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산들바람 Apr 15. 2024

벚꽃 없는 벚꽃길을 함께 걸어요....

4월이다.

바람에 흩날리는 만발한 벚꽃잎에 괜한 기대와 설렘이 가득한 봄날을 올해도 어김없이 맞이하게 되었다.

그러나 자식들은 머리가 커지니 그 좋은 만개화 길을 그 보다 더 좋은 이성 친구나 마음 맞는 제 친구들과 함께 재잘대며 걷겠단다.

벚꽃이 지고 없어질 그날이 다가올세라 다들 서둘러 나가 버렸다.


뭐야... 쳇....

나 혼자 봄기운을 만끽하자니 괜한 허전함에 결국 남편과 동네 벚꽃길이나마 함께 걷는다.

그러나.... 벚꽃은 이렇게나 흐드러졌는데 남편 눈에는 보이지 않는 그냥 그런 동네길...

낙엽은 발치에서 바작바작 소리를 내고, 라일락과 아카시아는 코를 찌를 듯 자신의 향기를 널리 보내며 자신의 존재를 알려주는데....

그림 같은 벚꽃 길을 함께 걸어봐도 봄의 정취와 낭만은 반쪽짜리뿐이라 꽃놀이 가자는 말을 꺼내기가 미안해진다.

그렇지만... 남편은 나를 위해 기꺼이 길을 나선다.


어쩌다 흩날리는 벚꽃 잎이 남편의 뺨에 앉았다.

'이게 벚꽃잎이야.. 이런 작은 잎이 겹겹이 겹쳐져 작은 꽃이 되는데... 자 만져봐... 이런 게 나무 한 가득이야...'

하찮은 나의 설명에 남편은 무엇을 어떻게 상상했을까....

집에 돌아와 tv를 켜니 기상 캐스터가 이야기한다. '분홍색 벚꽃이 가득 한 완연한 봄'이라고...


"벚꽃이 분홍색이야?"


"응.... 내가 벚꽃이 분홍색이라는 얘기 한 번도 안 해 줬나?"


"그랬던 것 같아... 말했는데 어쩌면 내가 잊어버렸을 수도 있어..."


한 번도 색을 본 적 없는 나의 남편은 분홍색을 어떻게 생각할지 궁금해진다.


해다마 벚꽃 없는 벚꽃 길을 함께 걸어 주어서 정말 고마워....

그러나 우리가 함께 한다면 언제 어디를 걸어도 그게 내 인생의 벚꽃 길이야....

내년에도 그다음 해에도 우리....

벚꽃 없는 벚꽃 길을 함께 걸어요....

벚꽃이 있어도 없어도 당신과 함께 걷는 그 길이 꽃길이니까....










 


이전 19화 매너리즘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