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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년필 Dec 01. 2022

무술이야기

무예동아리 회원이지만 태권도는 흰띠

 쌍둥이가 어릴 적 각각 다른 환경의 가정에 입양된 후 성인이 되어 만났을 때, 전혀 다른 성격으로 자랐다는 이야기를 들어봤을 것이다. 타고난 유전자에 의해 정해지는 부분이 분명 존재할 것이지만, 내 생각에 사람은 환경의 영향을 더 많이 받는다.


 아버지는 평소에 텔레비전을 자주 시청하는 편이 아니었지만 주말 명화 등에 중국 무협영화가 나오면 그것은 꼭 챙겨보셨다. 나는 중국 쿵후 영화를 좋아하는 아버지와 함께 어렸을 때부터 무협 영화를 보았다.  그 영향인지 만화가게나 시립 도서관에서 무협소설도 많이 빌려보았다. 그런 내가 대학교에 입학하여 처음 접한 동호회 소개의 현장에서 '반월도'를 발견했을 때 당연히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우리 동아리는 24반무예를 수련하는 곳이었다. 24반무예란 조선시대 발간된 무예도보통지에 수록되어있는 (실전된) 무예를 연구하여 실체화한 것이다. 아마도 조선 후기에 무예도보통지로 군사들을 훈련시켰던 것 같다. 무예도보통지에는 각 무술의 자세에 대한 그림과 상세한 설명이 기재되어 있다. 그리고 한, 중, 일의 무술이 모두 통합되어 기재되어 있다. 선배님들은 24반무예 협회를 통해 수원화성 행군 시연이나 무술 공연 같은 아르바이트도 많이 다녔다. 선배님 중 한 분은 무술을 전공으로 석박사를 마치고 일본에서 연구 중이시다. 물론 이것은 모두 선배님들의 영광이고 나는 그저 회원 1에 불과했다. 선배님들의 진검으로 대나무 베기나 짚단 베기를 흉내내며 꺄르르 웃던 좋은 시절이었다.(힘이 없어서 짚단을 벨 때는 꼭 중간에 칼이 멈춰 선배님들이 빼주시곤했다.)


 대학교에 입학해서 학교-집을 반복하던 어느 봄날. 어머니께서 나에게 태권도 도장에 가보라고 하셨다. 어머니의 지인 중에 태권도 관장님이 있으니 그곳에 가보라는 것이었다. 딱히 귀가 후 할 일도 없었던 나는 어머니가 손에 쥐어주는 태권도복을 들고 도장을 찾았다. 당황스럽게도 그곳에 성인은 나 혼자였다. 모두 초등학생, 많아봐야 중학생이었다. 나는 초딩들 사이에서 주먹을 뻗으며 열심히 태.권.도.를 외쳤다. 그리고 수업이 끝나고 나면 아이들과 함께 축구를 했다.


 그러고 보니 당시 도장 바닥에 완충 역할을 할 수 있는 매트가 깔려있지 않았던 것 같다. 취직 후 잠깐 다녔던 (3개월) 주짓수 도장에는 매트가 깔려있었는데. 아마 주짓수는 시작만 하면 일단 누워버리기 때문에 매트가 꼭 필요하고, 태권도는 서서 정권을 지르고 발로 차는 동작이 많아서 매트가 필요 없었나 보다.(아니면 안전불감증?)


  매트 없는 그러나 코팅은 되어있었던 시멘트 바닥에서 신나게 아이들과 공을 차다가, 맨발로, 공 대신 바닥을 찼다. 그리고 엄지발가락에 금이 갔다. 그렇게 나의 태권도장 나들이는 끝을 맺었다. 태권도장에 한 달도 다니지 못했던 것 같다. 


 얼마 전 1박2일을 보다가 선무도에 대해 알게 되었다. 경주 굴곡사가 본원이고 신라시대 화랑들이 수련하던 무예라고 한다. 검색해보니 살생을 금하기 위해서 방어 위주로 구성되어 있고 영상을 찾아봐도 치고받고 대련하는 것을 볼 수가 없다. 아주 평화롭고 자기 수양에 좋은 무술인 것 같아서 1월부터 서울 주말반에 다니려고 하고 있다. 나이 먹은 고운 딸이 다칠까 봐 걱정하던 아버지도 유튜브에서 영상을 찾아보시더니 선무도라는 것은 대련이 없는 것 같다며 허락하셨다. 여기는 오래 다녀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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