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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년필 Nov 25. 2022

스타벅스의 공개처형

천사소녀 네티 고객님이세요?

 * 이 이야기는 친구와의 대화 내용을 각색한 것으로 친구의 닉네임은 천사소녀 네티가 아님을 알려드립니다.


  대화는 나의 오늘 망한 컨디션 이야기로 시작되었다. 오늘은 수능날이다.  회사에서 전 직원에게 10시까지 출근하라고 공지하였다. 그래서 10시까지 출근했을 뿐인데 회사 주차장이 만차였다. 만차였을 뿐 아니라 주차장 입구로 차들이 줄을 지어 입장을 기다리고 있었다. 어쩔 수 없이 근처 공영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일일 요금 2,400원을 결제했다.(경차 50% 할인) 출근 전에 차량 배터리 방전으로 작년에 사둔 점퍼를 이용하여 시동을 걸었던 것은 에피소드에 끼지도 못할 정도로 충격적이었다. 직원이 회사 주차장을 이용하지 못하다니.


 출근 후 투덜거리며 일을 하고 있었는데 '만년필님 과태료 고지서가 발송되었습니다.(개인정보 보호상 위반내역 전화안내 불가. 국번 없이 182 또는 eFine사이트에서 확인 가능)'이라는 문자를 받았다. 과태료 미납으로 인한 혹시 모를 불상사를 대비하기 위해 eFine사이트에 문자 알림 요청을 해 둔 상태였다. 머릿속에 오늘 회사 주차장에 들어오지 못하여 주정차 구역에 잠시 정차하고 공영주차장을 검색한 일부터 매일 출퇴근 시간에 일어났던 아슬아슬했던 운전까지 많은 상황들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대체 언제 위반행위를 한 것이지? 이어지는 차량의 반란(과는 조금 다르지만)에 멘털이 슬슬 가출하기 시작했다. eFine사이트에 들어가서 확인해보니 지난 금요일 야근 후 집에 가는 길에 노란불에서 멈추지 않고 지나갔던 것이 걸렸다. 노란불이 끝날 때 즈음이라 절반 정도 지나간 상태에서 빨간색이 되었는데 마침 그 장면이 찍힌 것이다. 신호위반 과태료 7만 원. 아까운 7만 원을 이체하고 지출을 만회하기 위하여 후배가 맡기로 되어있던 추가 근무를 대신하기로 했다. 마침 7만 원짜리였다.


 이런 이야기를 친구에게 하고 난 후였다.


 네티 : 자동차가 세금이랑 기름값만 내면 되는 게 아닌 게 나도 어제 타이어 와서 타이어값 지출 짤랑짤랑.

(네티는 얼마 전 원인불명의 타이어 펑크 사고가 있었다.)

난 어제 타이어 가느라 차를 못 타서 남편 소나타를 타고 출근하려다가 차가 너무 낯설어서 그냥 버스랑 전철 두 번 갈아타고 출근했다.

나 : 타던 거 타야 해

네티 : 응, 소나타는 시동도 키 넣고 돌리는 거거든. 시동 거는 법도 모르겠어.

(네티는 스마트키 자동차만 운전해본 모양이다.)

괜히 남에 차 박을까 봐 무서워서 돌아 돌아 출근했지. 그래서 전철 타고 출근한 김에 스타벅스 들려서 커피를 사 오는데 회사 앞 스타벅스 얼마 전에 리모델링했거든. 전광판이 생겼더라고.


 스타벅스에 전광판?  스타벅스에서는 이상하게도 진동벨을 주지 않는다. 스타벅스만의 고집인지 진동벨을 주지 않고 마이크도 주지 않고 아르바이트생들이 목청 터지게 손님을 부르도록 하고 있다. 스타벅스 앱의 사이렌 오더로 주문하면 스마트폰으로 알림이 오기는 하지만 여전히 아르바이트생들은 손님을 부르고 있다.(그리고 알림이 안 올 때도 있다.) 손님들은 스타벅스 앱을 사용할 때 본인의 닉네임을 정할 수 있다. 옛날에는 이 닉네임을 기발하게 저장해서 스타벅스 알바들을 당황하게 만드는 것이 유행이었다. XXX 고객님이라고 불러주는데 예를 들어 '제가 쏠게요'고객님, '저도한입만요'고객님, '저금통털어온'고객님, '맛있겠네요'고객님, '난직원이고넌'고객님, '꼴에휘핑뺀'고객님, '냄새나는'고객님, '딴데가서드세요'고객님, '커피빈 VIP'고객님 등 다양하다. 그리고 친구의 닉네임은 '천사소녀 네티'였다. 스타벅스 알바 중에서는 '천사소녀'를 빼고 '네티'고객님이라고 부르기도 한다고 친구는 아쉬워했다.


 네티는 대중교통을 타고 출근하는 김에 회사 앞 스타벅스에 들렸고 커피를 주문했다. 그리고 전광판에 '천사소녀 네티' 여섯 글자가 떠올랐다.


네티 : 내가 사이렌 오더 했는데 전광판에 내 닉네임이 뜸. 공개처형당함.


 아침이라 사람이 많이 없어서 다행이었다며 친구는 웃었다. 그래도 닉네임을 바꾸지는 않을 것이라 말한다. 친구의 멘털도 정상은 아니구나 생각했다. 나는 스타벅스 앱 닉네임을 실명으로 해두었다. 의외로 실명으로 해둔 사람도 많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런데 전광판에 내 이름이 뜨고 내가 커피를 가지러 가면 나의 개인정보인 이름이 많은 사람에게 알려지게 되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개인정보보호법에 저촉되지 않을까?


그러므로 스타벅스는 전광판을 없애라! 공개처형을 멈춰라! 개인정보 공개를 멈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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