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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년필 Dec 08. 2022

윤서방의 생일상

산곡동 최수종을 위하여

 내 생일은 8월이다. 생일날 시댁에서 점심을 사주시겠다고 불렀다. 아침부터 치장하고 준비해서 집에서 나오다가 문득 친정에도 들려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가 얼마 전부터 김치와 쌀을 가져가라고 연락했었다. 시간이 나면 가야지 하다가 오늘에 이른 것이다. 마침 차를 타고나서는 김에 친정에도 들리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친정에 들리자는 말에 윤서방은 싫다고 하였다. 그렇게 우리의 전쟁이 시작되었다. 올 상반기에 친정집 이사가 있었는데 윤서방은 한 번도 와보지 않았다. 나는 시댁에서 오라면 오고 가라면 가는데 너는 왜 친정에 오지 않느냐며 그동안 알게 모르게 쌓였던 울분을 터트렸다. 내 생일인데 윤서방은 성질을 부렸다. 그래서 시댁에도 가지 않기로 했다.(윤서방이 더 화가 난 부분은 여기였다고 한다. 시댁과의 약속을 함부로 어긴 것.)


 그렇게 각자의 방으로 들어가 나는 울고 윤서방은 유튜브를 보았다. 저녁시간이 되자 옆 방에서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내심 윤서방이 반성하고 내 생일상 준비를 하나보다 기대했다. 그러나 윤서방은 본인 먹을 맥주캔과 과자를 사 왔다. 너무 서럽고 화가 나서 거실로 나가 맥주캔을 집어던지고 2차전을 시작했다.


 평소에는 너 하자는 대로 하지 않느냐. 생일과 결혼기념일만큼은 내가 하자는 대로 해달라고 요구했다. 눈물 콧물을 흘리며 소리를 질렀다.  빨리 밖에 나가서 케이크를 사 오라는 나의 요구에 결국 윤서방은 나가서 케이크와 와인을 사 왔다.


 생일을 둘러싼 다툼이 일단락되었다고 생각하고 있을 무렵, 회사 동기가 SNS에 신랑이 차려준 생일상이며 예약해둔 호텔이며 선물 따위를 포스팅했다. 거기에 '홍은동 최수종'이라는 표식을 달아두었다. 나는 그것을 캡처하여 윤서방에게 보냈다. 산곡동 최수종이 되어달라고 이야기했더니 너는 산곡동 하희라였냐는 답이 왔다. 그렇게 3차전이 시작되었다. 나는 지난 8월을 다시 상기시키며 아무리 그래도 생일에 이건 너무하지 않느냐고 이야기했다. 생일상을 차려달라고 요구했다. 적어도 미역국과 제육볶음(윤서방이 잘 만든다)은 만들어달라고 했다. 내년에 해주겠다며 저항하던 윤서방은 알겠다며 주말에 한 번 만들어주겠다고 이야기했다. 그렇게 윤서방은 산곡동 최수종에 한 걸음 가까워졌다.(그리고 진짜로 만들어주었다. 양이 굉장히 많아서 일주일 내내 질리도록 먹었다. 고맙다.)


 10월. 드디어 윤서방의 생일이다. 나는 회사에서 조퇴를 해가며 윤서방의 생일상을 준비했다. 사실 이것은 그를 위한 것이 아니고 내년의 나를 위한 것이다. 윤서방에게 잘 보았냐고, 내가 원하는 것은 이런 것이라고 알려주기 위해 일주일 내내 노력했다. 매일 생일 축하한다고 이야기하고 생일이니까 너의 집안일을 내가 해주겠다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작은 아이스크림 케이크를 준비하고 스테이크를 굽고 육전을 만드는 등 노력했다.


 산곡동 최수종, 잘 보았습니까? 내년을 기대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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