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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들바람 May 13. 2024

선생님의 기도

내가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 첫 담임 선생님은 이제 막 대학을 졸업한 만 스물세 살의 아가씨 선생님이었다.

지금 내 남편과 내가 일곱 살 터울이니 새침한 고등학생인 우리가 보기에도 선생님은 참 앳된 모습이었다.

때로는 슬쩍 파마를 하거나 옅은 화장을 하는 학생들의 용모를 지적할 때면 어린 선생님과 여고생은 팽팽한 기싸움을 하는 듯한 장면이 연출될 때가 종종 있을 만큼 아직 어린 태가 역력했다.

그러나 선생님 또한 대단한 각오가 있었는지 반항하는 아이들 앞에서 결코 주눅 들어 보이거나 주춤거리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철없는 내 눈엔 선생님이 약간은 까칠한 듯 느껴지기도 했었다.


이제 막 발령을 받은 어린 선생님은 새벽 네시 반쯤 일어나 출근 준비를 끝내고는 동서울터미널에 도착한단다.

그리고 고속버스를 타고 우리 학교에 출퇴근을 한다고 했다.

그리고 우리가 자율학습을 마치고 아홉 시를 훌쩍 넘긴 시간 학교를 빠져나가면 선생님은 아홉 시 사십 분, 막차를 타기 위해  서둘러 터미널에 도착해 다시 서울로 돌아간다다.

매일의 고된 출퇴근 탓인지 우리가 자율학습을 하는 시간이면 선생님은 교탁에 팔베개를 하고 잠이 드는 때가 종종 있었는데 조금 까칠하지만 한창 예쁠 나이의 단발머리 앳된 선생님의 잠든 모습이 아름답다고 생각한 적이 여러 번이었다.

 

그날도 여느 날처럼 아홉 시 넘어 자율학습이 끝나고 간단한 선생님의 말씀이 끝나자 모두들 가방을 챙겨 서둘러 교실을 빠져나갔다.

시골이라 막차가 끊기기 전 얼른 버스터미널에 도착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평소 건망증이 있던 나는 교문을 나서자 뭔가 두고 온 게 생각났다. 혹여라도 나 때문에 막차를 놓칠 친구들이 걱정되어 같은 방향 버스를 타고 가는 친구들을 먼저 보내고, 나 혼자 다시 교실로 돌아간다.

3층으로 올라가니 아이들이 모두 빠져나가고 없는 복도의 적막함에 괜히 한기가 느껴진다.

평소에 들었던 학교 괴담이나 공포영화의 한 장면이 생각나는 것 같아 건망증이 심한 나 자신을 원망하며 우리 반 교실 앞에 다가섰다.

그런데 복도로 난 창문을 통해 보이는 다른 반 교실은 모두 불이 꺼져 캄캄한데 우리 교실만 훤하다.


'뭐지?'


나는 여닫이 교실문 손잡이를 일부러 세게 잡아당겨 뒷문을 벌컥 열고 교실로 들어섰다.

아.... 그런데.....

까칠해 보이던 앳된 선생님의 뒷모습....

학생들이 앉았던 책상 맨 앞자리에서 두 손을 앞으로 모으고, 1번부터 53번까지 한 사람 한 사람의 이름을 부르는지 기도를 하는 선생님은 내가 문 여는 소리도 듣지 못한 듯했다.

나는 꽤 한참 동안이나 선생님의 뒷모습을 가만히 쳐다볼 뿐이다.

흐느끼는지 어깨가 들썩인다.

아..... 선생님......

그렇게 급하게 나가라며 우릴 재촉했던 선생님은 얼마 남지 않은 막차 시간을 앞두고 오십여 명의 이름을 부르며 기도를 하기 위해 그러셨던 거였군요....

왠지 나 또한 눈물이 핑 돌며 목구멍으로 뭔가가 밀려 올라오는 듯 한 기분이었다.

순간 막차를 타야 한다는 생각이 퍼뜩 들며 할 수 없이 책상 서랍을 뒤적이는 소리에 선생님은 눈을 뜨고 뒤를 쳐다보다 눈이 마주친다.

선생님도 나도 살짝 웃을 뿐, 말이 없었다.

아니 사실 누군가가 날 위해 매일 기도한다는 사실에 격한 감동이 밀려와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어서였다.


"뭘 두고 와서요....."


"안 늦었니? 우리 같이 나가자....."


"선생님은 많이 늦으신 것 같은데요?"


"응, 매일 달려가야 놓치지 않고 버스를 탈 수 있어..."


몰래 하던 행위가 들킨 것이 무안한 지 괜히 쑥스러워하신다.

선생님의 비밀을 알게 된 것 같아 나 또한 뭔가 이상스러운 감정이다.

그러나 선생님과 나는 정막을 깨고, 막차를 놓치지 않기 위해 유난히도 먼 교문을 향해 뛰어 나간다.

나의 교복 치마와 선생님의 종아리까지 오는 긴 스커트가 펄럭이는 소리가 더 크게 들리는 밤이다.

나의 검은색 구두와 선생님의 단화가 땅에 닿는 소리가 어둠 속에서 타닥타닥 더욱 바쁘게 들린다.


우여곡절의 삶을 살아내며면서도 가끔은 선생님의 기도하던 그날의 모습이 떠오를 때가 종종 있다.

힘든 인생을 이나마도 견디며 살아지는 것은 그때 우리를 위해 했던 선생님의 기도가 조금의 영향을 끼치지는 않았을까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리고 그날의 선생님 모습이 떠오를 때면 열일곱 그날처럼 어김없이 울컥하며 감정이 복받친다.

감수성이 한창 예민했던 그때 보았던 그 장면은 내 감정과 뇌리 속에 강한 잔상을 남기며 내 인생의 한 부분을 차지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나는.....

나는 과연 어떤 이에게 어떤 잔상을 남기며 살아왔을까..

부질없이 지났을지도 모를 내 인생의 한 부분은 다른 이들에게 어떤 의미를 남기며 지나왔을까....

티끌만큼 작은 점이라도 찍혔을까....  

다른 이의 고단한 삶 속에 산들바람처럼 시원한 휴식을 주었던 날이 있었을까....

스승의 날이 가까워지면 더욱 생각나는 선생님의 뒷모습이 또한 나의 뒷모습이 되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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