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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들바람 May 27. 2024

시간을 거스르는 작은 몸부림...

언젠가 삐죽이 솟아오른 새치 하나 바라보며 어쩌다 잘못 나온 것이겠지 생각했었다.

뽑아버리면 그만일 대수롭잖은 것이라 생각했었다.

그러나 지난날 유난히도 빨리 머리가 희어지던 친정엄마의 모습이 떠오르며 설마? 하는 생각이 스치기도 했지만 매번 솟아나는 새치를 잘못 나온 것이려니 애써 부정하며 몇 해가 흘러갔다....

결국 불혹의 중반에 접어들며 도저히 감당이 되지 않는 흰머리를 그냥 두고만 볼 수 없게 되었다.

이렇게 나이 들어감을 인정해야 하나 싶어 약간 침울 해 지기도 했다.


염색약상자 안에 든 일회용 장갑을 끼고 비닐보를 슈퍼맨처럼 어깨에 두른다.

그리고 플라스틱 그릇에 1제와 2제를 섞어 머리밑 사이사이 꼼꼼하게 발라본다.

처음 하는 새치 염색은 어쩐지 어색했다...

그러고도 몇 년의 세월이 더 흐른 지금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행위가 되었지만 이놈의 건망증과 귀찮음은 가시지 않는다.

머리를 감으면 자연스레 모발의 색이 바뀐다는 제품을 이용해 보기도 했지만 염색약보다도 더욱 빳빳하고 거칠어진 머릿결이 마치 공장에서 만들어낸 플라스틱 인형의 머릿결과 다를 바 없어 포기했다.

어떤 날은 염색을 잘못했는지 약의 성능이 좋지 못한 건지 염색한 지 얼마 안 되어 또다시 허연 속살을 드러내며 나를 당황스럽게 하거나 염색 시기를 놓쳐 머리카락의 밑동이 본연의 색을 드러낼 때도 있다.

거울을 볼 때마다 화들짝 놀라지만 다른 일을 하다 보면 이내 그 사실을 잊고 마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미용실에 가 볼까 생각하다가도 천정부지 오르는 물가에 이것만이라도 아껴 보자 참아보는데 내 인내심의 한계가 어디쯤 일지 알 수가 없다.


이젠 한 달에 한두 번은 정해진 일이라 얼마 전엔 미용실에서 사용하는 어깨보와 다회용 장갑, 염색약 반죽 그릇과 빗을 구입했다.

염색을 하기에 용이하도록 단발로 댕강 머리카락도 잘라버렸다.

그저 세월의 흐름을 그대로 받아들이기엔 내 마음은 아직 소녀이고, 늦둥이 열 살 딸아이를 기르고 있기에 또래 학부모에 비해 연륜의 차가 너무 커 보이면 아이가 상처를 입을까 쉽게 포기할 수 없는 일이다.


이사 전 미리 염색을 해야 한다는 사실을 계속 잊은 나는 결국 머리밑의 삼분의 일이 다 드러나 보일만큼 빼곡한 흰머리 그대로 아이를 전학시키러 새 학교에 방문하고야 말았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던 나는 당장 집으로 돌아와 1제와 2제를 능숙하게 섞어 거울을 보며 꼼꼼히 빗질을 한다.

큰 딸아이가 그런 나를 바라보며 씽긋 웃는다.


어느 글귀엔 '청춘의 유효 기간은 인생의 어느 기간까지가 아니라 열정을 잃어버린 것'이라고도 하고, '젊음은 내 마음이 정하는 것'이라고도 하지만....

아무리 부정해도 흰머리는 연일 솟아나고 폐경을 막을 수는 없지 않는가....

그에 따른 물리적 변화는 자연스레 수반되는 결과이고 말이다.

 하지만 어떻게든 시간의 속도를 늦추려 나를 포장하려면 앞으로 수없는 번거로움더욱 늘어가겠지?

염색을 하고, 음식을 가리고, 운동을 하고, 또 지병에 따른 약과 영양제를 챙기고....

그렇다면 그저 귀찮은 일을 해 낸다는 의무감보다는 나를 사랑하는 일이라 마음먹어야지...

아직은 여자이고 싶은 나를 사랑하는 방법이라 이름 붙여야겠다.


그래도 말이다.....

일 년에 한 번만 염색을 해도 되는 획기적인 방법은 아직 없는 것일까?

혹시 기존의 내 방법보다 좋은 비법을 알고 계신 분은 함께 공유해 주시면 감사할 따름이겠다.


아직은 세월을 거스르고 싶은 부질없는 욕망이 사그라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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