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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들바람 May 06. 2024

아이들은 파도처럼 밀려갔다 다시 밀려온다.

나는 요즘은 보기 드문 2남 2녀 4남매의 엄마다.

누구나 그렇듯 나의 육아기 또한 스펙터클 그 자체일 수밖에 없었다.

더군다나 삼 남매가 모두 연연년생이다 보니 이 아이들이 어린 시절엔 난 거의 유체이탈 수준의 삶을 살아야 했다.

생각해 보라.

연연년생이 쉬운 말이던가...

게다가 남편은 시각장애를 가졌고, 첫째는 ADHD, 둘째는 창의력과 호기심이 엄청나서 순식간에 사라져 엉뚱한데 가 있고, 셋째는 경도의 지적 장애아이다.

그러니 얼굴에 스킨 한 번 바를 시간이 제대로 없고, 옷 그저 몸뚱이를 가리기 위한 방편이었으며 보따리처럼 큰 가방에 이것저것 다 때려 넣고 피난가방처럼 들고 다녀야 했다.

아이들이 어릴 땐 한 식탁에서 함께 앉아 밥을 먹어 본 기억이 없다.

지금 다시 그때의 형편없는 내 몰골을 돌아보자니.... 정말 생각조차도 하고 싶지 않다.

그래도 그때는 열정이 가득했다.

마치 나는 육아와 남편을 돕기 위해 태어난 훈련된 전사처럼 정신무장이 되어 있던 시절이었다.

그러니 어린이집 선생님처럼 구연동화 읽기와 극적 연기를 아끼지 않았으며 나들이도 참 많이 다녔었다.

그 당시는 남편도 주말이면 보냉병 여러 개에 물을 가득 담아 돗자리를 어깨에 짊어지고는 뚜벅이인 우리는 참 많은 곳을 보여주고 경험시켜 주려 노력했던 것 같다.

그러다 아이들이 자라나며 사춘기라는 장벽에 봉착하니 이것저것 생각 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 버렸고, 그 당시 늦둥이인 막내도 태어나면서 그런 활동은 모두 멈춰지게 되었다.

그렇게도 전쟁 같은 시절이 지나고 육체가 어느 정도 편해지니 막내 아이에게 그만한 열정이 생기지 않는다.

손주를 돌봐주는 조부모들이 텔레비전만 틀어줘서 불만이라는 하소연을 들었던 기억이 떠오르며 왜 조부모님들이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 심정적인 이해가 되는 듯했다.

게다가 자영업을 하다 보니 인건비가 겁나서 직원을 한도 끝도 없이 쓸 수도 없어 그 외 시간엔 내가 나가 일을 하다 보니 우리 막내가 큰 아이들과는 다른 환경에 처해 있게 된다.

직원들도 주말에는 일하기 싫은 건 같아서 대신 우리 아이가 희생되고 내가 나가 일을 해야 한다.

물론 언니, 오빠들의 사랑을 받고, 나 또한 큰 아이들한테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댔던 것이 막내에게는 눈처럼 사르르 이해가 되는 이상한 일들이 일어나는 것이 마치 할머니와 엄마 중간지점쯤 되는 육아상황이다.

마음만 빤할 뿐 시간적, 육체적 에너지와 시간이 부족해 아이를 예전처럼 돌보기가 어렵다.


그러나 경험을 통해서 나는 안다.

아이들이 내 품에 안기는 시절은 잠시뿐이라는 것을.....

나의 상황과 현실을 기다려 주지 않는다는 것을....

큰딸이 열 살이 되니 사춘기가 오는지 막 발동을 걸었고, 지금의 막내도 그런 듯하다.

예전엔 엄마 품에 쏙쏙 잘도 안겼는데 지금은 5년에 한 번씩 안을 수 있단다.

방문을 닫고 조용히 음악을 듣고 싶어 한다...

온전한 아가의 귀여움을 나는 제대로 만끽하지도 못했는데 이제 내 품을 서서히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결국 안 되겠다 싶던 나는 막내 하고만 단 둘이서  2박 3일간 여행을 다녀오기로 했다.

평소 감정 표현을 대놓고 잘하지 않는 막내이지만 콧구멍에 바람을 넣는다니 기분이 좋은지 나를 앞서 깡충깡충 뛰어가는 모양이 아직 영락없는 아이의 모습이라 마음이 좀 놓인달까?

함께 손을 잡고 해변을 걷고, 웃고만 있어도 기분이 좋다.

잠든 아이의 새근새근 숨소리만 들어도 가슴 벅찬 행복한 이 기분....

세상 어떤 소리보다도 나에게 안정감을 주는 예쁜 소리....

나를 철들게 하는 소리...

나는 자는 아이를 몰래 안아보고 손 등과 뺨에 살짝 입맞춤도 해 본다.


큰아이들은 각자 큰 파도와 작은 파도를 만들어내며 밀려갔다 밀려오기를 반복하다 이젠 저 넓은 바다 한가운데로 밀려가 깊고 먼바다로 나아간다.

그럴 때쯤 막내가 찾아와 주어 잔잔한 찰싹임으로 내 오감을 깨우더니 이제 이 녀석도 제법 큰 파동을 만들어내며 나를 놀라게 하곤 한다.

그렇다면 큰 파도가 되어 더 멀어지기 전, 얼른 이 어린 날들을 만끽해야지....

구김 없이 꽃 같은 웃음을 내 눈과 기억 속에 많이 담아두어야지....


오늘은 비 오는 어린이날...

다행히 먼저 여행을 다녀온 덕에 아이의 채근은 면한 듯하다.

대신 선물은 실물 현금으로 삼만 원을 요구하는 지극히 현실적인 성향의 이 아이...

얼마 남지 않은 동심의 시간나는 마음껏 감상할 테다.

흘러간 세월이 아깝지 않도록 말이다.

 

네 명의 아이들 중 훗날 누가 언제 몇 명의 손주를 나에게 안겨줄 이가 있을지 알 수는 없으나..

아이들은 파도처럼 밀려갔다 또 다시 파도처럼 밀려온다.

아이들은 자라 가고 다시 자라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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