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래의 뜻은 후기 르네상스 시기에서 바로크 시대로 향하던 과도기에 유행한 미술 양식의 하나였다.
이는 레오나르도 다빈치, 라파엘로, 미켈란젤로와 같은 예술가들이 비례, 균형 등의 이상적인 아름다움을 강조한 것과는 달리 과장되거나 부자연스러움, 인공미 등의 화풍을 말하는 것이다.
매너(Manner)라는 어원으로 이탈리아어의 마니에라에서 유래했으며 후에는 창조적이거나 개성적인 예술 표현이 아닌 같은 그림을 단순히 모방하거나 아류 등과 같은 퇴보적 미술, 죽어가는 양식 등의 부정적인 의미로 쓰이게 된다.
미술 양식의 하나였던 '매너리즘'은 다른 여타의 예술 세계에도 이입되며 결국 대중적인 의미로 파생되어 부정적인 의미를 전달하는 단어로 고착화되었다.
그러나 나는 '매너리즘'에 대한 심도 있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요즘 나의 심리적, 정신적 상태에 대한 설명이 필요했기에 애먼 소릴 장황하게 늘어놓았을 뿐이다.
둘째 아이는 유난스러웠다.
어릴 땐 소위 말하는 고도영재의 아이... 그야말로 여기저기서 칭찬만 듣던 아이...
내 어깨를 으쓱하게 해 주었고, 우리 부부를 행복하게 만들었던 그 아이가 폭풍 같은 사춘기가 오면서 나 또한 포기해야만 하고 쓰러지고 때로는 인정해야 하는 당황스러운 일이 많이 늘어갔다.
이쯤이면 그만그만해지나 싶어도 또 다른 기함 할 일이 생기고, 이게 또 끝인가 싶으면 태풍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는.....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닌 우리 아이의 질풍노도....
결국 중학교와 고등학교 때 두 번의 자퇴를 하게 되었고 토요일이었던 지난 6일, 아이는 제작년 중학교에 어어 고졸검정고시를 보게 되었다.
태풍의 눈을 지날 때는 그걸 견뎌내느라.. 참아내고 이겨내느라 정신이 없었는데 폭풍이 잠잠해져 가니 이젠 내가 병이 날 것 같다.
겉으로야 일일이 표시를 하지 않고 매일 속 없이 웃으니 가족들도 내 마음을 잘 모를 것이지만 언젠가부터 그야말로 매너리즘.... 집안일도, 아이들을 돌보는 일에도 매너리즘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번아웃이라고 해야 할까? 아니다.. 매너리즘이라고 해 두자...
무엇을 해도 열정과 흥미가 줄어들어 효율성이 떨어지는 나의 상태...
문제는 막내 아이였다.
큰 아이들이야 이제 곧 성인이 될 나이들이니 그나마 괜찮은데 아직 만 8세의 늦둥이를 기르자니 예전 같은 힘이 생겨나지 않으니 이를 어쩌면 좋을까...
아이가 어떤 수업을 했다며 재잘재잘 떠드는 소리가 귀에 잘 들리지 않고, 이미 세 아이들이 다 겪어간 교과 과정이어서 별 감흥 없이 대답을 하는 나를 향해 '엄마! 왜 내 얘기 잘 안 들어?!'라는데 정신이 확 들었다.
'아... 그래.. 나는 여러 번 거쳐 간 일이었지만 너는 이 모든 게 처음이지... 너는 다 새로운 일이지...'
이 아이에게는 학교생활이 처음이니 모든게 설레고 신기한 일이었을 텐데 신통치 않은 엄마의 반응이 얼마나 서운했을까....
그러나 이젠 설거지를 하는 것도, 여러 음식을 차려 가족들을 먹이는 것도, 청소도 예전처럼 즐겁지가 않고 힘이 나지 않았다.
만사가 다 귀찮아져서 하루종일 누워있거나 그냥 어디 훌쩍 떠나 나만의 시간을 갖고 싶지만....
앞이 보이지 않는 남편과 아직 어린 막내가 계속 내 마음을 붙잡는다.
매일 초조했고, 매일 밤잠을 설쳐야 했고, 언제 어디서든 걸려오는 전화에 깜짝 놀랄 준비를 하며 상담실을 다니고, 학생부에 가서 경위서를 쓰고, 학폭위가 열리고, 경찰서에 가서 참고인 조사를 받고, 병원에 가고, 아이를 제대로 지켜내지 못한다는 이 사람 저 사람의 충고와 화살을 맞고 상처 입는....
이런 평범치 않은 일상을 몇 년 동안 살아오면서 때로는 너무 힘이 들어 아이를 놓아버리고 싶을 때도, 나를 없애고 싶은 날도 부지기수였다.
우울하고 분노스러운 감정이 뒤죽박죽인 채로 일상을 견뎌야 하는 날이 더 많았지만 결코 다른 아이들에게 표시를 내지 않으려 초인적인 힘을 매일매일 발휘하고 살았으니 그 속이 어떠했겠는가...
그나마 위안이 되었던 건 학폭위가 열렸을 때도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의 자리에 여러 번 서게 되며 제 뜻대로 되지 않는 상대 아이들의 부모는 또 어떤 심정이겠는가... 생각하며 쓰디쓴 울음을 삼켜야 할 때도 많았다.
옛말에 '때린 놈은 웅크리고 자도 맞은 놈은 발 뻗고 잔다'더니 그게 그나마의 위로가 될 뿐이었다.
힘든 건 남편도 매 한가지였겠으나 눈물을 꾹꾹 삼키며 직접 일처리를 하고 다니는 내가 큰 병이라도 걸려 어떻게 되는 건 아닌가 싶어 나를 많이 다독여왔기에 그나마 버틸 수 있었다.
뭐 어쨌든 어떤 방법으로든 그로 인해 나도 그만큼 속이 깊어졌을 것이고, 인생을 대하는 태도가 더욱 관대해지지 않았겠는가...
그렇다면 지금 겪어가는 별로 유쾌하지 않은 마음의 생각들도 성숙이란 결과를 맞으며 치유되지 않겠는가...
성숙의 길로 가는 일이 이다지도 힘든 일이다.
매너리즘이 정신적 성숙으로 귀결되는 이상한 결말이지만 끝이 해피엔딩이라면 겪어볼 만도 견뎌볼 만도 한 것 아닐까....
요즘은 주방에서 일을 할 때면 자의든 타의든 내 속을 그렇게도 할퀴던 그 녀석이 아무 말 없이 나를 뒤에서 꼬옥 안아준다.
애교 많은 고양이처럼 내게 와서 비비며 응석을 부린다.
아이가 돌아오겠다니... 그러겠다니..
조바심 나지만 지켜보기로 한다.
워낙 개성이 강한 그 아이를 그대로 인정하며 다른 이들 또한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내가 되어 가고자 한다.
오늘의 매너리즘은 외식과 살림기계들의 힘을 빌어 극복해 가며 쉼을 얻고자 한다.
결국 번아웃이든 매너리즘이든 그 무엇이든 내 안에서 일어나는 감정의 소요는 내가 잠재우는 수 밖에는 없는 일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