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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들바람 Jun 17. 2024

새로운 가족을 소개합니다.

이사를 하며 아이들이 새로운 집에서 반려동물을 기르기를 원했었다.

강아지를 기를까 고양이를 기를까 여러 고민을 하던 중 그래도 손이 덜 가는 고양이를 기르자는 데 합의를 보았고, 유기묘를 입양해 기르기로 했다.

마침 타 구청의 동물과에서 다섯 마리의 아기 고양이를 구조하여 연계병원에서 건강검진을 받고 필요한 치료를 받고 있단다.

그중 세 마리의 치즈냥이들이 약 6-7주 된 형제지간이라 했다.

아이들에게 의견을 물었더니 치즈 냥이 중 가장 안쪽에 있는 미묘에게 2표를 주었고, 보류 1표, 얼룩무늬 1표다.

나의 남편은 동물을 좋아하기는 하지만 시각장애를 가진 자신과 동물이 집 안에서 함께 동거하는 일이 만만치는 않은 일이라는 것을 알기에 마뜩지는 않은 듯하다.  

그러나.... 나는 추진력이 아주 좋은 사람.... 내가 사고 치면 뒷수습은 항상 남편이 한다...

치즈 냥이 중 가장 안쪽에 있는 고양이가 마음에 든다고 하자 동물과에서는 두 마리를 입양할 생각은 없냐고 묻는다...

세 마리가 형제인데 그중 한 마리를 제외하고 두 마리만 데려오기엔 마음이 아프지만 내가 세 마리를 평생 책임 질 자신이 없다...

결국 우리가 원하던 미묘는 데려오지 못하고 앞에 두 마리가 이미 퇴원 조치가 되었으니 입양하면 안 되겠냐 묻기에 그러겠다고 했다.

급하게 사료, 화장실과 모래, 고양이 식기와 물그릇, 스크래쳐와 간단한 숨숨집, 캣 타워를 구입하고 생각지도 못했던 두 마리의 아기 고양이를 입양받게 된 것이다.

구청 주무관이 계약서와 서류를 가지고 와서 작성하고, 구청에서 가지고 온 이동장에서 꺼내놓자 얼른 소파 밑으로 들어가 나오지를 않다가 한 마리는 이곳저곳을 탐색하며 돌아다니는데 나머지 한 마리는 화장실 변기 뒤에 들어가 '하악'하며 손도 못 대게 한다.

아마 어미가 사냥을 하러 가며 깊숙한 은신처에 매번 숨겨 놓았을 테고, 그러다 변고를 당해 돌아오지 못하는 어미를 기다리며 죽음의 고비 앞에 있던 아기 냥이들이 구조되었을 테다.

고양이들이 느끼기엔 우리는 그들의 적이고, 생전 자신의 어미가 하던 대로 가장 깊숙한 곳에 숨어 적을 물리치려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나는 그냥 내버려 두기로 하다 장난감을 흔들어 보이자 '하악' 이라더니 나중엔 침까지 뱉는다.

두 마리 모두 수컷들이라 그런지 예사롭지가 않다.

그러나 이제 세상에 나온 지 한 달여 밖엔 안된 200그램의 녀석을 그저 변기 뒤에 둘 수만은 없어 돔 형식의 이동장에 푹신한 방석을 깔고 두 마리를 넣어두니 긴장이 풀리는지 눈꺼풀이 사르르 내려앉는다.

나는 그중 경계를 풀지 못하는 그 녀석을 머리부터 등까지 부드럽게 쓰다듬는다.

처음엔 경계를 하면서도 어미의 기운을 느껴지는지 자신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몸에 긴장을 풀고 잠을 청하는 모습이 너무도 애처롭다.

단 몇 주이지만 생사를 오가며 오지 못하는 엄마를 기다리던 이 녀석은 어땠을까...

뜨거운 태양 아래서 배를 곯고, 천적의 위협을 느끼며 바들바들 떨고 있었을 아기들을 생각하니 나의 어린 시절이 떠오른다.

나 또한 어린 시절 엄마 없이 이리저리 쫓기듯 다니며 학대를 받고, 생명의 위기감을 느끼던 그 당시가 생각 나 나도 모르게 눈물이 뚝뚝 흘렀다.


"이제 아줌마가 엄마가 되어줄게.... 걱정 마 우리 아가들.... 엄마 없이 버티느라 고생했어, 잘 구조되었고, 우리 집에 온 걸 환영한다...."


나도 모르게 양볼을 타고 흐르던 눈물이 잠든 냥이의 털 위에 떨어지자 나는 급하게 손 등으로 눈물을 훔쳤다.


고양이의 물그릇과 밥그릇, 화장실이 모두 떨어져 있어야 하고, 남편이 이동하며 발로 차거나 하지 않도록 동선이 겹쳐지지 않게 배치해야 하기 때문에 머리가 아프다...

집에 돌아온 남편도 고양이들을 품에 안아보며 살살 쓰다듬어본다.

아마 굳게 마음을 먹은 듯했다.

저녁께는 잠에서 깬 고양이가 없어져 온 식구들이 야단법석을 떨었는데 결국 베란다의 실외기 사이에 숨어 털이 젖어 있었다.

그 좁은 틈을 어찌 들어갔을까.. 과연 고양이 액체설이 증명되는 순간이다.

연신 '하악'대며 경계하는 녀석을 얼른 꺼내어 도톰한 수건에 감싸 안고 있으니 엄마가 생가 나는지 그 호기롭던 기세는 어딜 가고 빠져나갈 생각도 못한 채 그저 안겨 있다.

그러고도 안심이 되지 않는지 방문을 열어둔 문 틈 뒤에 숨어 있으니 모르고 문을 닫다 고양이 신체의 일부가 끼어 큰 사고가 일어날까 싶어 급한 대로 큰 박스를 잘라 양면테이프를 이용해 문 틈마다 붙이고, 실외기 사이도 모두 막아두었다.

그날 밤이 되자 경계도 덜 하고 어두컴컴한데 숨지도 않는다.

약간의 허피스 병이 있는 냥이들에게 구청과 연계된 병원에서 처방해 준 안약을 넣어주고 오늘은 목욕도 시키니 때깔이 훨씬 예뻐졌다.

외동묘 보다 두 마리가 함께 있으니 술래잡기도 하고 둘이서 장난치며 노는 모습이 너무나 사랑스러워 입가에 웃음이 떠나지 않는다.

가족 모두가 이 녀석들에게 홀딱 빠져들어 정신을 차릴 수가 없을 정도이다.

경계가 심하고 소심한 성격의 고양이가 다른 녀석보다 덩치가 큰 것을 보니 아마도 형인가 싶고, 덩치가 적은 제동생을 정성껏 그루밍해 주며 살뜰히 살핀다.

'엄마가 동생 잘 보살피라고 시켰나?'

새콤이과 달콤이, 초코와 누텔라, 치즈와 버터... 등 많은 이름이 후보로 올랐는데 노란색 이 더 많이 섞인 소심한 녀석이 치즈, 하얀색이 더 많은 덩치가 적은 녀석이 버터이다.


세월이 흐르며 이 녀석들도 우리의 언어를 알게 되고, 우리 또한 아이들의 언어를 이해하게 되며 점점 더 애틋한 가족이 되어 갈 것이다.

오늘만 해도 아침이 되니 한 녀석이 '야옹야옹' 울며 우리를 찾는다.

부디 오랫동안 아프지 않고 예쁜 모습으로 함께 오래오래 살기를 바랄 뿐이다.

이젠 네 아이의 엄마, 두 동물 아들들의 엄마가 되어 더 바쁜 삶을 살게 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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