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열다섯 살이었던 그 때, 친구의 생일에 초대되어 갔던 그날, 나름 그 지역에서는 꽤나 부유했던 그 친구는 예닐곱명의 친구들을 데리고 그 지역에 한 두 개밖에 없는 경양식 레스토랑으로 우릴 데리고 갔다.
룸을 예약했는지 둥그런 테이블 위에는 냅킨과 접시, 나이프와 포크가 이미 세팅이 되어 있었고,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상차림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잠시 후 하얀 셔츠 위에 검은색 조끼와 그와 같은 색의 바지에 나비넥타이를 맨 웨이터가 네모진 메뉴판을 내밀며 무엇을 주문할지 물어본다.
이런 곳에서 음식을 먹어본 적이 없으니 뭘 어째야 할지 몰라 다른 친구들 앞에서 망신이나 당하지 않을까 걱정스러웠는데 생일을 맞은 친구가 이곳에 여러 번 와 봤던 듯 메뉴판을 읽어볼 생각도 없이 익숙하게 얘기한다.
"돈가스 주문할게요!"
우리는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같은 것을 주문하겠다고 했다.
그나마 텔레비전에서 들었던 귀에 익은 음식을 주문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었다.
"수프는 어떤 걸로 준비해 드릴까요?"
'수프를 어떤 걸로???'
"어떤 수프가 있어요?"
"오늘은 크림수프와 토마토 수프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딱 봐도 중학생쯤으로 보일 우리한테 어른이 왜 저렇게 깍듯해? 그나저나 크림수프는 어떤 맛이고 토마토는 어떤 맛일까? 어떤 걸 선택해야 할까?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저는 토마토 수프로 할게요"
'수프라면 끓여서 먹는 음식인데 토마토를 끓여 먹는다고? 과일도 채소도 아닌 그것을 끓여내면 밍밍한 맛이지 않을까? 그게 어떤 맛일까? '
상상만으로도 얼굴이 찡그려지는 토마토 수프를 생각하며 나는 크림수프를 먹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나머지 친구들은 뭘 아는지 모르는지 모두들 토마토 수프를 선택하니 막상 내 차례가 다가왔을 때 나도 모르게 '토마토 수프'를 자신 있게 외치는 내 모습에 화들짝 놀랐으나 결코 겉으로 당황한 표시를 내지는 않았다.
어쩌면 친구들도 나처럼 아무것도 모르니 생일을 맞은 친구를 그냥 따라 하는 게 아니었을까?
아니 그런데 뭐가 또 이렇게 복잡한가? 무엇을 결정해야 하는 선택은 거기서 끝나지 않고 이번엔 밥을 드시겠느냐 빵을 드시겠느냐 묻는다.
그렇다면 여부가 있겠나... 밥이야 천날만날 집에서 먹는 것이지만 이럴 땐 빵을 고르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 아니겠는가...
이번엔 누구의 눈치를 볼 필요도 망설임도 없이 수월하게 빵을 선택했다.
그렇게 스무고개 게임처럼 어려운 주문이 끝나고 잠시 후 수프가 나오자 생일을 맞은 친구는 테이블 위에 놓인 하얀색 도자기 병을 거꾸로 세워 수프 위에 뿌린다.
뭔가 싶어 쳐다보니 시커먼 가루가 나오는 것이 아마도 후추인가 싶었다.
저걸 저기다 뿌려 먹는단 말이지?
모두들 그 친구를 따라 후추를 뿌리고는 난생처음 익혀낸 토마토 요리를 먹어본다.
'어라?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맛있는데? 어떻게 요리한 거야? 토마토를 끓이면 원래 이런 맛이 나나?'
약간 시큼한 듯하면서도 고소함이 느껴지는 그것은 아마도 버터였을 테지만 그것을 알 리가 없다.
어쨌든 내가 예상했던 것과는 다르게 무르게 푹 익혀낸 토마토 요리의 맛은 나에겐 신선한 충격이었다.
신기하게도 우리가 수프를 다 먹었다는 걸 어떻게 알았는지 웨이터가 다음 음식을 들고 나타났다.
커다란 접시를 반이나 차지하는 튀겨진 고기와 한편엔 모닝빵과 딸기잼, 그 옆엔 샐러드 한 움큼이 올려져 있다.
나는 이리저리 눈치를 살피며 친구들처럼 왼손엔 포크를, 오른손엔 나이프를 들고 말없이 칼질을 하기에 여념이 없다.
사춘기 소녀들은 묘한 자존심을 세운다. 촌스러움이 묻어나지 않으려 최대한 자연스러운 듯 행동하며 서로의 눈치를 살피는 듯하다.
각자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지만 오늘에 이르러서야 난생처음 튀겨진 고기를 칼로 썰어 먹는다는 사실이 꿈만 같았다.
이것으로 식사가 끝났겠거니 싶었는데 잊을만하면 웨이터가 다시 나타나 이번엔 디저트는 뭘 먹겠느냐 묻는다.
'아니 저 사람은 우리가 식사가 끝난걸 어떻게 알까? 밖에서 다 듣고 있나?'
"디저트는 뭘로 드릴까요?"
'디저트??? 이렇게나 먹고 뭘 또 먹나...? 도대체 이게 다 얼마야?'
"저는 콜라 마실게요..."
'아.... 음료수를 고르는 건가 보구나... 이쯤에서는 살짝 다른 걸 골라도 괜찮지 않을까? 아... 아니야.. 그래도 친구들 앞에서 실수하지 않게 같은 걸 고르는 게 나을 것 같아..'
단지 친구 생일에 초대받은 식사자리일 뿐인데 머릿속은 복잡한 생각들로 가득하다.
결국 나도 친구들을 따라 콜라를 선택했고, 느끼한 돈가스 뒤에 마시는 그것은 적절하고 절묘한 선택이었다.
1991년, 열다섯 살 읍내에서 돈가스와의 첫 만남은 선택과 긴장의 연속이었다.
그동안 살면서 그 짧은 시간에 그렇게 많은 선택을 해야 했던 경험은 없었다.
그리고 그날 이후 드라마 속에서 칼로 돈가스를 써는 장면을 보면 나도 이제 저 정도는 안다는 듯 묘한 자신감에 미소를 지을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내 인생에서 또 하나의 경험치가 쌓인 사건이었다.
지금이야 돈가스는 동네 분식집에서도 주문할 수 있을 만큼 흔한 음식이지만 패밀리 레스토랑이 유행하기 전이었던 90년대 초반엔 경양식당에서 먹는 고급 음식으로 여겨지던 때가 있었다.
더군다나 군 단위 시골에서는 더욱 그럴만했으며 가난한 우리 집에서는 꿈도 꾸어 볼 수 없는 것이다.
돈가스는 본래 이탈리아의 코톨레타라는 요리에서 비롯된 것으로 프랑스와 영국을 거쳐 커틀릿이라 불리게 되었고, 19세기에 서양과 활발한 교류를 하던 일본에 전해지게 되었다고 한다.
그 후 일제 강점기인 1925년에 우리나라에 건너오게 된 음식이었지만 국내에 자리 잡게 된 것은 꽤 오랜 시간이 흘러서였다.
1980년대는 중산층 가정에서도 특별한 날에나 한 번 먹어 볼 듯한 메뉴로 경양식 돈가스가 보편적인 것이었으나 1998년부터 우리나라가 일본 대중문화를 본격적으로 개방하기 시작하며 2000년대부터는 일식 돈가스가 큰 인기를 얻게 되었다고 한다.
또한 이 무렵부터 생활 수준의 향상과 함께 미디어의 발달로 인해 외국 문화를 접하기가 쉬워졌으며 식품 회사에서 냉동돈가스를 대량 생산하여 판매하면서 분식집이나 기사식당 등의 서민적인 음식점에서도 돈가스가 일상적인 음식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지금은 학교 급식이나 대학교 구내식당의 학식으로 거의 한 달에 한두 번 꼴은 접할 수 있으며 횟집, 감자탕집, 김치찌개 집 등의 식당에서도 난데없는 돈가스를 끼워 파는 곳이 많아졌다.
아마도 어린이를 동반한 손님들을 위해 궁여지책으로 생겨난 메뉴가 아니겠는가 싶지만 의외로 어른들도 많이 찾는 메뉴인 데다 때로는 돈가스가 식당의 주력 메뉴가 되레 주객이 전도되는 경우도 있을 정도이다.
우리 가게 아래층 김치찌개집에서도 돈가스를 주문하는 손님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었고, 나 또한 가끔은 얼큰한 김치찌개와 함께 하는 돈가스의 궁합이 꽤나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었다.
아이들이 어렸을 땐 집에서도 종종 돈가스를 별식처럼 만들어주곤 했는데 사방 천지에 튀는 기름과 폐유를 처리하는 번거로움에 꽤나 용기가 필요한 요리이기도 하다.
기름기가 적은 돼지고기를 망치로 두드려 넓적하게 편 뒤 소금, 후추로 밑간을 한 후 계란물, 밀가루 빵가루 순서로 옷을 입혀 튀겨내면 되는데 나는 양파를 갈거나 곱게 다진 것을 고기의 아래위에 엷게 펴 바른 뒤 계란물을 입혀 튀기기도 한다.
양파가 빨리 익는 탓에 불조절이 관건이긴 하지만 이렇게 튀겨내면 돈가스의 느끼한 맛과 잡내를 잡을 수 있고, 약간 사각거리는 식감이 단조롭지 않은 기분을 느끼게 한다.
그러나 이제 나는 쉬운 선택을 하는 요즘 여자....
여섯 명 가족에게 뜨거운 기름 앞에서 기꺼이 돈가스를 튀겨낼 열정도 이젠 사라졌으니 돈가스가 생각날 땐 동네 식당을 기웃댈 테다.
돈가스라는 간판만 봐도 지난날 처음 경험했던 그날의 추억이 떠올라 배시시 웃음이 날 때도 있다.
그리곤 비록 지천명이 가까워지는 지금에도 열다섯의 풋풋함을 결코 다 잃어버리지는 않았다는 것을 확인하며 안도의 숨을 쉬기도 한다.
돈가스는 나에게 사춘기 소녀시절의 풋풋함을 생각나게 하는 추억의 음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