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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들바람 Jun 10. 2024

건망증일까 치매일까?

어디에도 없다...

가방을 뒤집어 털어보고, 여기저기 아무리 찾아보아도 보이지 않는다.

엊그제 치과에 가서 엑스레이를 찍느라 빼 두었던 귀걸이...

몇 년 전 남편이 생일 선물이라며 종로에 직접 가서 사 주었던 금귀걸이....

하아.... 어쩌지? 차마 남편에게 표시를 낼 수 없었지만 하루종일 이유 없이 예민한 내가 이상했을지도 모른다.

그날 하루하루를 되짚어보며 생각하지만 급하게 휴대폰 지갑에 넣어 두었던 그것이 어디서 빠졌는지 알 수가 없다.

길에서 그랬을까? 집에서였을까? 청소기 먼지통 안에서도 발견되지 않았는데 그게 어디로 빠져나갔을까...

물론 판매할 생각도 없었지만 지금쯤이면 몇 배나 값이 올라있을 금부치를 어디서 어떻게 잃어버렸을까 생각하니 나 자신에게 울화가 치밀어 못살겠다.

그 당시도 적지 않은 돈을 들여 선물해 주었던 귀걸이었다.


내 건망증의 역사는 깊고도 깊다.

학교 다닐 때는 준비물을 하도 빼먹고 다녀서 중고등학교 시절부터는 손바닥에 볼펜으로 써 두기도 했지만 열이 많은 탓에 땀이 흘러 지워져 버리고, 희미한 흔적만 남아 있을 때가 많았다.

책을 읽으면 그 속에 나오는 몇십 명, 몇백 명의 이름과 지명, 문장 부호 하나하나까지 다 기억나기에 암기 과목에 유독 강했던 나는 시험이 끝나면 친구들은 내가 만점을 맞았는지 궁금해서 시험지를 책과 비교해 보며 대신 채점을 하기도 했었고, 일주일에 백개씩 외워서 시험을 보는 영어 단어도 마음먹고 삼십여분쯤 쭈욱 훑어보면 철자 하나하나 외울 있었기에 밤새 공부한 친구들보다 잠깐 들여다본 성적이 좋아 원망 아닌 원망을 사기도 했었다.

어떤 사물이나 상황, 영화를 보아도 그에 따른 세세한 것들이 모두 다 머릿속에 콱 박혀 어떤 상황에 대한 진술은 내가 하거나 영화나 책의 내용을 재밌게도 표현했었다.

그러나 그러한 것과는 별개인 것인지 물건을 어디다 두었는지, 어떤 약속을 했었는지 어떤 상품인지 꼼꼼히 살피지 않고 주문을 해서 낭패를 본다던지 생활 속에서 어려움을 내내 겪으며 이날 이때까지 살아왔다.

한 번도 정확한 검사를 해 본 적은 없지만 아마도 ADHD가 있는 게 아닐까...  


우리 딸아이가 태어난 지 8개월이 되었을 무렵, 아토피에 좋다는 대용량 로션을 구입한 적이 있었다.

목욕이 끝나고 새로 산 로션을 겨드랑이부터 사타구니까지 온몸에 정성 들여 바르다 뻑뻑한 제형이 너무나 이상스러워 통을 들어 자세히 들여다보니 같은 브랜드의 바디워시였다.

이미 막 목욕을 끝낸 어린 아기를 다시 안고 들어가 목욕통 안에 넣으니 거품이 부글부글 어찌나 일던지 그 거품을 없애는데만 해도 상당한 시간이 필요했다.

딸아이를 예쁘게 원피스를 입히고 나왔는데 속옷을 입히지 않은 게 생각나 어쩔 수 없이 근처 대형 마트에 들어가 속옷을 구입하고 세탁도 못하고 옷을 입힌 적도 있다.

그것뿐인가.... 하루는 식칼이 없어져 한참을 찾다 우연히 냉장고를 열었을 때 떡 하니 얹혀 있는 식칼을 보고 간담이 서늘했던 적도 있고,  밥솥의 내솥을 넣지 않고 씻은 쌀을 쏟아붓고 취사 버튼을 눌렀던 적이 있었다. 덕분에 밥솥의 액정에도 쌀알이 들어가고 아랫 부분에서도 한동안 쌀알이 수시로 튀어나왔다.

'얘들아 밥주걱 못 봤냐, 엄마 브래이지어 못 봤냐, 머리핀 못 봤냐, 휴대폰을 들고도 휴대폰 못 봤냐' 등등의 질문이 끊이지 않고, 종이 티켓, 열차와 비행기 시간을 꼼꼼히 확인하지 않아 남편이 식은땀을 흘리며 뒷수습을 하느라 애를 먹은 적이 수백 번이다.

다행히도 나의 남편은 아주 꼼꼼하고, 정확하고, 정리 정돈에 목숨을 거는 사람인지라 시각 장애인인 남편이 오히려 여행을 갈 땐 짐을 정리하고, 티켓이나 시간표는 남편이 체크한다.

그나마 네 명이나 되는 아이들을 잃어버리지 않고 살았던 것은 내가 얼마나 초인적인 힘으로 촉각을 곤두세우며 살았던 것인지 잘 알 수 있다.  


이런 내가 일찍이 치매가 오는 건 아닐까... 걱정스러웠던 적도 많지만 다행히도 귀띔만으로도 기억이 나는 것은 건망증이고 그것 자체를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것은 치매일 확률이 높다는데 치매는 뇌혈관이나 뇌에 영구적인 손상이 생기거나 단백질(베타아밀로이드)이 쌓여 기억력을 담당하는 해마와 전두엽이 손상돼 인지능력이 저하되는 이유로 발생하지만 건망증은 스트레스가 심하거나 생각하는 것이 많아 뇌가 기억할 수 있는 용량을 초과했을 때 나타나기에 뇌 손상은 아니라고 한다.


<건망증과 치매의 차이점>

1. 건망증은 자연적인 노화현상이 원인이고 치매는 뇌의 질병이나 손상이 원인이다.

2. 건망증은 경험한 것의 일부를 잊어버리거나 세부적인 것을 잊는 반면 치매는 경험한 것의 전체를 잊어버린다.

3. 건망증은 힌트를 주거나 시간이 지나면 어느 순간 기억이 떠오르지만 치매는 힌트를 주어도 기억하지 못한다.

4. 건망증은 잊어버리는 것은 많아져도 진행되지 않는 반면 치매는 기억장애가 점차 심해서 판단력도 저하된다.

5. 건망증은 잊어버린 사실을 스스로 알지만 치매는 잊어버린 사실 자체를 모른다.

6. 건망증은 기억력 외 다른 인지능력 수행에 문제가 없고 일상생활이나 사회생활에 지장이 없지만 치매는 일상생활이나 사회생활에 지장이 있다.


<건망증과 치매의 공통점>

1. 세부적인 증상은 많이 다르지만, 두 질환 모두 기억력 저하가 주된 증상이다.

2. 뇌의 손상, 스트레스, 약물 등의 여러 원인에 의해 발생할 수 있다.


기억 용량을 초과할 만한 어떤 기억이 많기에 이럴까... 애초에 뇌 자체의 용량이 부족한가?

그리고 지금까지 손수건, 우산, 열쇠, 지갑, 양말, 머리핀, 휴대폰, 현금...... 오늘은 고가의 액세서리까지.... 지금까지 살아오며 잃어버린 재산상, 시간상, 감정의 손실이 어마어마할 텐데 이런 걸 다 생각하면 나 스스로 용서가 안될 것 같다.

건망증을 위해 스트레스와 불안을 조절하고, 충분한 수면과 올바른 식습관, 운동 등의 관리를 하라고는 하지만 평생을 이렇게 살아온 나는 그저 하루하루 살아가기에 급급하다.


그나마 특정 약속이나 스케줄은 휴대폰으로 메모를 해 놓고 알림 설정을 해 두긴 하는데 작년엔 음력인 아버님 생신을 애먼 날짜로 착각하고 호들갑을 떨며 온 가족이 모여 식사까지 다 마쳤는데 남편도 의심 없이 내 장단에 따랐다가 나중에 이 날짜가 아니지 않으냐 물은 적도 있고, 막내 아이가 막 1학년 방학을 맞이했을 때 개학일을 잘못 알고 그 전날 아이 손을 잡고 학교에 가다 부랴부랴 돌아온 때도 있었다.

아이는 오늘이 아닌 것 같다고 했지만 설마 엄마가 그럴 리가 있을까 싶어 엄마 손을 잡고 졸졸 따라오다 사실을 알자 빨간색 책가방을 맨 자신이 너무 부끄럽다고 했다.

그 뒤부터는 더욱 메모를 열심히 해서 그나마 휴대폰 알림 기능을 이용하면서 실수가 많이 줄긴 했다.

중요한 일은 가족들이 다 있는데서 얘기해 놓고 누구 하나가 나에게 얘기해 줄 수 있도록 하고, 자기 전 하루의 일을 복기하고 다음날 있을 스케줄의 시뮬레이션을 머릿속으로 돌려본다.

그러나 엊그제처럼 잠깐 물건을 놔두었다가 급한 일로 상황이 바뀔 때면 방법 없이 내 건망증에 당하고 마는데 몇 년 동안 용케도 잘 관리했던 귀걸이를 이렇게 맥없이 잃어버렸을까....

하필이면 비싼 고가의 물건을 그렇게 잃어버리나...

그나마 그 사실도 오늘 아침 갑자기 생각나면서 찾아보기 시작한 거다.

내가 의식하지 못한 어제와 오늘의 기억을 어디서 찾을까... 

산책하며 길에 흘렸어도 한 짝은 있을 법도 한데 두 개 다 그렇게 감쪽같이 잃어버렸을까?

침대 아래, 가방의 속주머니들까지 탈탈 털어보았지만 그날 있었던 일은 휴대폰 케이스에 귀걸이 두 개를 넣어 둔 것 그게 다이고 그 후 그 사실을 잊고 오늘까지 이르렀다는 거다.

그날 치과를 간 게 잘못이었을까? 조그만 가방을 들고 갈까 말까 하다 그냥 간단히 휴대폰만 들고 가서 케이스 안에 귀걸이를 넣은 게 잘못이었을까? 엑스레이를 찍자마자 케이스 안에 넣어둔 귀걸이를 확인하지 않은 게 잘못이었을까?


이럴 땐 최면술이라도 걸어 기억을 되살려내면 좋겠다.

부디..... 어쩌다 이런 말도 안 되는 데서 이게 나타났지? 하는 일이 일어나 주었으면 간절히 바라는 바이다.

그렇지 않으면 남편한테 너무 미안하고 오랫동안 속이 많이 상할 것 같다.

잦은 건망증이 나의 삶의 질을 떨어뜨리고 내 정신건강을 피폐하게 한다.


이전 27화 이삿짐과 기억을 함께 정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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