가서 아침부터 신나게 술을 들이부었다. 점심경에는 만취하여 정말 힘들게 집에 돌아갔다. 그래도 칭찬할 것은 나의 귀소본능이 아닌가 생각한다. 어떻게든 집에 들어갔다. 그리고 생각했다. 누구나 나에게 술을 권할 수는 있지만 그 누구도 나의 귀가를 책임져주지는 않는구나. 나는 선배가 되어 딱 한 번 아빠를 학교로 불러 만취한 후배를 집까지 보내준 적이 있다. 그리고 느꼈다. 굉장히 귀찮은 일이라는 것을. 이래서 선배님들이 나를 방치했구나.


 어느날 과 사무실이 발칵 뒤집혔다. 동기 남자애들이 하얀집 왼쪽 방에 모여서 술을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한 학번 위 여자 선배님 외모에 대한 이야기를 했던 모양이다. 선배님은 운동을 많이 해서 몸매가 정말 예뻤는데 젖살이 아직 빠지지 않은 것인지 얼굴만은 동그랗고 통통했다. 당시 남자 동기들은 그 선배님을 '선풍기 아줌마'라고 불렀다고 한다. 그런데 오른쪽 방에 한 학번 위 선배님들이 마침 모여서 술을 마시고 있다가 그 이야기를 들어버렸다. 멍청하게 선배님들이 자주 가는 술집에서 그 지X들을 떨고 있었다. 한동안 선배님들과 매우 어색한 사이로 지냈다.


 하루는 술을 마시다가 시간 계산을 잘 못 했는지 서울역에서 지하철이 끊겼다. 이래 봬도 나름 곱게 커서 외박은 생각도 못했고 서울역의 밤은 너무나 무서웠다. 대학교에 입학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집까지 가는 광역버스도 파악하지 못한 상태였다. 그거 알아? 밤이 되면 서울역에는 노숙자들이 모여들어. 강아지를 키우는 노숙자도 있고, 예쁘게 단장한(나름) 노숙자도 있고. 그들이 모여서 모임을 갖는다고. 낮에 역사 이용객들이 서울역을 채운다면 밤에는 노숙자들이 서울역을 채우지. 그래서 더 무섭다. 나는 서울역 맞은편에 위치한 파출소에 들어갔다. 거기서 아빠에게 전화를 했다. '아빠 나 서울역에서 차가 끊겼어. 여기 무서워. 데리러 와 줘.' 아빠는 늦게 얻은 큰 딸을 매우 둥기 둥기 키우시기 때문에 당연히 오겠다고 하셨다. 파출소 순경님께는 '죄송한데 여기서 아빠 좀 기다려도 될까요? 무서워서요.'라고 이야기했다. 오케이 하셨다. 그렇게 아빠와 함께 집에 무사히 들어갈 수 있었다. 그 후 늦어도 집에 갈 수 있는 광역버스를 알아보기 시작했고 신도림에서 타면 집 근처까지 갈 수 있는 버스를 발견했다. 이후로 늦은 밤 아빠를 부르는 일은 위에 언급한 만취한 후배를 데려다줄 때 한 번이 유일했다.(이것도 성장이라면 성장이죠?)


 대학에 입학하고 첫 중간고사 전까지 거의 매일 술을 마셨던 것 같다. 그렇게 매일 술을 마시다가 중간고사 기간이 되자 술 약속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그때 처음으로 공허함과 우울함을 느낀 것 같다. 남는 시간에 무엇을 해야 할지 잘 모르겠더라. 그래서 방황하다가 학원 알바를 시작하게 되었다. 그 후로는 술을 많이 마시지 않았다.


 대학을 제 때 졸업하지는 못했다. 학기만 9학기를 다녔다. 중간에 휴학하고 공부를 하기도 했다. 마지막 학기는 필수 교양 과목을 착각하여 졸업을 할 수 없어서 어쩔 수 없이 다녔다. 학교 건물 기둥 하나는 내가 세웠다고 농담 삼아 이야기한다. 이 무렵 마시기 싫은데 자꾸 술을 강요하는 선배가 있었다. 사주는 것은 좋은데 자기보다 덜 취한 모습은 용납할 수 없다며 술을 억지로 먹이는 선배였다.(여자다.) 그래서 하루는 먹겠다고 응한 후 엄청나게 비싼 술집에 가서 안주를 왕창 시켜먹었다. 그랬더니 더 이상 술을 마시자고 하지 않더라. 이 방법은 회사에 들어와서 상사가 점심식사를 함께 하자고 했을 때도 사용했던 방법이다. 상사가 생각했던 예산의 거의 최대치에 해당하는 음식을 예약하여 먹고 나면 두 번 다시는 밥 먹자는 말을 하지 않는다.(불편한 시간을 줄일 수 있으나 인간관계는 개박살 나는 방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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